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간 『몰락의 시간』 문상철 작가
피해자 돕자 정치권에서 쫓겨나고, 자녀 대상 겁박 이어져
죽음까지 생각했지만…나쁜 선례 만들고 싶지 않아
각지 성폭력 피해자 지원 활동가·청년 캠프원들이 피해자 도와
안희정 사건은 현재 진행형…가해자 사과가 판결의 마무리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여성신문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여성신문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를 아버지로 추켜세우며 ‘안희정 가문’을 일구려고 했던 측근들과 팬덤은 안희정의 성폭력을 감추고자 피해자와 조력자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선정적인 사진의 주인공이 피해자라고 선동하거나, 유치원에 다니는 자녀를 납치하겠다고 겁박하는 등 인륜을 저버린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안 전 지사가 몰락하는 과정을 최측근의 눈으로 써낸 『몰락의 시간』 작가 문상철(40)씨는 정의롭다고 믿었던 안희정의 측근들이 성폭력 피해자와 조력자들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2차 가해를 저지르는 모습을 보며 ‘세상이 붕괴되는 느낌에 죽음을 택해야 하나 고민했다”고 고백했다. 

문 작가는 누구보다 안 전 지사를 존경하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도왔던 핵심참모였다. 때문에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김지은씨의 호소를 듣고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피해자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 동료 김지은씨를 돕기 시작했다.

그는 도청 사람들과 안 전 지사의 측근들도 당연히 김지은씨를 도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은 권력의 편에 서 피해자와 조력자에게 무차별적인 비방과 협박을 가했다. 직장을 잃고, 자녀가 납치될 수 있다는 위협을 당하면서도 ‘권력에 굴복하는 나쁜 선례를 만들 수 없다’며 꿋꿋이 피해자를 도왔다.

역경을 뚫고 안 전 지사가 유죄를 선고받기까지, 성폭력 피해자 지원 활동가들과 안희정 청년 캠프원들의 도움이 컸다. 문 작가는 일면식도 없던 활동가들이 김지은씨를 돕기 위해 진심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정치인이나 정부가 아닌, 활동가들이 세상을 바꾸는 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

안희정은 대법원의 성범죄 인정 판결을 받고도 계속해서 가해 사실을 부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문 작가는 “사법적 판결의 마무리는 가해자의 사과에서 끝난다. 피해자는 여전히 일상을 회복하지 못한 채 재판에 나서고 있다”며 안희정 성폭력 사건이 현재 진행형임을 강조했다.

문 작가는 『몰락의 시간』을 통해 얻은 인세 전액을 한국성폭력상담소에 기부하기로 했다. 기부금은 성폭력 피해자 지원에 사용될 예정이다. 출판 후 그동안 못 뵀던 분들을 찾아뵙겠다는 그는 “기회가 된다면 독자 분들과 작은 서점이나 책방에 모여 정치 구조와 정치 내부 실상에 대해 함께 토의하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다음은 문상철 작가와의 일문일답.

문상철 작가 ⓒ박상혁 기자
문상철 작가 ⓒ박상혁 기자

- 도청을 떠난 뒤 김지은씨가 수행비서로 임명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소식을 듣고 의아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통상적으로 도지사의 수행비서는 동성이 맡는다. 이성이 수행비서 일을 못할 건 없지만,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는 만큼 불편한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이는 도청에서 이성 수행비서를 임명한 첫 사례다.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기간에 문재인 당시 후보의 수행 팀에 여성이 있었다. 이를 본 안희정이 ‘나도 여성 수행비서를 두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안희정은 경선 이후 김지은씨를 수행비서로 직접 임명했다.

- 김지은씨의 성폭력 피해를 듣고 무슨 생각이 들었나.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땐 머리가 멍한 기분이었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피해자가 어려움을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하는데 외면할 수 없었다. 처음 들었던 생각은 다 잊고 도와줘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검찰과 법정에 가서 경험한 바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다. 도청과 참모조직 인사들도 김지은씨를 도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 대다수는 ‘있어도 없는 일처럼 굴어라’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 피해자를 향한 2차가해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안희정 측근들은 정치에서 받글(메신저 등을 통해 퍼지는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을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이용하는 데 능숙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거짓정보를 포함한 피해자 신상을 만들어 무차별적으로 주위에 뿌렸고, 다른 사람의 선정적인 사진을 피해자라고 지칭해 퍼뜨리며 비난하기도 했다.

김지은씨가 정치적 의도 및 기획을 가지고 피해자 행세를 한다는 받글도 퍼뜨렸다. 가해자가 정치적 희생양이 됐다는 여론을 만들기 위해, 피해자 개인을 공격하고 정치적인 음모가 있었다고 선동하는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다“

- 김지은씨를 도운 이들도 정치권에서 자리를 잃게 됐다.

“김지은씨를 도울 당시 국회의장실에 있었는데, 국회의장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문상철을 해고하라’는 메시지가 쏟아지는 모습을 봤다. 외압이 거세지자 국회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 때는 이낙연 후보 캠프에 들어갔으나 참가 3일 만에 캠프를 떠나야 했다. 두 사건 모두 안희정 측근들에 의한 압박이 있었다. 권력자의 곁에 서서 원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끝까지 불이익을 받는다는 선례를 남기고 싶은 것이다.”

- 자녀의 안전을 위협받기도 했다고.

“김지은씨 편에 선 신용우씨는 아이가 다니던 유치원에 신원미상의 연락이 와 ‘신용우의 아이를 데리러 가겠다’는 납치 겁박을 경험했다. 사건 이후 안희정의 가족은 내 가족에게 ‘잘 생각해야한다. 아이는 잘 지내고 있느냐’며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후로도 안희정 측은 내가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하자 안희정이 내 아이를 안고 있는 사진을 재판장에 띄우며 ‘안희정은 민주적인 지도자’라고 주장했다. 납치 미수와 문자 메시지 이후로 불안한 상태에서 내 아이를 증거자료로 이용하는 모습에 큰 압박을 느꼈다.“

- 그럼에도 피해자를 돕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믿었던 사람들이 자신의 영달을 위해 한순간에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에 대한 믿음 자체가 흔들려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피해자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은 포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포기하면 진실을 말하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실패한 사례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상식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과정을 보여주고 싶어 끝까지 피해자의 편에 서고 있다.”

‘안희정 무죄판결에 분노한 항의행동’이 14일 오후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1심 무죄판결을 규탄하는 ‘안희정 무죄 선고한 사법부 유죄’집회를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8년 ‘안희정 무죄판결에 분노한 항의행동’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1심 무죄판결을 규탄하는 ‘안희정 무죄 선고한 사법부 유죄’집회를 열고 있다. ⓒ여성신문

- 김지은씨를 도와준 사람들은 누가 있었나.

“김지은씨를 가장 많이 도운 건 성폭력 피해자 지원 활동가들이다. 그동안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은 정치인과 정부라고 생각했는데, 일면식도 없던 김지은씨를 진심을 다해 보호해주는 활동가들을 보며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구나’라는 충격을 받았다. 이들이 없었다면 안희정 사건이 바로잡히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 후보 경선 캠프에서 안희정을 위해 다양한 실무를 맡았던 20·30대 청년들도 김지은씨를 돕기 위해 나섰다. ‘김지은과 함께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피해자를 지지하는 성명을 내줬고 캠프 내부 상황을 증언해주기도 했다, 이들이 연대의 힘을 모아 대중에 호소해준 것이 김지은씨에 많은 도움이 됐다.“

- 정치인이 성범죄를 저지르면 가해자와 주변인들이 피해자를 공격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세상을 바꾸길 바라며 지지한 정치인이 무결하길 바라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의 시스템에 의해서 피해사실이 확인된 사안이라면 결과를 인정하고 손을 내미는 게 상식적이지 않나. 피해자의 어려움을 돕는 게 한 정치인을 지지해 세상을 바꾸려는 분들의 원래 뜻에도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 다 끝난 이야기를 이제야 한다는 일부 지적이 있다.

사법적 판결의 마무리는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다. 성범죄 사건은 이미 대법원에서 판결이 끝났다. 안희정은 3년 6개월을 복역하고도 김지은씨가 입은 피해를 보상해줄 민사재판에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성범죄로 큰 고통을 겪은 피해자는 여전히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이 사건이 완결되지 않았다고 본다.

- 책 인세 전액을 한국성폭력상담소에 기부한다고 밝혔다.

“처음 글 쓸 때부터 기부를 염두에 뒀다. 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보호뿐만 아니라 한국 여성 인권에 대해서 정말 많은 역할을 해주고 계신다. 그 중에서 아주 일부이긴 하지만 피해자 지원에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기부를 결심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인세는 큰돈이 되지 못한다. 그래도 책이 큰 호응을 얻어서 조금 더 많은 기부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 향후 활동 계획은.

“책이 화제가 되자 3년간 다니던 회사에서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권고사직을 내렸다. 당분간은 쉬면서 그동안 만나지 못한 분들을 찾아뵈려고 한다. 지금은 정치권에 복귀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기회가 된다면 독자 분들과 작은 서점이나 책방에 모여 정치 구조와 정치 내부 실상에 대해 함께 토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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