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8기 지역성평등정책 현주소] ② 서울시

[편집자 주]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민선 8기 지역성평등정책의 현주소와 과제를 살 펴보는 기획 칼럼을 총 9차례 연재합니다. '여성가족부 폐지' 퇴행 흐름, '저출산 인구 위기 담론'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현실 속에서 반환점을 돌고 있는 민선 8기 광역자치단체의 성평등 정책과 저출산정책에 대한 모니터링 결과를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지난 10월 10일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연구소, 한국여성학회가 공동주최한 '저출생과 젠더평등, 현실 진단과 대응 모색' 심포지엄. ⓒ한국여성단체연합
지난 10월 10일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연구소, 한국여성학회가 공동주최한 '저출생과 젠더평등, 현실 진단과 대응 모색' 심포지엄. ⓒ한국여성단체연합

2년 연속 민선 8기 서울시의 성평등 정책을 모니터링한 결과는 간단하다. ‘오세훈 시장의 서울에 여성은 없다.’ 성평등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여성은 없지만 대신 엄마로서의 여성, 출산의 도구로서의 여성은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된다. 등장 이전부터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걸고 장관직을 8개월째 공석으로 비워두며 동시에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을 끌어오는 윤석열 정부의 기치와 궤를 같이 하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아이 키우기 좋은 서울’을 구현하겠다는 목적으로 2022년부터 ‘엄마아빠 행복 프로젝트’ 5개년 종합계획을 수립해 추진해왔다. ‘출산’을 중심으로 하는 현금성 지원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해당 사업은 출산을 기피하거나 다양한 상황으로 인해 시도하지 않거나 혹은 못하는 이들에게는 유인책이 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즉 출산과 양육에 의사가 있고 ‘정상’가족 범주에 속할 수 있는 가임기 여성과 그 배우자만을 정책의 관리 대상이자 지원받을 자격이 있는 주체로 설정한 것이다. 또한 유자녀 가구 직접 지원만을 확대하는 대책은 결국 양육의 책임과 비용을 가정에 전가한다. 여성을 돌봄의 주 담당자로 상정하는 사회 인식과 구조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가정에 부과된 양육 책임은 여성 노동자를 일과 돌봄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아넣게 된다.

올해부터 서울시는 새롭게 ‘탄생응원서울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양육자에 초점을 맞춘 이전 프로젝트와 달리 청년, 신혼부부, 난임부부 같은 ‘예비양육자’까지 포괄하고 일·생활 균형과 같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까지 지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예비양육자는 여전히 결혼 및 출산, 양육에 모두 의사가 있는 ‘정상’가족 범주에 한정돼 있다. 서울시는 공공시설 예식을 지원하는 ‘나만의 결혼식’, 긍정적 결혼 문화를 확산한다는 2030 미혼청년 커플의 ‘결혼공감 토크콘서트’, 정·난관 복원시술비 지원 등 정책의 효과를 고려해 설계한 것이 맞는지 의심케 하는 사업들을 진행 중이다. 또한 출산과 관련한 직접 지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정책이 양육과 일·생활 균형 분야에 집중돼 있는데 여기엔 소규모 영세 사업장이나 비정규직 한부모 가정 등 이른바 ‘사각지대’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출산 전후의 일시적 지원만으로는 양육이 불가능한 상황, 일·생활 균형 자체를 고려할 수 없는 상황 등은 대부분 여성의 노동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고 나아가 중장년·노년층 여성의 삶과 이어지며, 결국 지방정부의 공적 책임이 요구되는 사회구조적 문제로 자리매김한다.

여성 노동 환경에 대한 본질적 고민 부재, 가임기 여성 중심의 협소한 지원, 전통적 성역할 체계와 가족 이데올로기 중심 등 핵심을 비켜난 저출산 정책을 서울시가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동안 성평등 전담기구인 여성가족실의 내부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오 시장이 보궐선거로 취임한 2022년 이후 현재까지 서울시 여성가족실은 구조부터 세부 사업까지 매해 점진적 퇴행을 보여왔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정책을 개발하고 추진하는 핵심부서의 변화다. 이전까지 ‘여성정책담당관’으로 존재했던 여성가족실 1과의 주요 부서 업무는 △여성정책 개발 △성평등 문화조성 및 기반 마련 △성평등 노동환경 구축 등이었다. 해당 부서의 명칭은 2022년 양성평등정책담당관, 2023년 양성평등담당관으로 여성과 정책이 빠지더니 급기야 올해 7월 서울시 조직개편을 통해 2과에 배치됐다(동시에 여성가족정책실은 여성가족실로 명칭을 변경했다). 정책과 거버넌스, 여성 경제활동 및 노동 등을 다루던 부서의 주요 업무는 엄마아빠행복 프로젝트 등 오 시장의 주요 공약 사업에 대한 수행 주체로서의 역할이 강화됐다. 

양성평등담당관 하위 ‘팀’과 동일한 층위로 배치됐던 젠더자문관이 팀 소속으로 하위 편제된 것도 눈에 띈다. 여성가족실 담당관 직위는 4급, 팀장 직위는 5급이며 임기제 직책인 젠더자문관은 직급상 5급에 해당되는데, 수직적인 공무원 조직에서 급수 및 부서 위상, 인원수 등이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음에도 서울시는 성주류화 업무와 관련해 권한 및 인원을 확대하는 대신 구조적으로 축소하는 일관된 방향성을 보였다. 시정 전반의 성주류화 정착 및 성평등 인식 확산을 위해 전국 최초로 젠더정책팀을 신설하고 젠더자문관 제도를 도입한 서울시의 현재다. 결국 여성 권익을 보호하고 성평등 환경을 구축하는 실국 차원의 목표는 상실됐고 부서 전체가 출산과 양육만을 고려한 저출생 정책, 그리고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여성과 그 자녀를 중심으로 재편된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 아래 여성가족실의 사업 역시 표류하고 있다. 2024년 1월 기준 양성평등담당관 예산은 전년 대비 약 8억 원 증가하였는데 출산·양육 관련 사업을 확대해 집중적으로 예산을 투입한 결과임에도 전체 예산 중 차지하는 비율은 6.72%에서 6.54%로 오히려 소폭 하락했다. 이는 실질적으로 부서의 목적에 부합하는 성평등 사업의 축소 및 삭제가 원인으로 여성역사공유공간 서울여담재, 서울직장성희롱성폭력 예방센터, 성평등활동지원센터, 국내 유일 여성 공예 창업시설 서울여성공예센터 등이 서울시의 일방적 통보로 인해 갑작스럽게 사업 종료되거나 폐관됐다. 그 외 성별임금격차위원회 운영 등 성평등 노동 관련한 사업 내용이 전부 삭제되고 일생활 균형 매뉴얼 마련 및 인식개선 교육으로 대체되는 등 대부분의 성평등 사업이 사라지거나 명목만 유지하는 수준이 됐다.

서울시는 과거 여성가족정책실을 중심으로 성평등 정책을 선도적으로 추진하며 최초의 시도들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고 이는 한동안 타 지자체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그러나 2021년 재보궐 선거 이후 만 3년 여간 조직 구조 변경, 업무 축소, 시설 및 기관 폐쇄, 예산 삭감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지속적이고 본격적이며 체계적으로 성평등을 삭제한 결과, 서울시의 성평등 추진체계는 이제 일부 허울만을 유지하고 있다. 

이준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
이준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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