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강릉시 강동면 일출 명소 정동진을 찾은 관광객들이 붉게 솟아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강원 강릉시 강동면 일출 명소 정동진을 찾은 관광객들이 붉게 솟아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니까, 올해 내가 쉰여덟인 거네.”

아내가 산책하다 말고 불쑥 내뱉는다. 첫째에 이어 막내까지 직장을 구해 독립해나가자 이따금 허전해하기에 휴일이면 풍광 좋은 곳을 찾아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오늘은 때마침 눈이 내리기에 가까운 강변을 찾았다.

“음, 바뀐 개념대로라면 아직 쉰여섯이야. 생일도 아직 멀었잖수.”

“쉰여덟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확 늙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진짜 늙은이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어.”

나와 아내는 나이 차이가 조금 있는 편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가 잠시 걷더니 주변 사람들 얘기를 꺼낸다. 어제 S를 만났는데 남편이 벌써 일주일째 폐렴으로 입원 중이래. K는 허리가 아프다며 나흘째 결근이야. 나이가 들면서 다들 병을 달고 사는가 봐. 나도 얼마 전에 수술했잖아 등등. 아내가 이런 소식을 전하는 이유는 뻔하다. 나보고 조심하라는 얘기.

“왜, 그래서 걱정돼?”

“그럼 걱정 안 돼? 형도 조심해야 해요.”

“이 정도면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유. 물론 조심도 하고 운동도 꾸준히 하겠지만 이제 노력보다 하늘의 선택이 우선 아니겠어?”

사실이 그렇다. 아내가 걱정할까 입을 다물고 있지만 얼마 전 고향에서 만난 친구들의 대화가 대부분 약, 병원, 통증 얘기였다. 가난한 동네라 조로하는 면이 없지 않아도 그래도 나이를 속일 수는 없는 법이다.

“미리 걱정하지는 말자고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걱정하는 건 바보짓이야. 건강에도 나쁘고. 맘 편히 지내다 상황이 닥치면 그때 대처를 잘하면 돼요.”

아무리 달래도 해가 바뀌고 날이 갈수록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은 달라질 것이다. 어쩌면 늙는다는 건 그런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내 주름과 함께 아내의 수심도 깊어지는 것. 그다지 춥지 않은 날이건만 강제로 목도리를 둘러주고 비니를 쓰게 한 것도 그래서이리라. 나이에 장사가 없다는 정도는 나도 알기에 다소 내키지 않아도 군말 없이 아내 지시를 따르고 있다.

나 정도면 또래 중에도 건강한 축에 속한다. 이틀에 하루 정도는 땀이 날 정도로 운동을 하고 휴일이면 오늘처럼 함께 열심히 걷기도 한다. 은퇴 후 살림하고 농사짓고 틈틈이 글빚을 갚고 책을 펼치는 삶에도 잘 적응해가고 있다. 어디 특별히 아픈 곳도 없고 크게 우려할 일도 없다. 어쩌면 건강을 지키려 노력하는 것도 내 나이에 대한 불안감보다 아내의 걱정을 덜기 위해서인지 모르겠다. 내가 아프면 나보다 더 아파할 사람이기에.

“이제 온전히 둘 뿐이네.”

“그래 그 삶에도 익숙해져야지.”

문득 주름이 늘수록 주변이 비어간다는 생각도 든다. 은퇴 자체가 세상과 거리를 둔다는 뜻이리라. 아이들이 곁을 떠나듯 지인들도 한 사람씩 멀어진다. 이러다가 결국 둘만 남는 것이겠지? 부부 사이가 중요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끝까지 곁을 지킬 사람은 배우자밖에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요. 내가 여든네 살까지는 열심히 밥해줄 테니까.”

“무슨 소리야. 아흔네 살까지는 나 책임져야지.”

내 말에 아내가 눈을 흘기며 반박한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으며 정말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올해 첫 바람을 게으르지 않은 삶으로 정해본다. 게으르지 않게 운동하고 게으르지 않게 식단을 짜서, 최대한 건강하게 살기. 아내의 근심을 덜어주기. 

조영학/ 번역가, 『상차리는 남자! 상남자!』 저자
조영학/ 번역가, 『상차리는 남자! 상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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