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청소년 성소수자 5명 인터뷰
"내 이야기 하고 싶다"
부산 학생 실태조사 결과, 청소년 성소수자 71% 혐오 표현 들어봐

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0회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평등의 무지개' 현수막이 광장을 가로지르며 펼쳐지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0회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평등의 무지개' 현수막이 광장을 가로지르며 펼쳐지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학교에서 한 번도 성정체성을 드러낸 적이 없다. 좋은 일은커녕 나쁜 일이 벌어질게 뻔한데.”

부산의 한 공학고등학교 출신인 김강민(가명·20)씨가 여성신문에 들려준 이야기다. 

한국은 성소수자 인권의 진전과 후퇴를 반복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서울고등법원은 동성부부의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 자격을 인정했다. 이어 5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동성결혼 법제화를 위한 민법개정 ‘가족구성권 3법’을 31일 발의했다.

하지만 지난달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고, 10곳 넘는 지역에서 성교육과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도서가 폐기되는 일들이 일어났다.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 혐오반대의 날을 맞아 여성신문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소셜미디어 엑스(X, 옛 트위터)에 청소년 성소수자 인터뷰이 모집글을 올리자 5명의 청소년이 연락했다. 이들은 “청소년 성소수자가 말할 곳이 없어요. 내 이야기 좀 해보고 싶었다”고 입을 모았다.

성소수자에 대해 한 번도 배워본 적 없어

교육현장에서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성소수자와 성평등에 대해 배우기는커녕 오히려 편견과 혐오를 만난다.

경기도 모 여고에 다니는 안수완(가명·17) 학생은 “진로 선생님이 이성교제는 나쁘고, 동성 교제는 더 나쁘다고 했다”고 말했다.

최민기(가명·16) 학생은 "중학생 때 성교육 외부 강사가 성교육을 하며 ‘마약, 도박, 동성애 불건전하다’고 해서 수업 쉬는 시간에 항의했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경기도 모 예고를 다녔던 신여원(가명·22)씨는 “국어시간에 남성적 어조, 여성적 어조를 가르치는데, 성소수자 인권 교육이라니 말도 안 된다”라고 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하루의 대다수를 보내는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차별과 혐오는 더욱 강력하게 작용한다. 

지난 1월 청소년인권단체인 ‘아수나로 부산지부’가 발표한 ‘부산지역 학생 성소수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8명의 응답자 중 71%가 동료 학생으로부터 성소수자 혐오발언을 들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전보다는 나아졌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성소수자 200명 중 98%가 교사나 다른 학생으로부터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을 들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여전히 청소년 성소수자는 학교가 안전한 공간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안수완 학생은 “학교에서 아웃팅(당사자의 동의 없이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밝히는 행위) 당하면 너무 끔찍할 것 같다. 상상만 해도 싫다”고 털어놓았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되면 혐오 막을 방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26일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금지’, ‘성소수자 학생의 권리보장’을 명시하고 교육기관 종사자가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을 하지 못하도록 한 ‘서울특별시 학생인권 조례’가 폐지조례안이 가결됐다.

해당 폐지조례안은 ‘학생인권조례는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 등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항목들을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포함하고 있’다는 내용을 개정 이유로 들었다.

선호찬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사무국장은 “학생인권조례 안에는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의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학생인권조례는 존재 자체로 성소수자 청소년을 지키는 힘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학생인권조례는 실질적으로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차별 구제 기능을 했다.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 관계자는 “많지는 않지만 매년 꾸준히 교사들의 성소수자 차별 발언에 대한 구제 신청이 들어왔고, 재발방지를 위해서 성교육 등의 권고사항을 내린 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서울시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된다면 실질적인 구제가 어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서울시학생인권조례 폐지가 되면 서울시 교육청 안에서 개입할 법적 근거가 미약해지기 때문이다.

서울시학생인권조례 폐지 후엔 학생들이 혐오 표현을 대응하려면 국가인권위원회로 가거나, 사법적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그렇게 복잡해진다면 학생들이 구제신청 비율이 떨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국제성소수자 차별 반대의 날을 맞이 포스터를 올렸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국제성소수자 차별 반대의 날을 맞이 포스터를 올렸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

나로 온전히 학교에서 존재할 수 있도록 학교가 바뀌어야

청소년들에게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선호찬 사무국장은 “청소년들은 사회적 사건들에 영향을 정말 많이 받는다”며 “2020년 신촌 ‘아이다호’ 지하철 광고가 찢겼을 때도, 이번 대선이 지나고도 평소보다 상담 카톡이 많이 왔다. 생활에 위협을 받는다고 느낀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다호(IDAHOT)'는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 혐오반대의 날을 뜻한다. 1990년 5월 17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정신질환 목록에서 동성애를 삭제한 것이 계기로 지정됐다. 이날을 기념해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2020년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 걸었던 광고판이 문구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적 있다. 

선 사무국장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환대 받은 경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청소년에 받았던 차별과 배제는 트라우마가 되고 이는 성인기가 되어서도 영향을 준다”며 그는 “나로 온전히 학교에서 존재할 수 있게 변해야 한다. 누구나 상관없이 환대받는 학교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였다.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은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받지 않을 권리 △성소수자 관련 자료가 포함된 교육과정 △성별 중립적인 학교시설(화장실, 탈의실, 기숙사) 등을 명시한 ‘성소수자 학생 포용적인 학교’ 정책 요구안을 22대 국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영국·대만은 교육과정에 성소수자 내용 포함, 일본은 트랜스젠더 학생 지침 있어

국내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가이드라인도 없다. 그나마 인터뷰에 응한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사회 수업에서 언뜻 배운 적 있거나 배워본 적 없다고 답했다. 오히려 성교육 시간에 성소수자 혐오 내용을 들은 적도 있다고 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은 교사의 개인 역량에 따라 달라진다.

영국, 대만, 일본은 법 혹은 학교 운영 지침으로 학생들이 성 정체성으로 인해 차별 받지 않도록 보호하거나 교육한다. 

대만은 2004년부터 성평등교육법을 시행했다. 이 때부터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금지를 명시하고 학교에서 성평등 교육과 성소수자 인권교육이 시작됐다.

영국은 2019년 9월부터 중등학교 과정에서 ‘관계와 성 교육(RSE)’ 수업에서 성소수자 등을 교육하고 있다. 여기엔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와 부모에 대한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

한국의 교육부에 해당하는 일본의 문부과학성은 2015년 트랜스젠더 학생 대응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기도 했다. 지침에 학생 사생활 보호, 교직원 인권 교육, 화장실 사용에 있어서 학생의 성별정체성 존중이 권고돼 있다.

성소수자 교육은 성소수자 인권과 직결된다. 띵동이 진행한 ‘포용적인 학교환경을 위한 입법 캠페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4.9%가 ‘교사 등 학생을 만나는 사람들이 성소수자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응답했다.

한편, 성소수자교사모임QTQ와 전교조 성평등특별위원회는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을 맞아 지난 10일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인권 지지를 위한 수업 과정안, 도서 목록, 영상 등을 엮은 ‘무지개 배움 꾸러미’를 제작해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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