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퇴원했다. 수술 후 열흘만이다. 다만 장이 아직 정상이 아닌 터라 퇴원 후에도 당분간은 삼시세끼 죽을 먹어야 한다. 처음 이틀은 불린 멥쌀이나 찹쌀을 믹서기에 갈아 미음을 끓이고 그 이후엔 계란죽, 미역죽, 황태죽 등으로 메뉴를 바꿔가며 해주었다. 죽이 어려운 음식은 아니다. 압력솥에 재료를 모두 넣고 10분 정도 끓이면 그만이나 재료를 환자가 소화할지 챙기는 게 더 어렵다. 식이요법이 잘못되면 한 달 내엔 장에 고름이 찰 수 있다는 의사의 은근한 협박도 있었다.

재첩국을 떠올린 것도 그래서다. 한 주 정도 후면 자극이 크게 강하지 않은 음식은 괜찮다고 했는데 문득 “그래, 재첩국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동의보감에도 장기능 개선에 효과가 좋다고 했으니 지금 아내한테 딱이다 싶었다.

재첩국 선택은 옛기억도 한몫 했다. 70년대 말 부산 광복동 산꼭대기에 살 때 이른 새벽마다 “재칫국 사이소, 재칫국 사이소”하는 아주머니들 고함소리가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낙동강에서 채집한 재첩을 끓여 들통에 이고나온 것이다. 낙동강 오염이 심해지고 80년대 말 강 하구에 댐이 서면서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 되었다는데 그 기억만큼은 좁은 골목과 그 목소리까지 아직 생생하게 남아있다. 아마도 한 그릇에 200~300원쯤 했을 텐데 우린 그만한 돈도 없어 매번 침을 삼키기만 했다. 지금처럼 이따금 재첩국 생각이 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나는 어시장에서 재첩 1kg을 사왔다. 재첩은 살을 발라 무침, 전을 만들어도 좋지만 오늘은 오롯이 부추를 잔뜩 넣은 재첩국이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재첩국은 손이 특히 많이 가는 음식이다. 소금물에 담가 2~3시간 정도 해감을 하고 깨끗이 씻은 다음, 조개가 입을 열 때까지 데쳤다가 살을 발라내야 하는데 기껏 2~3센티미터 크기의 작은 조개에서 그보다 더 작은 조갯살을 떼어내는 일이 장난이 아니다. 하기야, 내가 하는 일이 매냥 그렇다. 노지 달래나 냉이를 하나하나 다듬어 식재료로 쓰는 것도, 김장하고 남은 무청, 배춧잎들을 삶아 널어 시래기, 우거지를 만드는 것도, 남들은 바빠서, 돈이 되지 않아 기피하는 일들만 물고 늘어지니 말이다. 누구 말마따나 “뭣이 중헌디?” 격이다.

주걱으로 저어가며 재첩을 데치면 우유처럼 뽀얀 국물이 우러난다. 어쩌면 바로 그 국물이 재첩국의 백미가 아닐까? 식욕을 돋우는 색과 향에 벌써부터 입맛을 다시고 만다. 난 살을 바르고 난 껍데기를 조금 더 삶아 국물에 더해주었다. 껍데기에서 다싯물이 나온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것도 같다.

국물을 잠시 두어 흙, 조개 부스러기 따위를 가라앉힌 다음 윗국물만 따라 재첩살을 넣고 조금 더 끓였다. 텃밭 부추도 송송 썰어 넣었다. 간은 다진마늘과 소금만으로도 충분하다. 저녁상에 겉저리 김치와 함께 내놓자 아내도 감동하는 눈치다.

- 와, 이거 손 많이 가는데 조갯살까지 다 발랐네.
- 그러게 말야, 1시간 가까이 살을 발랐는데도 기껏 한 줌이야.

아내의 감탄사에 나도 괜히 공치사를 해보았다. 그러고 보니 재첩살 벗기는 일이 죽어라뛰었건만건질게한줌밖에 안 되는 내 인생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기야그것도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삶이다싶다.양파를벗기면남은 고갱이 하나 없이 눈물만쏙빼놓지 않던가. 

조영학/ 번역가, 『상차리는 남자! 상남자!』 저자
조영학/ 번역가, 『상차리는 남자! 상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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