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간 『몰락의 시간』 문상철 작가
안희정 몰락의 원인은 의전카르텔·팬덤정치 등
최고 권력자 인권 교육·주변인 공사 구분 필요

안희정 전 충남지사 ⓒ여성신문
안희정 전 충남지사 ⓒ여성신문

7년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를 보좌하며 그의 성공과 추락을 지켜본 수행비서가 안희정이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책으로 펴냈다. 의전 중독이나 여성 편력과 같은 안희정 개인적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정치인을 몰락하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주목한다. 가문 정치, 의전 카르텔, 팬덤정치, 유튜버 등 안희정이 몰락한 문제에 대부분의 정치인이 천착해있으며, 이미 제2, 제3의 안희정이 발생하고 있는 만큼 똑같은 범죄가 발생하지 않는 정치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안 전 지사가 몰락하는 과정을 최측근의 눈으로 써낸 『몰락의 시간』 작가 문상철(40)씨는 2011년 28세에 안 전 지사의 참모조직에 들어가 데이터 관리, 대통령 수업, 수행비서, 수행팀장 등 핵심 참모로서의 역할을 도맡았다. 

그는 ‘차기 대통령’으로 평가 받던 안희정의 명성을 등에 업고 국회의장실 보좌관으로 일하기도 했으나, 동료이자 성폭력 피해자 김지은씨의 구조 요청을 외면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자 순식간에 정치권에서 축출 당했다.

강제로 정치에서 발을 뗀 문 작가는 생계를 위해 중견 기업에서 일하며 권력형 성범죄 사건의 재발을 막는데 도움이 되고자 『몰락의 시간』을 펴냈다. 책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자 문 작가가 3년간 몸담은 기업은 지금의 화제가 ‘부담스럽다’며 27일 그에게 권고사직을 내렸다.

11월 28일 서울 종로구 여성신문사에서 만난 문 작가는 이 같은 소식을 전하면서도 “다른 문이 열릴 거라고 믿고 있다”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는 외모 관리, 의전 중독, 여성 편력 등 안희정의 사생활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을 우려하며 “인터뷰를 통해 안희정을 몰락하게 만든 구조적인 문제를 짚고 싶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문상철 작가와의 일문일답.

문상철 작가 ⓒ박상혁 기자
문상철 작가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몰락하는 과정을 최측근의 눈으로 써냈다. ⓒ박상혁 기자

- 안희정 전 지사와 어떤 관계에 있었나.

“2011년 충남도청에 들어가 안희정 당시 충남도지사의 연설과 메시지, 여론조사를 담당하는 비서관으로 일했다.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기간까지 안희정의 수행비서 및 팀장을 맡아 모든 일정을 동행하며 그를 보좌하는 역할을 했다. 경선 후에는 국회의장실에서 보좌관으로 일하며 안 지사와 연락을 나누고 도움을 주는 관계를 유지했다.”

- 안희정의 몰락을 구조적인 문제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희정 개인의 잘못으로 성범죄 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면 이 같은 사건은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고 본다. 왜 이 같은 가해자가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 주위 사람들은 왜 피해가 일어나도록 방관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피해자가 도와달라고 호소한 이후에도 외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톺아봐야 한다. 이미 제2, 제3의 안희정이 발생하고 있는 만큼 구조에 집중해 전과 같은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노력하자는 면에서 책을 펴냈다.”

- 안희정의 참모조직은 ‘운동권 조직’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안희정과 참모들은 ‘안희정 가문’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가부장제 시스템 안에서 움직였다. 안 전 지사를 반드시 지켜야 할 ‘아버지’라고 여기고, 그를 중심으로 삼촌, 자식, 친척 등의 개념을 가져와 조직을 이뤘다. 업무가 끝나고 나서는 매일 같이 술을 마시며 서로의 정을 다져나갔다. 술자리에서는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반복적으로 부르짖었기에 운동권 모임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곤 했다.“ 

- 안 전 지사가 차츰 과도한 의전에 물들게 됐다고도 했는데.

“국회의원의 경우 정책·실무·의전 등을 담당하는 보좌진들이 9명 내외에 불과하지만, 지자체는 지자체장의 의전만 전담하는 직원의 수가 20여명에 달한다. 지자체 의전 공무원들은 관선부터 민선에 이르는 동안 카르텔을 형성하며 지자체장이 가는 시간과 장소, 만나는 사람과 대화 등 세세한 것들을 조율하는 매뉴얼을 쌓아왔다.

안희정은 의전 공무원들의 디자인한 일상과 의전 속에서 모셔지는 경험이 쌓이면서 전보다 안락하고 편안한 것들을 찾게 되는 악순환에 빠졌다. 이처럼 과도한 의전으로 발생하는 나태는 안희정뿐 아니라 많은 지자체장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안희정의 의전 중독에서 원인을 찾기보다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항소심에서 3년 6개월 실형을 선고 받은 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안희정 전 충남지사 ⓒ여성신문

- 안희정이 몰락한 요인으로 팬덤 문화의 폐해도 짚었다.

“도지사 생활 당시 안희정은 팬덤과 적절한 선을 유지하며 소통해 도정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선한 의지’ 발언 등으로 대중들에게 비난을 받자 그를 위로해주는 팬덤에게 과하게 기대기 시작했다. 이후부터는 안희정이 팬덤이 소개해주는 인사들을 만나러 다니거나, 일정이나 외부 메시지가 팬덤의 의사에 따라 바뀌면서 점점 대중과 멀어지게 됐다.

팬덤이 정치인을 향한 진심어린 지지와 도움을 주는 수준에서 벗어나 정치활동에 관여하고자 한다면, 그 범위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모두 팬덤이 있었지만, 대통령이 된 후로는 공공의 조직이나 기관을 통해서 권력을 행사하려고 했지 팬덤을 통해 일하지 않았다.“

- 유튜버와 역술인에게도 휘둘렸다고.

“대중의 환호와 비난 사이에서 정치인은 허탈감과 공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허점을 유튜버와 역술인들이 비집고 들어온다. 개인 신분으로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면 상관없겠지만, 안 전 지사는 이들이 요구하는 일정과 정책, 메시지를 여과 없이 반영해 문제가 됐다. 안 전 지사 외에도 팬덤과 역술인에 휘둘리는 정치인들이 숱하게 많다. 정책과 메시지는 보좌진 및 공공의 조직을 통해서 만들고 해나가야지, 외로움을 비집고 들어오는 세력과 결탁해서는 안 된다.“ 

- 안희정 성폭력 사건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정치인들에게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력자가 모든 사람이 평등하지 않고 내가 우위에 서 있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누군가를 부릴 수 있고 마음대로 유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성범죄 발생 시 주변인들도 공사 구분을 명확히 하고 피해자를 도와야 한다. 정치권 특성상 주변인들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와 관계를 맺고 있는데, 친소관계나 권력관계를 고려해 가해자 편을 들곤 한다. 성범죄를 구조적 문제로 보고 누구를 도울지 고민하면 이 같은 주변인들의 행동도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인터뷰를 통해 독자들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몰락의 시간』은 정치인 한 개인에 대한 이야기 이전에 우리가 마주해야하는 정치권 안의 실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극히 일부 영역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거나 가십거리로 소비할 수도 있지만,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정치권 내부 이야기들을 정확히 앎으로써 변화에 모두가 동참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족한 책이지만 관심 가져주시고 많이 읽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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