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입원했다.

고열에 속이 거북하다며 병원 다녀온다더니 “신우신염” 진단을 받고 그대로 병실을 잡은 것이다. 오진이었다. 충수염을 오진해 귀한 일주일을 허비한 탓에 종합병원으로 옮겨 4시간에 걸쳐 장 절제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 적어도 열흘은 입원해야 한대.

수술을 마치고 병실에 돌아온 아내가 잔뜩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말인즉슨, 그동안 내가 병실에서 자면서 수발해야 한다는 얘기다. 직장 다니는 아이들한테 병원을 지키라고 할 수는 없다.

- 맛없는 병원 밥 먹지 않아서 좋겠네.

이전 병원에서는 병원 반찬이 입에 맞지 않아 내가 서너 가지 반찬을 해갔다. 어찌 된 일인지 병원밥은 21세기에 들어서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수술 후 당분간 수액에 의존하고 그 후에도 미음이나 죽을 먹어야 한다기에 내가 위로한답시고 실없는 농담을 건넨 것이다.

문제는 이틀 밤을 지낸 후에 발생했다. 간호사가 부르더니 나보고 복도 화장실을 사용하면 고맙겠다는 얘기였다. 아내가 입원한 병실은 여성용 7인실, 환자는 서너 명 수준이다. 대부분 맹장수술 환자라 하루 이틀 사이에 퇴원하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여성용 병실이다. 아내를 수발한다고 해도 예순이 넘은 남자 간병인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 사내가 실내 화장실까지 들락거린다? 결국 내 무신경이 탈이었다.

나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에 의식하지 못했지만 얘기를 듣고 보니 병동에 있는 남성이라고는 의사와 남성 병실의 환자들뿐이었다. 간호사들도 여성, 여성 병실의 간병인도 여성, 남성 병실의 간병인도 여성이었다.

남자가 입원하면 자연스럽게 아내나 딸이 병수발을 들어도 여성이 입원하면 남자들은 자신이 돌보지 않고 간병인을 쓴다는 얘기다. 직업 때문에 여력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나 같은 자유 직종이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의 말처럼 병원에서 밤에 움직이는 사람은 여성들뿐이었다.

- 거의 없어요. 남자들은 자존심 때문에 안 하려고 해요.

내가 묻자 간호사는 당연하지 않느냐는 듯 대답했다.

통계를 찾아보니, 2021년 공단에 등록된 가족요양보호사 9만 4520명 중딸이 40.6%로 가장 많았고아내가 28.5%,며느리가 15%였다. 아들과 남편은 5.1%와 6%에 불과했다. 병수발은 남녀 누구에게나 귀찮고 힘들고 피하고 싶은 일이련만 이런 불균형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 이런 것도 모성 신화에서 온 걸까? 돌봄은 여성의 본성이라는 뭐 그런 얘기?

- 우스갯소리도 있잖아. 남편에게 아이를 보랬더니(care) 보고만(see) 있었다나 뭐라나.

그 얘기를 했더니 아내도 답답하는 듯 코웃음을 쳤다. 부엌살림과 마찬가지로 돌봄노동도 여성 몫으로 떨어진 것이다. 뭐든 그런 식이다. 번듯한 일들은 모두 남자들, 자기들이 차지하고 여성에게는 사회마저 외면하는 허드렛일들뿐이다. 세상에, 아픈 가족을 돌보는 일에까지 자존심이라니.

아내가 거동이 가능해지면서 난 집을 오가며 수발을 들 수 있었다. 여성용 병실에서는 6일 밤을 묵었다. 병실 환자들한테는 미안했지만 도리가 없었다. 간병인을 둘 형편도 아니고 아픈 아내를 모른 척할 수도 없지 않는가.

내 잘못은 아니잖아? 돌봄노동까지 여성에게 뒤집어씌운 사회 탓이지.

난 간호사와 병실 환자들한테 미안해질 때마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조영학/ 번역가, 『상차리는 남자! 상남자!』 저자
조영학/ 번역가, 『상차리는 남자! 상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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