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고평상담실 폐지 저지’ 국회토론회
24년간 ‘여성노동자 최후의 보루’ 역할
노동부 “연계·협업 미흡” 위탁 종료 통보
운영단체 “상담 효용 ‘건수’로 판단 불가”
노동부 “폐지 아닌 ‘원스톱 지원’ 강화…
민간 갈 수밖에 없는 부분 연대” 제안에
활동가들 “예산 다 삭감해놓고” 분통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간 고용평등상담실 폐지를 막기 위한 토론회’에서 김정임 대전여민회 사무국장이 발언하고 있다. ⓒ서울여성노동자회 제공
김정임 대전여민회 사무국장이 10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간 고용평등상담실 폐지를 막기 위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서울여성노동자회 제공

고용노동부가 내년 예산안에서 24년간 ‘여성노동자 최후의 보루’로 활약했던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상담실)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직접 운영하겠다고 밝혔지만, 많은 수요에 비해 턱없이 적은 예산 등으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간 고용평등상담실 폐지를 막기 위한 토론회’에서는 이같은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노동부는 “피해 상담사례에 대한 사건조사는 물론 사업장 감독 등 연계·협업이 미흡하다”며 24년간 지속해온 민간 고평상담실 사업의 위탁을 종료하고 직접 운영으로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민간 상담실은 전국 19개 여성단체에서 총 31명의 상담사가 담당하고 있다. 상담건수는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1년간 1만3198건을 달성했다.

노동부는 8개 청과 대표지청에 전문상담인력을 2명씩 신규 채용하고 ‘고용평등전담상담창구’를 신설·운영해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민간 상담 중 임금체불 등을 제외한 직장 내 성희롱, 성차별 등은 7417건으로, 상담원당 일평균 3~4건을 담당하면 충분히 상담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현장운영기관들은 경직된 매뉴얼대로 일을 처리하는 공공기관과 ‘밀착상담’이 가능한 유연한 민간 상담실에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신상아 서울여성노동자회 회장은 “피해자가 요구하는 경우 정말 끝까지 지원한다. 심리상태도 고려한다”며 “충분한 정보제공을 우선으로 한다. 스스로 그 정보를 바탕으로 선택하고 대응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상담”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무엇보다 피해자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상담이다. 들어주는 과정 자체가 피해자에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알지 못하는 부분을 추가로 캐치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담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노동부가 내세우는 폐지 근거 중 하나는 상담 건수로 대표되는 ‘상담 실적’이 미미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활동가들은 상담의 효용을 단순한 ‘건수’로만 판단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신 회장은 “진술서 작성 동행, 의견서나 탄원서 작성 등을 하기도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담 1건으로 처리된다”며 “노동부는 하루 3~4건 상담하면 지원할 수 있다고 한다. 이건 지원이 아니라 ‘처리’다.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직장 내 성희롱만 떼서 상담할 수 없다. 상담건수에 매몰된 안일한 접근”이라고 비판했다.

전국 19개 단체에서 운영하던 상담실이 고용부 산하 8개소 창구로 줄어드는 만큼, 물리적인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문제도 있다. 공공기관의 경우, 내담자들이 느끼는 심리적 거리도 민간에 비해 멀다.

김예민 대구여성회 대표는 “경북에서 현재 3곳이 (민간)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래도 구미, 김천, 안동, 영주, 포항 계신 분들 못 오신다. 전화·온라인 상담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안 된다”며 “(민간 상담실에) 오시는 피해자분들은 흥분상태거나 불안이나 우울 척도가 높다. 사건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부터 안 되는 상태다. 사건정리 해드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간 고용평등상담실 폐지를 막기 위한 토론회’에서 고용노동부 관계자가 발언하고 있다. ⓒ서울여성노동자회 제공
10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간 고용평등상담실 폐지를 막기 위한 토론회’에서 김유리 고용노동부 양성평등정책담당관 과장이 발언하고 있다. ⓒ서울여성노동자회 제공

하지만 노동부는 “폐지가 아니라 기존부터 있던 기능을 더 강화해서 직접 수행으로 변경하려는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유리 노동부 양성평등정책담당관 과장은 이날 “(민간 고평상담실이) 자체 재원을 통해 운영경비를 충당하고 있고, 국고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운영경비의 16.1% 정도”라며 지원 없이도 운영될 수 있는 상태라고 보고했다.

이어 “상담사 1인당 상담 건수는 2000년도에 325건, 2018년에 471건으로 좀 증가했는데 2022년에 314건으로 줄었다”며 “2019년,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정부보조사업 연장평가를 받았다. 작년 같은 경우에는 ‘1차 상담과 권리구제와 연계가 미흡하다’ ‘유사 중복 사업이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동부 상담 등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하는 사례도 있다고 했는데, 전체 건수에서 (성희롱 등 사건은) 적은 비율이라 사례가 축적되지 않았다. 상담사례가 계속 축적되면 근로감독부서와 상담부서가 연계돼서 개선될 것”이라며 “업무매뉴얼을 만들고, 2024년부터 상담이 착실하게 수행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부가 2024년 예산 설명자료에서 내년 상담목표를 1790건으로 현재 수요에 훨씬 못 미치게 기재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건수를 다시 추산해야 될 필요성이 있는 것 같다. 건수에 따라 예산을 책정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기존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 프리랜서는 상담을 거부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는 “조사는 할 수 없지만, 상담에는 어떻게 포함할 수 있는지 업무 매뉴얼에 반영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민간에 갈 수밖에 없는 부분들은 어떤 식으로 협력해나갈 수 있을지 같이 모색하고 의견을 주셨으면 좋겠다. 심리 지원이 필요한 분들에게 계속적으로 지원될 수 있도록 연대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정임 대전여민회 사무국장은 “(민간 상담실을) 24년을 운영해왔으면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데, 예산 다 삭감해놓고 연대하자고 말씀하시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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