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묵었던 트리 하우스에서 보냈던 즐거운 시간. ⓒ오재철 작가
아이와 함께 묵었던 트리 하우스에서 보냈던 즐거운 시간. ⓒ오재철 작가

‘아이가 커서 기억도 못할텐데 왜 여행을 해요?’

우리가 없는 살림을 쪼개서 아이와 여행할때마다 주변의 지인들은 한심하다는 듯이 핀잔을 주곤했다. 자신들의 아이가 과거의 여행은 기억도 못했다면서 경험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한다. 한심하다는 눈빛을 담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래 어쩌면 아이는 기억을 못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에게 주는 사랑스런 행동들이 아이가 기억을 할거라는 기대로 하진 않지 않는가. 우리 모두는 훗날 아이가 기억해주길 바라면서 아이를 안아주지 않는다. 훗날 아이가 기억해주길 바라면서 예쁜 옷을 사입히지도 않는다. 그저 사랑하는 마음의 전달이다. 지금 이순간 사랑하는 마음을 아이와 함께 나누는거다.

 우리의 여행도 그러하다. 여행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히게 되었고, 414일간의 세계여행을 통해서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을 알게된 우리 부부에게는 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것이 아이와 사랑을 나누는 방법이다.
 
 그런데... 정말 아이는 여행한 것을 기억하지 못할까?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추억들은 사진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렇지 않다. 물론 아란이(아이 이름)도 가족과 함께 했던 여행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힘들여 비행기를 탔어도 어느 나라를 여행했는지 그 이름도 모른다. 솔직히 수많은 여행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란이에게 서운한 적도 있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그때도 국내여행을 함께 할때였다.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는 야외온천에서 물장구를 칠때였다.

 ‘그때 있잖아. 아빠랑 큰 나무통에서 목욕할때 그때 하늘에 별이 엄청 많았는데...’
 ‘아란아 그때 기억나? 밤에 야외에서 목욕했던거?’
 ‘엉 그때 할아버지랑 엄마는 춥다고 안했잖아. 그래서 아빠랑 나랑 둘이서 했잖아. 그때 아빠몸이 되게 따뜻했어. 오늘도 그때 같다.’
 ‘아란아 그럼 그때 여행했던 나라이름이 머였는지 알아? 그날 낮에 본 교회는?’
 ‘엉? 아니 몰라’

아이와 다른 나의 기억속의 아름다운 블레드 호수. ⓒ오재철 작가
아이와 다른 나의 기억속의 아름다운 블레드 호수. ⓒ오재철 작가

아란이가 4살때 우리 가족은 동유럽을 여행했다. 슬로베니아의 아름다운 블레드 호수를 여행하고 특이한 트리하우스에서 묵었던 인상깊었던 하루였다. 그날의 피로를 풀기위해 야외에 설치되어있는 커다란 나무욕조에서 야외 온천을 즐겼다. 아이와 둘이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즐겼던게 좋아서 나도 기억하는 순간이다. 사실 나에게는 그날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기억은 아름다운 블레드성에서 내려다본 푸르른 블레드 호수였다. 그래서 커다란 나무욕조에서 즐겼던 야외온천은 인상적인 기억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그날, 아니 20여일간의 캠핑카여행중 아빠와 함께 했던 야외온천이 가장 인상깊었던 기억이었을것이다. 며칠전 보았던 독일의 역사적인 교회도, 낮에 먹었던 슬로베니아의 전통적인 음식도 아이에게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실 여행했던 나라의 이름이, 앞에 있는 교회가 지어진 년도가... 아이에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그러니까 아이도 기억을 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어른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을 물어보니 당연히 답을 못하는 것이고 우린 어른의 기준에서 아이가 기억을 못한다고 단정짓는 것이다.

 사실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해도 보는 것이 다르고 기억하는 것이 다른 경우가 있다. 건축학자는 여행가서 보았던 건물들을 기억할테고, 미식가는 특이하며 맛났던 음식들을 기억할것이고, 사랑을 시작한 사람들은 길거리의 연인들의 모습을 기억할것이다. 모두의 기억이 그들의 성향에 따라 다르듯 아이는 아이가 관심있었던 것을 기억할것이다.

아이는 기억을 한다. 어른이 아이의 기억을 인상깊게 바라보지 않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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