[이슬기의 무기가 되는 글들]

문화연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여성노동조합, 청년참여연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등 문화예술노동여성시민사회단체들이 28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게임문화 속 페미니즘 혐오몰이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가자가 든 피켓에 ‘집게손이, 페미니스트가 그렇게 무섭냐’라고 적혀있다. ⓒ이수진 기자
 지난해 11월 28일 열린 ‘게임문화 속 페미니즘 혐오몰이 규탄’ 긴급 기자회견에서 참가자가 ‘집게손이, 페미니스트가 그렇게 무섭냐’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이수진 기자

토론회를 듣다가 ‘저거다’ 했다. ‘가해자의 언어’라는 말.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페미니즘 사상검증 문제 진단과 대안을 위한 토론회’에서 김유리 전국여성노동조합 조직국장은 말했다. “가해자의 언어는 있지만 피해자의 목소리는 삭제되는 것이다.” ‘집게손가락은 남성혐오’라는 공격으로 말미암아 노동권 침해와 사이버 불링 피해를 입는 일련의 여성 노동자 이야기를 하면서였다. 요즘 내가 하는 고민과 정확히 맞닿아 있는 얘기였다.

내 글에는 유독 작은 따옴표가 많다. 남의 말, 특히나 안티 페미니스트들의 말을 가져와 반박하는 데서 내 글이 시작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보여주는 데 특화가 된 기자의 언어이기에 더욱 그렇기도 할 것이지만, 따옴표는 나의 발화와 저들의 발화를 구분하기 위한 발악이기도 하다. ‘집게손’이니 ‘남성혐오’ 같은 가해의 언어를 부득불 나의 언어와 선 긋기 위해 등장한.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가 1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집게손가락 억지논란은 여성혐오다: 페미니즘 사상검증 문제 진단과 대안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이슬기 기자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가 1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집게손가락 억지논란은 여성혐오다: 페미니즘 사상검증 문제 진단과 대안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이슬기 기자

그러나 따옴표는 자주 무력하다. 사람들은 따옴표까지 염두에 두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글에서 말의 영역으로 넘어갈 때 따옴표는 대부분 생략된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이른바’, ‘소위’라는 말을 덧붙이지만 큰 효용이 없다. 그래서 자주 저들의 말을 인용해야 할 때, 따옴표들이 글 위를 기어 다니는 권연벌레처럼 느껴져 염오감이 든다. 싹 다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는 것이다. (권연벌레를 모르시는 분은 포털창에 한 번 검색해 보기를 바란다. 딱 따옴표처럼 생겼다.)

예를 들어 ‘페미’라는 ‘낙인’이라는 말을 떠올려보자. 안티 페미니스트 일변도의 세상에서 페미는 낙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페미는 낙인이 될 수 있나? 성차별이 엄존하는 세상을 성평등하게 바꾸자는 주장은 낙인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이들 언어를 필터링 없이 따라 쓰며, 가해자 중심의 세상은 더욱 공고해진다. 언론 등에서 페미를 ‘논란’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굳어진 결과, 이제는 페미는 논란이 될 수 없음을 설명하는 단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난 8월 29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서울여성회와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 주관으로 딥페이크 성범죄 규탄 여성 시민·대학생 긴급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월 29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서울여성회와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 주관으로 딥페이크 성범죄 규탄 여성 시민·대학생 긴급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이러한 발화 기회가 주어지기도 전에 여성들에게 공격이 먼저 날아드는 게 형국이다. 그렇게 ‘남성혐오의 표식’인 집게손을 그렸다는 이유로 여성들이 직장에서 해고되고, 페미라는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는 게 현실이 됐다. 이를 ‘페미니스트 사상검증’, ‘페미 색출’로도 표현하지만 면밀히 따져보면 이 또한 가해자의 말이지, 피해자의 언어가 아니다. 페미니스트 노동자에 대한 괴롭힘‧폭력이 더욱 맞는 말이다.

비슷한 사례로 ‘지인능욕’이 있다. 여성 지인의 이미지를 불법 합성한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두고 텔레그램방의 가해자들은 ‘지인능욕’이라며 낄낄거렸다. ‘딥 러닝(deep learning)’과 ‘페이크(fake)’를 합성한 단어인 ‘딥페이크’는 이들 범죄에 적용된 기술이자 외피이고, ‘지인능욕’은 가해자의 입장에서 범죄의 내용을 담는 말이다. ‘딥페이크’는 대중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단어다. ‘지인능욕’은 가해자의 시선으로 명명된 범죄명이기에 더욱 쓰여서는 안될 단어다.

그래서 서울대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이었던 루마는 딥페이크 성범죄를 ‘이미지 기반/불법 합성물 이용 성범죄’라고 호명한다. 루마와 다른 피해자들, ‘추적단 불꽃’의 원은지 대표가 이들 가해자를 추적하고 법정에 세우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은 ‘지인능욕’을 피해자 중심의 ‘이미지 기반/불법 합성물 이용 성범죄’로 바꾸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명명은 그들의 ‘놀이’를 확실한 범죄로 사회와 법원에 인식시키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 결과 지난달 30일 1심 판결에서 사건의 주범에게 징역 10년이라는 중형이 선고됐다.

ⓒ난다
ⓒ난다

모두가 루마 같은 피해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해자의 언어로 말하지 않고, 피해자의 언어를 귀 담아 듣는 데서부터 우리가 시작해야 한다는 반성이다. 그래서 나는 내 글에 기어 다니는 가해의 권연벌레들을 자주 걷어 내겠다고 다짐한다. “피해자와 페미니스트의 언어를 재생산”(김유리 조직국장) 하는 데까지 나아가기 위한 정지 작업이다.

그렇다면 페미니스트의 언어는 어떻게 재생산 해야할까. 최근 출간된 소설가 최진영의 에세이 『어떤 비밀』에서, 나는 힌트를 얻었다. 소설 『이제야 언니에게』에서 친족 성폭력 피해자 ‘제야’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그렸던 최 작가는 여성인 자신조차 내면에 많은 가해자의 언어와 행동 방식을 축적하고 있었음을 깨닫고 반성을 거듭했다고 전한다. 그렇게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페미니스트 맞습니다. 어쩌다 페미니스트가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되묻고 싶군요. 당신은 페미니스트인가요?(중략) 아니라고 대답한다면 되묻겠습니다. 당신은 어쩌다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았나요?’(222쪽)

주말에 유튜브 라디오에서 또 한 번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을 덧붙이는 남성 정치인을 봤다. 그에게 들려주고 싶다. “당신은 어쩌다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았나요?”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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