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재산분할과 결혼의 가치’ 심포지엄 축사
양현아 “노동시간 조정. 일·가정 양립 배분. 돌봄 노동의 지원 필요”

양현아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여성신문
양현아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여성신문

양현아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여성의 불리한 처우를 개선해 부부가 재산을 형평에 맞게 축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여성신문과 한국가족법학회가 4월 25일 ‘법의 날’을 맞아 개최한 ‘이혼 재산분할과 결혼의 “가치”, 상속 재산분할과의 차별을 중심으로’ 심포지움에 참석한 양 교수는 격려사를 통해 이 같이 말했다.

대학에서 젠더법학을 가르치는 양 교수는 “1989년 많은 여성 시민들과 가족법학자들의 법 개정운동에 힘입어 무재산인 여성 배우자에게도 이혼 시 위로 성격의 ‘위자료’가 아닌 정당한 권리로서의 재산권을 보장받게 됐다”며 “이후 여성 배우자의 몫이 적극 고려된 결과 현재는 전업주부라도 부부 공동재산의 절반가량을 인정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양 교수는 “혼인 관계 중 경제적으로 취약해진 주로 여성 배우자의 가정 경제에 대한 기여를 인정하고 이혼 후 삶의 경제적 안정성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었다면서도 한계를 지적했다. “커다란 재산적 가치가 있는 부동산, 주식 배당 등의 자산은 공동재산으로 인정되지 않고, 여성 배우자들의 가정 경제에 대한 기여도 산정이 너무 포괄적”이라는 부분이다.

여성을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하는 현재의 노동시장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한국인의 생활시간조사 등을 보면 여성들은 가족 밖의 직업을 가졌던 그렇지 않건 간에 가사노동 뿐 아니라 돌봄노동을 남성보다 훨씬 더 많이 하고 있다”며 “직장을 가진 아내를 둔 남편이 전업주부 아내를 둔 남편보다 하루 약 2분 정도 가족내 노동 통계가 이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혼 시 재산분할 제도의 분할율뿐 아니라 좀더 구체적으로 여성의 기여를 '추론(reasoning)'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다시 말해 “여성들이 해 온 돌봄노동과 일가정 양립의 노력, 불리한 노동시장에서의 지위 등을 통합해” 여성의 재산형성 기여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혼인 관계에 있을 때 “부부의, 그리고 부모 자녀 간의 노동과 재산의 공정한 기여와 분배를 고려하여 재산 분할의 시점과 기회를 혼인 중으로 당겨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양 교수는 “결국 이러한 제도들이 부부간의 재산을 형평에 맞게 축적하도록 도모해 분할할 재산이 별로 없는 '형평한' 경제 상태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음은 양현아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격려사 전문

오늘 법의 날을 맞이하여 여성신문과 한국가족법학회 공동주최의 학술대회에서 격려사를 할 수 있게 되어서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여성신문의 오랜 독자이자 한국가족법학회의 오랜 회원으로서 오늘의 주제와 같은 학술대회를 열어주신 점에 감사드리고 관계자분들의 노고를 치하합니다.

저는 대학에서 젠더법학 분야를 가르치고 있는데 젠더법학이란 젠더관계의 시각에서 법과 법현실을 고찰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격려사도 젠더법학의 시각에서 다소 폭넓게 주로 이혼시 재산분할 주제에 관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격려사를 쓰다보니 이 글이 토론문과 격려사의 중간쯤에 있게 되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민법에 이혼시 재산분할제도가 도입된 것은 1989년 이루어진, 이른바 가족법 제3차 개정 때였고 이 개정은 1950년대부터의 이태영 변화를 위시한 많은 여성 시민들과 가족법학자 등에 의한 법개정운동에 크게 힘입었습니다. 무재산의 (주로) 여성 배우자에 대한 ‘위자료’가 아니라 정당한 권리로서  ‘자기 몫’을 받는다는 재산 분할의 제도가 도입된 것이지요. 이후 실무와 학계, 시민운동의 많은 노력으로, 여성 배우자의 몫이 적극 고려되었고 현재에는 전업주부라도 ‘부부공동재산’의 2/1 정도를 분할받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젠더법학적 견지에서 배우자의, 특히 재산이 없는 여성 배우자가 ‘부부공동재산’의 절반의 분할 몫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우선, 그것은 혼인 관계중 경제적으로 취약해진 주로 여성 배우자의 가정 경제에 대한 기여를 인정하고 이혼 후 삶의 경제적 안정성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할 일입니다. 하지만, 법실무에서는 재산분할의 대상이 되는 배우자의 재산의 투명한 조사, ‘분할 대상이 되는 부부 공동재산의 확정’과 같은 중요한 과제들이 많다고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부부재산분할의 ‘형평성’ 아래에는 고려해야 할 여러 요소들이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우리 민법이 규정하는 부부의 재산은 고유재산, 특유재산, 그리고 공유 추정재산으로 나누어져 있어서(제830조) 상당히 엄격한 별산제도(別産制度)를 취하고 있습니다. 즉, 재산적 가치가 유의미한 부동산, 예금, 주식, 배당 등의 자산은 (부동산에 대한 부부공동소유 등기 등을 제외하고) 특유재산이나 고유재산인 경우가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이혼시 별안간 부부의 일방 재산을 공동재산으로 “추정”하는 듯한 이중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에 대해서는 발제문에서도 언급되듯이 2006년 부부재산제도 개혁에서 다소 논의가 되었지만 이후 이 논의는 잠잠해진 상태 같습니다. 2006년이라는 시점은 2005년 가부장적이고 식민지 유산의 법제도인 호주제도가 헌법재판소와 국회에서 각각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제도로서 선고를 받은 상태였고, 이러한 가족제도의 개혁의 열망이 부부재산제도로 넘어오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사해행위의 취소’라는 한 제도를 도입한 채(제839조의 3) 미완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민법이나 정부 정책을 볼 때, 사유재산제도 하의 시장 질서를 친밀성 공동체인 가족에 대한 인정보다 더 우선시한다고 평가합니다. 

다음, 여성 배우자들이 주로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담당하고 있다고 할 때, 그녀들의 가정 경제에 대한 ‘기여도’의 산정이란 주로 포괄적· 정책적으로만 이루어진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한국인의 생활시간조사 등을 보면, 여성들은 가족 밖의 직업을 가졌던 그렇지 않건 간에 가사노동 뿐 아니라 돌봄노동을 남성보다 훨씬 더 많이 하고 있습니다. 직장을 가진 아내를 둔 남편이 전업주부 아내를 둔 남편보다 하루 약 2분 정도 더 가족 내 노동(가사노동+가정관리+가족보살피기)을 한다는 통계가 이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즘의 가족 연구들은 한결 같이 가족이 경제적 단위일 뿐 아니라 정서적 친밀성의 장소로서 개념화합니다. 돌봄 노동의 가치는 실은 개별 노동을 넘어서서 가족 경영의 차원에서도 생각되곤 하지만 그 노동에는 이름조차 잘 붙여져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가족 안의 아동, 노인에 대한 돌봄 노동의 배정(arrangement), 제사를 포함한 가족 행사의 도모, 자녀교육의 전망 등등. 이러한 정신적·사회적 활동은 당연히 그녀들을 임금노동 시장에서는 불리한 노동자의 위치에 놓이게 합니다. 그러니까 근로자로서의 여성들은 노동시장에서 덜 환영받는 노동자가 되기 쉽고 여러 협상과 합리적 계산을 거쳐서 여성들은 직장을 사직하는 경력단절로 접어드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한국 여성들의 대학 진학률이 80%를 넘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임에도 대졸 여성들의 취업율이 OECD 등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많이 낮은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제안하고 싶은 것은 이러합니다. 첫째, 이혼시 재산분할 제도의 분할율도 중요하지만, 여성들이 해 온 돌봄노동과 일·가정 양립의 노력, 가족역할로 인한 노동시장에서의 불리한 지위 등을 통합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여성의 기여에 대한 ‘추론(reasoning)’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당연하게도, 이혼 시 구현되는 재산분할이란 혼인 중의 노동과 재산 관계의 정의(justice) 내지 공정성의 확보와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정의로운 이혼제도는 정의로운 결혼제도를 만든다는 것이지요

둘째, 현재 재산분할의 시점을 이혼시로 못 박은 것은 섣부른 이혼을 방지하겠다는 국가의 우려가 담겨있을 수 있지만, 그보다 오히려 혼인 관계 안에서 부부의 노동과 재산의 공정한 기여와 분배를 고려하여 재산분할의 시점과 기회를 혼인 중으로 당겨서 제도화할 필요도 있다고 보입니다. 현재 부부간 증여가 한도(6억) 속에서 가능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정당한 몫을 찾는 재산분할과 성질이 다릅니다.

셋째, 우리 민법에 이미 규정되어 있는 부부간 재산제도의 약정(제829조)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궁구하여 혼인을 앞둔 남녀에게 각 개인과 가족의 특성에 맞게 곧 닥칠 부부의 재산관계에 대해 계획하고 교육할 필요가 많이 있다고 봅니다. 이 계약에 대해 변호사들이 조력한다면 혼인 중 노동과 경제생활에 대한 구체적 전망이 담보될 수 있고, 다른 한편 변호사의 업무가 유의미하게 늘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넷째 나아가, 혼인 관계속의 ‘형평’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국가는 노동시간의 조정, 일·가정 양립의 성평등한 배분, 돌봄 노동의 지원 등의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결국 이러한 제도들은 부부간의 재산을 형평하게 축적하도록 도모함로써 분할할 재산이 별로 없는 ‘형평한’ 가정 경제 상태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한국 가족은 극도로 소규모화되고, 저출생과 고령화가 급속히 이루어지며, 이른바 결혼 적령기의 청년세대는 법률혼을 기피하고 있으며, 이혼과 재혼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은 상당히 줄어 들었습니다. 이러한 가족과 사회의 변화의 맥락에서 볼 때, 법률혼만을 고집하며 ‘정상가족’만을 다루는 한국 가족법의 시간대는 너무 뒤쳐져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앞으로의 가족정책은 대안적 생활동반자법을 속히 입법하여 ‘다양한 가족’을 국가가 승인하고, 한국의 고학력의 여성인력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국가의 장기적 발전을 도모하고, 냉정한 시장 노동의 격무에 시달리는 남성 근로자들도 돌봄 노동의 보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도록 이 자리의 법률가 및 실무자들께서 힘써 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두서 없는 저의 말씀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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