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한국가족법학회 ‘이혼 재산분할과 결혼의 가치’ 심포지엄 개최
“35년 된 재산분할제도, 변화한 현실 맞춰 정교해져야
사별 뒤 상속도 이혼처럼 재산분할 인정 필요
배우자 상속·증여 전면 비과세 검토해야”

이혼·상속 관련 재산분할제도가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를 개선하려면 배우자 사별로 재산을 상속하는 경우 이혼처럼 재산분할을 인정하고, 증여세와 상속세 간 불균형을 해소하는 ‘배우자 상속·증여 전면 비과세’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제안했다.
여성신문과 한국가족법학회가 25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서울에서 연 ‘이혼 재산분할과 결혼의 “가치”, 상속 재산분할과의 차별을 중심으로’ 학술 심포지엄에 가족법 전문가들이 모여 현행 재산분할제도에 대한 개선책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가족법, 세법, 젠더 등 여러 분야의 법조계 전문가들은 “법률 규정이 된 지 약 30년이 훌쩍 넘은 제도들에 대해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봤다.
축사에서 양현아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90년 민법 개정으로 재산분할제도가 생기면서 결혼생활동안 경제적으로 취약해진 여성이 부부의 재산 형성 기여를 인정받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전업주부도 이혼 시 공동재산의 절반가량을 받을 권리가 생기는 등 여성의 경제권에 대한 많은 진전이 이뤄졌다.
이는 “많은 여성 시민들과 가족법학자들의 법 개정운동에 힘입어 무재산인 여성 배우자에게도 이혼 시 위로 성격의 ‘위자료’가 아닌 정당한 권리로서의 재산권을 보장받게” 된 계기가 됐다. 이후 여성 배우자의 몫이 적극 고려된 결과 현재는 전업주부라도 부부 공동재산의 절반가량을 인정받게 됐다.
하지만 현행 재산분할제도는 “커다란 재산적 가치가 있는 부동산, 주식 배당 등의 자산은 공동재산으로 인정되지 않고, 여성 배우자들의 가정 경제에 대한 기여도 산정이 너무 포괄적”이라고 양 교수는 지적했다.
이어 “여성들이 해 온 돌봄노동과 일가정 양립의 노력, 불리한 노동시장에서의 지위 등을 통합해” 여성의 재산형성 기여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동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배우자 사별로 재산을 상속하는 경우에도 이혼처럼 재산분할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은 가사·돌봄 노동을 도맡아 온 전업주부의 재산 형성 기여도를 폭넓게 인정해 혼인 기간이 길수록 이혼 재산분할 시 부부의 공동재산을 50:50으로 나누는 추세다. 반면 배우자와 사별할 경우, 배우자가 상속하는 재산은 이혼 시 재산분할로 받을 몫보다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이러한 문제로 배우자가 사망하기 직전에 이혼하고 재산분할을 받는 사람들이 나온다. 제도의 한계로 비효율을 초래하는 만큼, 이혼뿐 아니라 사망 시에도 재산분할을 하자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재산분할 비율을 원칙적으로 50:50으로 정하는 방식, 배우자의 상속분을 50%로 상향하는 방식도 제안했다. 또한 배우자에게 상속재산 전부를 배우자에게 상속시키고, 자녀에게는 후(後)상속권을 인정하자는 대안도 제시했다. 남편이 사망하면 아내에게 재산이 넘어가고, 아내가 사망하면 다시 자식들에게 넘어가는 식이다.
혼인신고 전 미리 결혼 후 재산 소유·관리 방법을 미리 계약하는 ‘부부재산계약’ 확대도 필요하다. 이 교수는 “부부재산계약으로 이혼과 사망으로 인한 부부재산제의 해소를 모두 규율할 수 있게 해주고, 나아가 혼인 중에도 부부재산계약을 체결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부부가 배우자를 대상으로 상속·증여 등을 행할 때 전면 비과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윤지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혼인 관계는 ‘경제 공동체’(joint venture)”라며 “부부 간 재산이 오가는 듯 보여도 일정 부분은 원래 갖고 있는 지분을 현실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남편이 돈을 벌어 전업주부인 아내에게 송금하고, 아내가 다시 생활비를 가족 구성원들에게 나눈다고 해서 증여 행위나 과세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도 1997년 이혼 재산분할로 한쪽이 재산을 새로 취득하는 모양새가 되더라도 증여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윤 교수는 “이혼해서 재산분할 형태로 받아 갈 수 있는 ‘자신의 몫’이라면, 혼인 관계가 유지되는 동안 그 범위 안에서 받아오더라도 여전히 그저 ‘자신의 몫’을 찾아오는 데에 지나지 않으므로 증여라고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세대 간 부(富)의 대물림에 대해 증여세를 물리는 경우가 아니라, 같은 세대이자 재산 형성에 함께 기여한 배우자에게 왜 상속세를 부과해야 하는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도 봤다.
다른 대안으로는 부부 중 어느 한 사람이 사망하더라도 그 재산을 (자녀 세대가 아니라) 생존 배우자가 물려받는 한도에서는 상속·증여세를 물리지 않는 방안, 배우자 상속에서 공제 범위를 혼인 기간에 연동하는 방식도 제언했다.
이날 패널 토의에는 전경근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나인선 변호사·새로운미래를위한청년변호사모임 이사, 박준석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검사, 서경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혜진 더라이트하우스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한국젠더법학회 이사, 임종효 서울고등법원 판사가 참석했다. 좌장은 전경근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가족법학회 회장이 맡았다.
발제문 및 토론문 등 자세한 내용은 여성신문 게시판에게재된 자료집에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