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신작
두 소년 얽힌 학교 폭력사건
사건 좇다 발견한 괴물은 ‘나’

영화 ‘괴물’의 한 장면. 사진=NEW 제공
영화 ‘괴물’의 한 장면. 사진=NEW 제공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괴물은 누구게?” 영화 <괴물>의 두 아역 주인공 미나토(구로카와 소야)와 요리(히이라기 히나타)는 버려진 열차 속에 앉아 ‘괴물은 누구게’를 묻고 맞추는 놀이를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영화 속에서 ‘괴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반복해서 던진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계속 괴물을 찾는다. 하지만 결국에는 아무도 괴물이 아니었음을 관객들은 알게 된다. 대신 어떻게든 누군가를 괴물로 만들려고 매달렸던 내가 진짜 괴물인지 모른다는 자괴감을 안겨준 채 영화는 끝난다. 

영화는 학교에서 있었던 교사의 폭력을 소재로 전개된다. 싱글맘 사오리(안도 사쿠라)는 아들 미나토의 행동에서 이상한 모습들을 발견한다. 그런 미나토는 “사람의 뇌에 돼지의 뇌가 들어있다면 그건 사람이냐”고 묻는다. 미나토는 학교에서 호리 선생(나가야마 에이타)에게 “너의 뇌는 돼지의 뇌와 뒤바뀌었다”는 언어 학대와 함께 폭행을 당했음을 사오리에게 말한다. 항의하러 학교를 찾아간 사오리는 호리 선생과 후시미 마키 교장(다나카 유코)의 폭력 사실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한다. 그러나 교장 선생도 호리 선생도 모두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 숙이며 기계적인 사과를 하기에 급급한다. ‘오해’였다고만 할 뿐 끝내 ‘사실’임을 고백하지 않는 그들의 태도에 분노한 사오리의 눈에는 학교 선생들이 괴물이었다. “저는 사과를 듣고 싶은 게 아니예요. 저를 그냥 인간으로 대우해주면 안 되나요? 당신들에게 인간의 마음이라는 게 있나요? 당신들은 인간인가요?”  

영화 ‘괴물’의 한 장면. 사진=NEW 제공
영화 ‘괴물’의 한 장면. 사진=NEW 제공

 

그러나 영화는 2장에서는 관점을 바꿔 호리 선생의 시선에서 동일한 상황을 복기해 나간다. 사오리의 눈으로만 보고 호리 선생을 괴물이라 여겼던 관객들의 생각은 하나씩 허물어지게 된다. 호리 선생의 시선에서 본 학교 폭력의 진실은 전혀 달랐다. 미나토에게 “너의 뇌는 돼지의 뇌와 뒤바뀌었다”는 말을 한 것은 호리 선생이 아니라 요리를 학대하던 그의 아버지였다. 호리의 폭력이라는 것도 교실에서 과잉 흥분 행동을 한 미나토를 제어하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상처를 낸 것이었다. 요리는 호리 선생이 미나토를 때렸다고 말했지만 거짓말이었다. 미나토는 호리 선생이 자기를 밀쳐서 계단에서 쓰러졌다고 말했지만 그것도 거짓말이었다. 호리 선생은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학부모가 변호사를 샀다며 학교부터 살려야 한다며 사과를 강권하는 교장 과 동료들에게 떠밀려 억지 사과를 한 것이다. 호리 선생은 아이들이 퍼뜨린 근거없는 소문에 의해 ‘걸스바’에나 드나드는 선생으로 손가락질 당하기도 한다. 한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하지만 호리 선생은 성실하게 교사의 본분을 다하려던 선한 인물이었음을 관객들은 알게 된다. 

영화 ‘괴물’의 한 장면. 사진=NEW 제공
영화 ‘괴물’의 한 장면. 사진=NEW 제공

영화의 3장에서 나타나는 세번째 시선은 아이들의 것이다. 미나토는 왜 거짓말을 했던 것일까. 미나토는 교장에게 고백한다.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애가 있어요. 그걸 말할 수 없어서 거짓말을 했어요. 내가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게 들통 날까봐 말할 수가 없었어요.” 그 얘기를 들은 교장 선생도 말한다. “그랬구나. 나도야.” 교장 선생은 자신이 운전하던 차로 손녀를 치어 사망하게 만들었지만 남편이 운전한 것으로 꾸미는 거짓말을 했다는 암시가 영화 속에 나온다. 미나토는 동성인 요리를 친구 이상으로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런데 요리는 같은 반 남자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집에서는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는다. 미나토는 그런 요리를 지켜주고 싶지만 누구에게도 그런 감정을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호리 선생을 끌어들인 것이다. 미나토도 교장 선생도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그런 거짓말들을 한 것이 미나토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아들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던 엄마 사오리, 아이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호리 선생에게도 책임은 있었다. 어른들도 모두 편견에 사로잡혀 아이들을 괴물로 만들었던 것이다.

영화의 구성이 매우 독특하다. 학교 폭력을 둘러싼 하나의 상황을 놓고 세 사람의 서로 다른 시선을 비교하면서 풀어나간다. 이런 각본은 일본에서 최고의 드라마 작가로 불리우는 사카모토 유지가 맡았다. 지난 3월 제76회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을 만큼 구성이 탄탄하고 정교하다. 관객들은 3인의 시선을 통한 퍼즐 맞추기를 통해서 전체적인 진실에 비로소 다가가게 된다. 동일한 상황이 각자의 시선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해석되고 단정되는가를 알게 되면서 관객들은 전율하게 된다. 사카모도 유지는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피해를 본 건 잘 기억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준 일은 알아채기 힘들지 않나. 이걸 어떻게 각본화할지 계속 고민했다. 고심 끝에 선택한 방법이 바로 시점을 세 부분으로 나눈 구성이었다.” (<씨네 21> 인터뷰)

“사실 진실은 이야기 바깥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야기 안에서 묘사하는 악인이 프레임 바깥에서는 좋은 사람이고, 선인이라 생각한 사람은 나쁜 사람일지도 모르지 않나”라고 사카모도 유지는 반문한다. 하나의 시선만으로 선과 악을 일방적으로 규정하고 단죄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가를 우리는 깨닫게 된다. 

영화 ‘괴물’의 한 장면. 사진=NEW 제공
영화 ‘괴물’의 한 장면. 사진=NEW 제공

세 번째 시선까지 끝나고 나면 등장 인물 가운데 ‘괴물’은 없었음을 알게 된다. 각자의 눈에는 상대가 악한 얼굴을 가진 괴물로 보였지만, 모두 저마다의 선한 의지를 갖고 있던 인물들이다. 서로가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섣부르게 타인을 괴물로 단죄했던 것이다. 각자의 시선은 부분적인 진실만을 담고 있었다. 학교에서 벌어진 일련의 상황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여러 시선이 하나로 통합되어야 했다. 그러나 서로 단절되고 소통이 사라진 시대에 다른 사람의 입장까지 헤아리는 사람은 없다.

고레에다 감독의 탁월함은 이토록 냉정하고 비정한 세상의 얘기를 풀어가면서도 그 특유의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에게 괴물은 누구였을까. 고레에다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3장을 다 보고 나면 상황을 제대로 알게 된다. 그때 관객 중에는 ‘알고 보니 괴물은 나였구나’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거다. 괴물 찾기를 하는 화살을 여기저기 돌리다 결국엔 그 화살이 내게 돌아오는 구조라는 점이 이 이야기의 뛰어난 점”이라고 말한다. 괴물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기어코 누가 괴물인가를 찾으려 매달리곤 했던 바로 ‘나’였던 것이다. 고레에다 감독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그래서 섬뜩하다. 조용한 힘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성찰의 시간을 갖도록 하는 영화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뉴시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뉴시스

영화의 마지막에 산사태가 덮친 열차에서 빠져나온 미나토와 요리가 말을 주고받는다. “우린 다시 태어난 걸까?” “아니. 원래 그대로야.” “좋아, 다행이야.” 고레에다 감독은 이 말의 의미를 풀어주지 않은 채 영화를 끝낸다. 압축된 대사에 대한 해석은 관객의 몫이다. 두 아이는 다시 태어나기를 원했던 것이 아닐까. 두 아이에게는 다시 태어나고 싶은 마음, 지금 이대로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뒤섞여있던 것이 아닐까. 어쨌든 원래 그대로여서 다행이라는 아이들의 얘기가 다행으로 들린다. 미나토와 요리는 푸른 숲길을 거쳐 밝은 희망을 향해 함께 달려간다. 그렇게 밝은 아이들을 보노라면 그들을 이상한 아이로 생각했던 내가 괴물이라는 자책감이 든다.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진실이 있는 것인데, 우리는 자신의 편견에 따라 함부로 타인을 규정하고 상처를 주지 않아왔던가. 그러니 영화 <괴물>은 일본의 어느 교실에 머무르지 않는, 오늘 우리 시대의 얘기이다.

두 소년 배우 구로카와 소야와 히이라기 히나타의 연기가 출중하다. 엄마 사오리를 연기한 안도 사쿠라, 교장 선생 역의 다나카 유코의 연기도 두 인물의 캐릭터를 훌륭하게 살려낸다. ​영화가 끝나는 장면에 지난 3월 세상을 떠난 류이치 사카모토의 ‘아쿠아(Aqua)’가 흐른다. 여러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던 관객들에게 음악은 맑고 따뜻하게도, 쓸쓸하게도, 슬프게도 들린다. 음악이 끝날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된다. 음악으로 영화를 기억하는 경우가 있다면 이 작품이 그것일 게다.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가 12월 27일 국내에서 개봉된다. 암투병을 하던 류이치 사카모도의 마지막 연주 장면들이 아무런 인터뷰나 내레이션도 없이 이어진다고 한다. 영화 <괴물>의 여운이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사진=홍수형 기자
유창선 작가. 사진=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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