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은 남성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실천하고자 교육, 연구,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벌거벗은 남자들>은 그간 가부장제 아래 왜곡된 남성성에 변화를 만들고자 남함페 활동가 5인이 남성 섹슈얼리티, 관계, 돌봄 등 남성의 삶 전반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톺아보려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누구나 누릴 수 없는 건 행복이라고 부르지 않는단다"

세상 사람의 절반만 누리는 행복이 있다면 그걸 행복이라 부를 수 있을까? 성별에 따라 행복에 조건이 붙는다면 어떨까?

지난 3월 4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여성노동자들을 가로막는 유리천장을 찢는 퍼포먼스를 진행한 뒤 3·8 여성대회가 열린 서울광장으로 행진했다. ⓒ박상혁 기자
지난해 3월 4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여성노동자들을 가로막는 유리천장을 찢는 퍼포먼스를 진행한 뒤 3·8 여성대회가 열린 서울광장으로 행진했다. ⓒ박상혁 기자

매년 3월 8일, 전국은 보랏빛으로 물든다.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기 때문이다.

세계여성의 날은 사회, 경제, 정치 등의 분야에서 여성의 권리를 외치고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 기념일이다. 1908년 3월 8일 1만명이 넘는 여성 노동자들이 미국 뉴욕의 광장으로 나와 근무 시간 단축, 임금 향상, 투표권 등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1975년 UN에 의해 매년 3월 8일이 국제 여성의 날로 지정됐다.

한국에서도 매년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고 있다. 올해로 서른아홉 번째 맞는 한국여성대회는 “성평등을 향해 전진하라”는 슬로건으로 열릴 예정이다.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성평등한 국회를 요구하는 행진도 진행한다. 올해 행사에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도 공동주최 단위로 함께한다.

서울 시내 개인택시 부제가 전면 해제된 지난해 11월 10일 오후 서울역 택시 승강장에서 승객이 택시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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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특권이 여성의 차별적 현실이다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김지혜 작가는 특권을 “주어진 사회적 조건이 자신에게 유리해서 누리게 되는 온갖 혜택”으로 말한다. 유치원생 자녀가 아프면 유치원은 아빠보다 엄마에게 연락을 더 많이 하는데, 이는 여성에게 양육 돌봄의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부담이 켜켜이 쌓여 노동에서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진급과 임금에 있어서 격차를 만든다.

여성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남성과 여성의 택시 이용 경험이 명확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은 적이 있다. 남성은 골목 안쪽에 있는 집 앞까지 가달라는 요청을 택시 기사에게 편하게 할 수 있지만, 여성은 대부분의 택시 기사로부터 폭언에 가까운 비난을 듣는다고 한다.

비난에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로 살고 있는 동네까지 왔기 때문에 나중에 찾아올까 봐 두렵고 택시를 타고 있는 순간에도 언제나 폭력의 위협에 놓여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같은 돈을 내고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지만, 성별에 따라 이렇게도 다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누군가(남성)에게 당연한 주어진 권리가 다른 누군가(여성)는 처절하게 외쳐야지만 가질 수 있다면, 전자의 권리를 우리는 특권이라 부른다. 이 특권이 잘못됐다고, 시스템과 체계를 바꿔내자고 목소리 내는 날이 세계여성의 날이다.

지난해 3월 2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자원 활동가들이 여성의 날 시민들에게 선물할 비누 장미를 만들고 있다. ⓒ여성신문
지난해 3월 2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자원 활동가들이 여성의 날 시민들에게 선물할 비누 장미를 만들고 있다. ⓒ여성신문

남성 문화에 없는 단어, 환대와 연대

매년 열리는 여성대회에 참가하면 여러 풍경을 목격할 수 있다. 빵과 장미를 여성에게 주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빵은 여성의 생존권, 장미는 참정권을 의미한다. 여성 노동자의 저임금으로 인한 생존권과 정치 참여의 권리를 서로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빵과 장미를 주고받는 것 말고 여성대회에서 느낄 수 있는 남다른 분위기가 있다. 바로 환대와 연대의 분위기다. 어떤 여성 단체 부스에 방문해도 성별, 나이, 장애 유무 등과 상관없이 모두를 환영한다. 따뜻한 말과 선물을 주고받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2023년 여성대회, 어느 단체의 부스에서 들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단체의 사무국에서 일하는 활동가로 스스로를 소개했던 한 분은 나에게 행진에 함께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이유를 물으니 “변화를 위해 함께 행진하며 남성을 동료로 만나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성을 동료 시민으로서 연대하고 싶다는 그녀의 말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간 어느 축제, 집회, 행사에 가더라도 이런 연결과 환대를 느낀 적은 없었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그녀와 가벼운 포옹을 나누었다. 그리고 여성들과 함께 서울 시청 광장 주변의 거리를 행진했다.

오는 3.8일 여성의 날 서울청계광장에서 제39회 한국여성대회가 열린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오는 3.8일 여성의 날 서울청계광장에서 제39회 한국여성대회가 열린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남성으로 여성대회에서 만나자

글의 서두에서 던졌던 질문을 다시 한번 복기해본다. 세상 사람의 절반만 누리는 행복이 있다면 그걸 행복이라 부를 수 있을까? 성별에 따라 행복에 조건이 붙는다면 어떨까? 이제는 명확히 답할 수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누리는 행복은 행복이 아니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묵인하는 행복은 행복이라 부를 수 없다.

3.8 여성대회는 여성도 행복을 누릴 동등한 권리와 자격이 있다고 외치는 행사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함께 손잡고 연대하며 행진한다. 그렇다면 그 자리의 절반은 남성이 채워야 하지 않을까?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세간의 우려와 달리 남성은 변화할 준비가 돼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망설일 필요 없다. 지금이 기회다. 3월 8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만나자.

김태환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본인 제공
김태환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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