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의 문화이야기]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과 3번은 80여명의 오케스트라와 협연자의 피아노가 함께 어우러져서 연주하는 곡이다. 그런데 오케스트라 파트 없이 피아노 한 대로 이 곡을 연주한다고 한다. 당연히 무대 위에서 함께 해야 할 많은 목관악기, 금관악기, 타악기 하나 없이, 오직 한 대의 피아노 소리로 이 아름답지만 어려운 곡을 연주한다니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티켓 예매 사이트에는 ‘세계 최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 독주 편곡’이라는 소개 문구가 있었다. 이런 연주가 대체 어떻게 가능할지 궁금해서 8월 5일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열린 임현정의 연주회를 찾아갔다.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연주회 ⓒ다나기획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연주회 ⓒ다나기획

임현정에 대한 소문은 이전부터 들어왔었다. 신들린 듯한 열정적 연주, 강력한 타건이 주는 아우라에 대한 찬미를 많이 접했다. 이날도 임현정은 관객들이 음악에만 집중하도록 고집한다는 검은색 의상을 입고 무대로 입장했다. 11월에 한국에 오는 유자왕이 킬힐과 미니스커트 같은 화려한 무대 의상을 입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과는 참으로 대조적이다. 곧바로 연주에 들어간 임현정은 폭풍 같은 에너지의 타건, 손가락을 쫓아가며 보기 어려울 정도의 빠른 터치, 온 몸으로 하는 듯한 열정적인 연주 모습으로 라흐마니노프 피협 2번과 3번을 홀로 연주해냈다. 신기한 것은 오케스트라 파트가 연주하던 부분들까지 모두 피아노 한 대로 연주하는데도 특별히 빈 구석이 느껴지지 않고 꽉 찬 느낌이다. 피아노 한 대 소리의 울림이 이렇게도 클 수 있나 싶었다. 피아노 한 대로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담아낼 수 있게 편곡한 것도 임현정 본인이었다. 임현정을 가리켜 마르타 아르헤리치에 비유하는 것이 그리 과장된 얘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애당초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도록 만들어진 곡을 임현정은 어째서 굳이 피아노 독주로 연주하려는 것일까.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해도 충분히 아름다운 곡을 피아노 한 대로 연주하겠다고 나선다면 협연에서는 얻지 못하는 무엇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여기에는 임현정이 갖고 있는 연주자로서의 철학이 있다. 자신의 음악 자서전 『침묵의 소리』에서 임현정은 피아노 연주자이며 지휘자였던 알프레드 코르토의 말을 인용한다. “작곡가들의 영감 밑바닥에는 한 감정이 깔려 있으며, 연주자의 숙제는 이 감정을 찾아내서 이를 청중에게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연주자가 읽어내는 작곡가의 감정이 어떻게 하나의 것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임현정은 묻는다. “누가 베토벤 자신도 알지 못하는 베토벤의 스타일대로 연주해야 한답시고 떠들어대는가? 맨 정신으로 쇼팽 자신도 모르는 ‘쇼팽적인’ 스타일대로 연주하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니 그녀에게 ‘라흐마니노프다움’을 강조하는 지휘자나 오케스트라가 있다면 자신이 이해하는 라흐마니노프의 감정을 자유롭게 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임현정은 혼자서 피아노 독주를 할 때 자기가 느끼고 해석하는 라흐마니노프를 가장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임현정에게 팬들만 많은 것은 아니다. 굳이 나누어 말하자면 대중들에게는 인기가 있는 반면 음악비평가들로부터는 까칠한 평을 많이 받기도 한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임현정의 연주 영상들에는 찬사의 댓글들이 줄을 잇는다. 라흐마니노프 피협 2번을 피아노 독주로 연주한 영상에는 ‘소름 끼치는 음악 천재’라는 칭송들이 넘친다. 그러나 비평가들의 냉담한 평가를 접하면 그에게는 아직 호불호의 벽이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불호’를 드러내는 사람들은 임현정 특유의 ‘속주’(速奏)가 청중들을 열광하도록 만드는 테크닉일 수는 있지만, 곡의 완성도를 떨어뜨려서 본질적 아름다움을 해친다는 지적을 한다. 실제로 임현정의 연주에 대한 호불호가 가장 첨예하게 갈리는 부분은 남들보다 빠른 속도의 연주에 있다. 예를 들어 라흐마니노프 피협 2번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선율을 좋아하는 사람 가운데는 천천히 한음 한음 정치하게 음미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는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임현정의 강한 타건이 불만스러울 수 있다. 12살 때 혼자 파리로 유학을 떠나 음악원들을 다닌 임현정은 국내 피아노 연주자들의 전형적인 코스와도 달랐고, 국제 콩쿠르를 통해 알려진 경우도 아니라는 점도 그러한 평가에 영향을 주었을 법하다.

하지만 임현정에게는 연주의 템포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다. “음악은 영혼의 표현이기 때문에 그 표현은 테크닉, 혹은 속도의 인질이 되어 억압받거나 제약을 받을 수가 없다. 받아서는 안 된 다. 그만큼 제일 먼저 그 표현과 나의 영혼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임현정은 음악에서 템포는 작곡가가 실마리를 주는 하나의 방식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한 인간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어떠한 말을 속삭일 때 누가 그가 어떠한 속도로 말을 하는지 따위에 신경을 쓰겠는가? 표현이 먼저이다. 열광하면 그것이 속도를 결정한다. 음악은 템포에 의해서 시작되지 않는다. 음악은 템포 속에 갇혀 있지 않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음악이 템포를 창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쇼팽의 곡을 연주하려 할 때 먼저 박자를 정해놓고 그 안에 음악을 잡아 끼워넣는 것이 아니라, 우선 그 음악이 우리에게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는가, 또한 그 곡의 부분 부분마다 분출하고 있는 감정이 어떠한가를 먼저 느낀 후 연주를 해야 한다는 것이 임현정의 생각이다.

임현정은 한 인터뷰에서 “베토벤을 실제로 만난다면?”이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제발 그의 피아노 연주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걸 녹음해서 지금으로 다시 가져와 이렇게 말 하고 싶다. ‘베토벤도 이 템포로 연주하잖아요! 뭐가 전통이죠?’” ‘베토벤도 모르는 베토벤다움’을 강조하는 사람들을 향한 답답한 마음의 토로이다.

그런데 임현정의 연주회 예매를 하다 보면 파격적인 할인 정책이 눈에 띈다. 임현정의 연주회를 주관하는 다나기획은 그가 직접 운영하는 기획사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더욱 많은 관람의 기회를 제공하고, 더 깊고 넓게 예술을 향유하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대학생‧경로 50%, 청소년‧임산부‧장애인‧유공자 80%, 기초생활수급자 90% 등과 같은 파격적인 할인 혜택이 주어진다. 예술이 부자들만의 것이 아니라 누구든 가까이 갈 수 있어야 한다는 임현정의 공연 철학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임현정 음악 인생의 자서전인 『침묵의 소리』.
임현정 음악 인생의 자서전인 『침묵의 소리』.

정리하자면 임현정을 표현하는 키워드는 ‘열정’과 ‘자유’다. 먼저 열정. “어떤 작품을 연주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그 작품과 함께하지 않으면 우리 삶의 의미마저 사라지는 듯한 것을 뜻한다.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느라 밥 먹는 일마저 잊어버리는 것이며, 손가락이 몹시 아프고, 밤에도 연습을 하기 위해서 문득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나의 몸 안에서 음표들이 펄떡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며, 열광 이 나의 몸을 휘감는 것을 뜻한다.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고 자신을 전적으로 작품에 내어주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자유. 임현정은 “음악에서 절제라는 것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는 자기만의 개성과 느낌, 그리고 새로운 해석의 도전을 중시하는 연주자이다. “음악은 작곡가 개인의 스타일이나 개성을 초월한다. 그리고 연주자는 연주를 통해서 자신만의 감수성과 개별성을 더함으로써 창조 작업을 이어간다. 즉 연주자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낯선 것,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일시적 불안감과 맞서야 한다.”

피아니스트 임현정 ⓒ다나기획
피아니스트 임현정 ⓒ다나기획

자유를 찾는 열정은 소중하지만 결국 연주자는 연주로 평가받게 된다. 임현정은 자신이 추구해야 할 것이 숙련을 거쳐 완벽한 기량을 갖춘, 그래서 더욱 완벽하고 자유로운 연주의 경지임을 잘 알고 있다. 그 몫은 자신의 것이니, 임현정의 피아니즘은 더 높은 완성도를 향한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대개 사람에게서 열정과 자유는 양립하기가 쉽지 않다. 열정이 뜨거우면 뜻을 이루는데 집착하다가 그 안에 갇혀버리게 되니 자유를 잃게 된다. 그러나 임현정의 열정은 기존의 단일한 질서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것이 아니니 자유로움을 찾는 길과 다르지 않다.

“그(베토벤)가 말하는 기쁨과 고통, 그것은 바로 나의 고통이고 기쁨이었다. 진정으로 살아 있는 숨결, 목마름, 갈망 등 이 모든 것들을 나는 내 안에 담고 있었다…. 그 소나타들의 영감이 베토벤의 심장에 뛰어들어왔을 때 뛰었던 그 심장의 템포로 그 모든 것을 고스란히 들려주고 싶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하고야 말 것이었다. 베토벤을 위해서, 우리의 삶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침묵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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