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 여성공예 창업시설
예산 전액 삭감에 결국 폐쇄
마지막 축제 연 공예가들
“삶 빛나게 하는 작은 것들 잊히면 안 돼”

지난 1일 찾은 서울 노원구 서울여성공예센터 전경. ⓒ이세아 기자
지난 1일 찾은 서울 노원구 서울여성공예센터 전경. ⓒ이세아 기자
이달 문을 닫는 서울여성공예센터 더아리움이 지난 2일과 3일 서울 노원구 소재 센터에서 전시·경매·나눔·특강 등으로 구성된 ‘애프터 아리움, 잊혀지면 안 되는 작은 것들’ 행사를 열었다.  ⓒ서울여성공예센터 제공
이달 문을 닫는 서울여성공예센터 더아리움이 지난 2일과 3일 서울 노원구 소재 센터에서 전시·경매·나눔·특강 등으로 구성된 ‘애프터 아리움, 잊혀지면 안 되는 작은 것들’ 행사를 열었다. ⓒ서울여성공예센터 제공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려는 여성들에겐 든든한 동아줄이었다. 국내 유일 여성 공예 창업시설 ‘서울여성공예센터’는 지난 7년간 공예창업기업 378곳을 키워냈다. 창업 교육부터 제품 개발, 판로 개척까지 지원했다. (예비)공예창업가 1만2000명을 지원했다. 서울에서 공과금을 합해 월 20~30만원에 최대 2년간 머물며 고가의 전문 설비들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곳은 드물었다. 임신·출산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도 여기서 새롭게 공예를 배우고 창업을 시도해 왔다. 남녀노소 불문 공예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열린 공간이었다. 공예창작자마켓이 100회, 체험 클래스는 1000회 이상 열려 약 18만명이 참가했다.

지난해 12월15일, 서울시가 센터에 문 닫을 준비를 하라고 통보했다. 그해 10월 계약이 연장돼 2024년 말까지 머물 예정이던 기업 16곳이 길을 잃었다. 새 납품 계약도 맺고, 수천만원짜리 장비도 들여놓았는데 날벼락이었다. 센터 직원 21명도 일자리를 잃었다. 기업들은 12월22일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서울시에 대안을 제안하는 한편 기자회견을 열고 시의원들도 만났다. 바뀌는 건 없었다. 오는 29일을 끝으로 모두 철수해야 한다.

공예가들은 마지막 축제를 준비했다. “우리 같은 사례가 더 발생하지 않길 바라며”, “공예스러운, 그리고 예술가다운 방식으로 아쉬움을 나누고자” 했다. 지난 1일 센터를 찾았다. 내부는 황량했지만 센터와 입주기업 관계자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지난 1일 찾은 이예빛 몸 대표의 서울여성공예센터 입주 공간. 1000만원 넘는 대형 레이저 커팅기, 3D 프린터기 등 고가의 기기를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퇴거 통보를 받았다. ⓒ이세아 기자
지난 1일 찾은 이예빛 몸 대표의 서울여성공예센터 입주 공간. 1000만원 넘는 대형 레이저 커팅기, 3D 프린터기 등 고가의 기기를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퇴거 통보를 받았다. ⓒ이세아 기자

기업 대부분이 철수했지만, 비상대책위원장인 이예빛 몸 대표의 사무실은 그대로다. 지난해 대학 졸업 후 센터에 온 20대 신진 창업가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다 우리 전통문화를 활용한 공예에 빠졌다. ‘옥새 교통카드’로 크라우드펀딩 1억원도 달성했다. 1000만원 넘는 대형 레이저 커팅기, 3D 프린터기, 사무용 책상·컴퓨터와 부자재를 보관하는 선반을 보여줬다. “수천만원을 투자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나가라니....” 

도예가 이휘민 베이크메이크 대표도 떠나지 못했다. 도자기를 굽는 데 쓰는 전기 가마, 에어컴프레셔, 완성된 접시·컵 등도 그대로다. “이 작업실에 1000만원은 들인 것 같아요. 2년이라는 미래를 보고 투자한 거지, 1년 있다 나갈 줄 알았다면 안 그랬겠죠. 갑자기 새 계약서를 주고 서명하지 않으면 5일 내로 나가라니요. 법적 대응도 고민했지만 당장 작업실 구하기도 힘든데 감당할 수 있을까요.”

지난 1일 찾은 이휘민 베이크메이크 대표의 서울여성공예센터 입주 공간. 도자기를 굽는 데 쓰는 전기 가마, 에어컴프레셔, 완성된 접시·컵 등이 그대로 있었다. ⓒ이세아 기자
지난 1일 찾은 이휘민 베이크메이크 대표의 서울여성공예센터 입주 공간. 도자기를 굽는 데 쓰는 전기 가마, 에어컴프레셔, 완성된 접시·컵 등이 그대로 있었다. ⓒ이세아 기자
지난 1일 찾은 민지영 눈에뜰 대표의 서울여성공예센터 입주 공간. 센터 폐관 소식을 접한 거래처의 발주 취소로 덩그러니 남은 안경 세트가 한쪽에 쌓여 있었다.  ⓒ이세아 기자
지난 1일 찾은 민지영 눈에뜰 대표의 서울여성공예센터 입주 공간. 센터 폐관 소식을 접한 거래처의 발주 취소로 덩그러니 남은 안경 세트가 한쪽에 쌓여 있었다. ⓒ이세아 기자

거래처가 갑자기 발주를 취소해 난처해진 기업도 있다. 안경 디자이너 민지영 눈에뜰 대표 얘기다. “‘신문에서 그곳 상황을 보니 지속적 공급이 어려울 것 같다’며 거래하지 않겠대요. 물건은 다 준비했는데....” 속상해할 겨를이 없다. “부랴부랴 진행 중인 공모 사업을 뒤져서 다섯 군데에 서류를 냈고 면접 보러 다녀요. 대학을 갓 졸업한 예비창업자들까지 몰리는 시기라 경쟁이 극심해요.”

금속공예(학사), 산업디자인(석사)을 전공하고 안경사면허증을 땄다. 유명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하다 자기 브랜드를 냈다. “제게 여기는 금액으로 따질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에요. 사업의 발판, 구심점이었죠.”

지난 1일 찾은 손단비 스튜디오 아록 대표의 서울여성공예센터 입주 공간. 주문량이 늘어서 작업에 바빠 옮길 곳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세아 기자
지난 1일 찾은 손단비 스튜디오 아록 대표의 서울여성공예센터 입주 공간. 주문량이 늘어서 작업에 바빠 옮길 곳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세아 기자

손단비 스튜디오 아록 대표는 일이 바빠 퇴거 준비도 못 하고 있다. “주문량이 늘어서 하루에 16시간씩 작업해요. 1인 기업이라 제가 다 해요. 과로로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아 병원에 다녀요. 부산 백화점과 협업할 계획이었는데 결국 취소했어요.”

공예가가 된 지 10여 년. 2020년 아록을 설립해 우리 전통과 섬유예술공예의 만남으로 주목받는 브랜드로 키웠다. 손 대표는 “후배들 볼 면목이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대학생들에게 ‘나도 이렇게 지원받아서 해냈다, 여러분도 자기 브랜드를 만들라’고 했거든요. 그랬는데 이렇게 쫓겨나니 괜히 주눅이 들어요. 다른 곳에 가더라도 또 공간이 없어지면 어쩌나 싶고요.”

꿈을 접은 이들도 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지난해 센터에 입주한 20대 섬유공예가는 상심해 창업을 포기하기로 했다. “목공예 브랜드를 만들려고 센터 예비창업자 과정에 적극 참여하고 입주를 준비하던 분도 있었어요. 얼마 전 통화했는데 당분간 공예를 접어야 할 것 같대요. 같이 울었어요.”(민 대표)

지난 1일 찾은 서울 노원구 서울여성공예센터 내부. 입주기업 대다수가 철수했다. ⓒ이세아 기자
지난 1일 찾은 서울 노원구 서울여성공예센터 내부. 입주기업 대다수가 철수했다. ⓒ이세아 기자

센터 존폐 논란은 2023년 중순부터 불거졌다. 서울시는 센터가 포함된 공릉동 옛 북부법조단지 일대를 가족 여가·청년창업 거점으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그해 5월 밝혔다. 2026년부터 대규모 공사가 시작될 거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해 3월 입주한 작가들은 계약 연장 심사를 통과하면 최대 2년간 머물 수 있다는 말만 믿었다. 행정감사 당시 김선순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도 2026년까지 시설을 사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해 12월15일, 서울시는 센터 운영비를 전액 삭감한 2024년도 예산안을 시의회에 제출했다. 최종 심의를 거쳐 확정됐다. 센터의 모든 사업은 12월31일자로 공식 종료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여성신문에 “지역 활성화 측면에서 일반 시민이 더 많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로 활용할 계획”, “큰 틀에서 시민들을 위해 무엇이 나은지 고민해 왔다”며 “입주기업 입장에선 서운할 수밖에 없겠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충분히 말씀드렸다”고 밝혔다. 

실적이 문제였을까. 입주기업 총매출액은 2019년 약 20억원, 코로나19 여파에 2020년 8억6000만원으로 바닥을 찍었으나 2021년 12억원, 2022년 13억원으로 회복세였다. 2024년부터 코로나19 이전 매출을 회복할 거라는 전망도 나왔다. 서울시 관계자는 “예비창업자, 초기 창업자들의 실적은 저조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시는 그분들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계속 지원하려 노력해 왔다. 실적 문제는 아니다”고 했다.

‘여성’ 지원 기관임이 문제가 된 게 아니냐는 의혹도 부인했다. “‘시가 운영하는 여성 일자리 관련 시설을 남성들도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민원이 가끔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 와전됐다”고 했다.

서울여성공예센터 더아리움은 그간 남성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공예 체험 클래스 등을 열었다. 사진은 지난 3일 서울 노원구 소재 센터에서 열린 ‘애프터 아리움, 잊혀지면 안 되는 작은 것들’ 행사 현장.  ⓒ서울여성공예센터 제공
서울여성공예센터 더아리움은 그간 남성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공예 체험 클래스 등을 열었다. 사진은 지난 3일 서울 노원구 소재 센터에서 열린 ‘애프터 아리움, 잊혀지면 안 되는 작은 것들’ 행사 현장. ⓒ서울여성공예센터 제공

공예가들이 떠난 자리에 또 다른 공예가들이 올 거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서울시는 ‘신당창작아케이드’ 입주작가들이 2025년 이곳으로 이동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서울중앙시장 내 신당지하상가 빈 점포들을 리모델링해 2009년 공예·디자인 작가들의 공방을 열었는데, 시설이 낡아 사고·재해 위험에 노출돼 있다. 신당창작아케이드를 운영하는 서울문화재단 관계자는 여성신문에 “유지보수비용 증가 등 고민이 많던 차에 빈 건물이 나왔다길래 사용 신청서를 냈다”며 “(재개발 착수 예상 시점인 2026년까지) 1년 있다가 나와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던데,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 재단에서 지역사회와 잘 어울리며 잘 운영하면 창작지원공간 기능은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센터 입주기업들 사이에서도 알음알음으로 퍼지던 소문이다. “결국 다른 공예 작가들에게 공간을 제공할 거라면, 우리는 왜 지금 나가야 하나요? 멀쩡한 공간을 왜 1년간 비워둬야 하는 건가요?” 입주기업 대표들이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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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여성 창업·경제활동 활성화와 경력단절여성 지원 등을 목적으로 센터를 세웠다. 우리나라 공예사업체 관련 종사자는 총 6만4219명, 여성이 41.1%다. 사업체 86%는 개인사업자고, 대표자 중 여성은 39.0%다. 사업체의 35.3%가 서울에 있다(2022 공예산업 실태조사).

많은 여성들에게 센터는 ‘창업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붙잡을 동아줄이었다. 이 대표는 “예술인들도 어렵지만, ‘공예인’을 지원하는 공간은 정말 많지 않다. 많은 공예인들이 이 근처에 일부러 공방을 낸 이유다. 그렇게 센터에 모인 다양한 공예인들이 내는 시너지 효과가 컸다”고 했다. 손 대표도 “공예 브랜드가 클 때까지 10년이 걸린다고 한다. 긴 안목을 갖고 투자해야 한다”며 아쉬워했다.

방은영 센터장은 “우리의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게 돼 허무하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지자체가 공예산업과 여성 창작자들을 위해 거시적 관점으로 지원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매해 쏟아져 나오는 공예 전공자들이 ‘살길’을 뚫어주는 것도 공공의 역할이니까요.”

이달 문을 닫는 서울여성공예센터 더아리움이 지난 2일과 3일 서울 노원구 소재 센터에서 전시·경매·나눔·특강 등으로 구성된 ‘애프터 아리움, 잊혀지면 안 되는 작은 것들’ 행사를 열었다. ⓒ서울여성공예센터 제공
이달 문을 닫는 서울여성공예센터 더아리움이 지난 2일과 3일 서울 노원구 소재 센터에서 전시·경매·나눔·특강 등으로 구성된 ‘애프터 아리움, 잊혀지면 안 되는 작은 것들’ 행사를 열었다. ⓒ서울여성공예센터 제공
이달 문을 닫는 서울여성공예센터 더아리움이 지난 2일과 3일 서울 노원구 소재 센터에서 전시·경매·나눔·특강 등으로 구성된 ‘애프터 아리움, 잊혀지면 안 되는 작은 것들’ 행사를 열었다. ⓒ서울여성공예센터 제공
이달 문을 닫는 서울여성공예센터 더아리움이 지난 2일과 3일 서울 노원구 소재 센터에서 전시·경매·나눔·특강 등으로 구성된 ‘애프터 아리움, 잊혀지면 안 되는 작은 것들’ 행사를 열었다. ⓒ서울여성공예센터 제공
이예빛 몸 대표(중앙)를 포함한 서울여성공예센터 더아리움 마지막 입주기업 대표들이 지난 3일 서울 노원구 소재 센터에서 열린 ‘애프터 아리움, 잊혀지면 안 되는 작은 것들’ 행사에서 졸업식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울여성공예센터 제공
이예빛 몸 대표(중앙)를 포함한 서울여성공예센터 더아리움 마지막 입주기업 대표들이 지난 3일 서울 노원구 소재 센터에서 열린 ‘애프터 아리움, 잊혀지면 안 되는 작은 것들’ 행사에서 졸업식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울여성공예센터 제공

센터는 지난 2일~3일 마지막 축제를 마쳤다. ‘After Arium, 잊혀지면 안 되는 작은 것들’이라는 주제로 전시, 마켓, 공예 체험, 작품 경매 등을 열었다. 남은 예산이 없어 모금과 후원으로 운영비를 마련했는데, 많은 응원 속 사전 온라인 펀딩 100%를 달성했다. 창작자, 강사, 멘토, 시민들을 포함해 1000여 명이 다녀갔다. 축제 수익금은 여성공예가와 미혼모 단체 등에 전액 기부 예정이다.

“작가님들이 그동안 해오신 일은 틀림없이 다른 누군가에게 봄을 예고하는 일이 될 거예요.” 한 시민이 남긴 쪽지다. 비대위는 “갑작스럽게 사업이 종료되는 비합리적이고 독단적인 행정 처리 방식의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한 단체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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