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뭉치’ 첫 공개 토론회
성매매방지법 시행 20년...성과·개선점 논의

‘거꾸로 가는 한국 사회’의 순간을 꼽을 때 올해 ‘성인 페스티벌’ 파문이 빠질 수 없다. 일본 여성 AV 배우들이 참여하는 행사가 시민들의 반발과 지자체의 불허에 무산되자 30대 남성 국회의원이 나섰다. “남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은 제한하고 남성의 본능을 악마화하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의 황당한 주장은 여러 미디어를 통해 ‘찬반 논쟁’의 한 축으로 변신했다. ‘남성의 성욕은 본능’, ‘성매매는 사회적 필요악’이라는 해묵은 명제가 정치를 경유해 또다시 요란하게 등장했다. AV 산업 내 만연한 폭력, 한국에선 포르노 제작·유통이 불법이라는 사실은 빼놓은 허무한 논쟁이었지만 말이다.
‘남성의 본능’엔 민감하고 여성폭력에 둔감한 한국사회의 민낯은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에서도 드러났다. 가해자의 평균 연령대가 10대에 가까워진 점은 물론, 포르노·온라인 ‘벗방’ 등 성 산업에 종사한 여성들의 몸이 동의 없이 합성에 악용되는 현실은 또 다른 숙제를 안겼다.
여성혐오가 극심해질수록 가장 낮은 곳에서 성평등을 외치고 싸워 온 이들을 생각한다. 성매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뭉치’다. 광주·대구·대전·부산·인천·전주·제주 7개 지역 성매매 경험당사자 자조모임의 연대체다. 2006년 출범 이래 대한민국 성 착취 산업 실태를 용감하고 생생하게 ‘발설’해 온 여성들이다. ‘뭉쳐서 안 되는 게 어딨니’를 줄여 ‘뭉치’다.

뭉치가 올해 성매매방지법 시행 20년을 맞아 첫 공개 토론회를 열었다. 지난 9월11일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열린 토론회 주제는 ‘당사자 운동을 통해 본 성매매방지법의 성과와 한계’였다. 김영배·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종오·전종덕·정혜경 진보당 의원,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공동 주최했다.
성매매 여성들을 ‘피해자’, ‘창녀’로 낙인찍고 배제하는 사회에서, 이들이 어떻게 서로를 일으켜 투쟁을 조직하고 국제 연대를 끌어냈는지 짚었다. 150여 명이 약 4시간 동안 자리를 지킬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웃음과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토론자로 참가했는데, 토론회라기보단 잔치에 초대받은 느낌이었다.

뭉치가 그렇다. 그 모든 일을 겪고도 명랑하고 당당하고 유쾌하다. “쫄고, 눈치 보고, 할 말 못 하고 그러지 않는 것”이 이들에겐 중요하다. 직접 카메라를 들고 영상 ‘우리의 존재가 실천이다’를 만들어 2011년 공개 상영하면서 사회에 존재를 알렸다. 2012년부터 국내 성 산업과 그 속의 여성들의 삶을 진솔하게 나누는 집담회 ‘무한발설’을 개최했다. 2015~2019년 전국 각지에서 열린 뭉치 토크콘서트에는 수천 명이 모였다.
뭉치는 일본 반성매매단체 콜라보(Colabo), 일본 성매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등화 등과의 초국가적 연대에도 앞장섰다. 뭉치의 존재와 활동은 성매매를 관습적으로 여기던 일본 시민사회에 충격을 줬고, 생생한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는 관계로 나아갔다. 이날 사회를 맡은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의 말을 빌려 오늘날 “한일 반성매매 운동은 불가분의 관계”가 됐다. “세계 곳곳의 성매매 경험 당사자들과 만나기를 희망한다”는 백치 활동가의 말이 현실로 이뤄지는 중이다.


시민사회의 영역을 넘어 대중의 인식도 바꾸고 있다. 뭉치 활동가 ‘봄날’ 작가가 2019년 펴낸 에세이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반비)은 1만 부 판매를 돌파했고 해외 출간 제안도 받았다. 가난한 집 맏딸로 태어나 생계난에 18세에 성매매를 시작했고, 탈성매매 후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을 돕는 활동가가 된 그의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지지를 보냈다. 성평등 문화 확산에 기여한 공로로 ‘2021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국회 문체위원장상)도 수상했다.
뭉치의 활동은 2015년께부터 한국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온 성폭력 고발 운동, 2018년 ‘미투’로 명명된 글로벌 페미니즘 운동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러나 성매매 여성은 ‘순수한 피해자’가 아니라는 혐오는 넘기 힘든 벽이다. 지음 뭉치 운영위원장은 “(뭉치가 나서면 미투운동의 초점이 흔들릴까 봐) 우리끼리 ‘미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반성매매와 성노동 진영의 이분법적 대립, “성매매 문제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의 역량이 상당히 저하돼 당사자들의 불안감을 조장”하는 현실도 지적했다.


법 개정도 시급하다. 뭉치 활동가들은 성구매자·알선자는 물론 성매매 여성도 동등한 행위자로 보고 처벌하는 현행법에 문제를 제기해 왔다. 2004년 시행된 ‘성매매알선등범죄의처벌에관한법률’ 및 ‘성매매방지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에 따라 성을 팔고, 사고, 팔고 사도록 유인 및 알선하는 모든 행위는 범죄로 처벌된다.
‘성을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나쁘다’는 논리는 명쾌해 보인다. 하지만 당장 가진 건 없고 눈앞의 선택지는 부족한 여성들이 성매매 산업으로 끌려 들어가는 현실을 바꾸기엔 역부족이다. 여성의 몸을 식민지 삼아 유지되고 대대손손 이어지는 ‘남성문화’를, 대부업·성형산업 등 성매매 산업에 기생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전반적인 산업 구조를 바꾸기엔 역부족이다. 온라인 그루밍, 불법촬영, 디지털 성범죄는 여성들을 더 손쉽게 성매매로 유인해 옭아맨다. 피해자들은 낙인과 처벌이 두려워 신고는커녕 침묵한다. 뭉치를 포함한 반성매매 활동가들이 “성매매방지법 20년, 새로운 희망의 법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이유다.
2002년 군산 개복동 성매매업소 화재참사 소송을 대리했고, 지난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소속으로 성매매방지법 개정안(성구매및알선등행위의처벌에관한법률) 마련에 동참한 이정희 전 국회의원도 이날 토론회에 참석했다. 그는 “성매매 여성들 스스로 ‘나는 피해자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게 만드는 현 상황”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여성을 처벌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성을 사는 사람, 이를 알선해서 자신의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을 처벌해야 합니다.”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성착취대응팀을 이끈 원민경 변호사도 “성매매방지법 개정이 ‘딥페이크 성착취’ 등 많은 문제를 푸는 시작이 될 것”이라며 “내년엔 법 개정을 이룬 기쁨을 같이 나눴으면 한다”고 했다.
또 하나 주목할 뭉치의 성취는 동지를 모으고 긴 싸움을 이어가는 지혜다. 광주 ‘별하’(별처럼 높이 빛나는 사람), 대구 ‘예그리나’(사랑하는 우리 사이), 대전 ‘하쿠나마타타’(문제없어 다 잘될 거야), 부산 ‘나린아띠’(하늘이 내린 친구), 인천 ‘보따리’, 전주 ‘키싱구라미’(혼자 살 수 없는 물고기), 제주 ‘벵디’(평평하고 넓은 들판)....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는 성매매경험 당사자 자조모임들이 끈질긴 연대의 불씨를 지폈다. 들끓는 분노를 냉소로 흘려보내지 않는 비결이 여기 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