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철 여행육아] ③

함께 뛰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아이들과 함께 기념촬영 찰칵! ⓒ오재철 작가
함께 뛰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아이들과 함께 기념촬영 찰칵! ⓒ오재철 작가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

어린 시절 양팔을 힘차게 흔들며 부르던 동요의 가사처럼, 난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과 친구가 되겠다는 야심찬 소망을 품었던 적이 있다.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잊혀져버린 소망이지만 그 소망덕에 여행작가로 살고있는지도 모르겠다.

네 살 난 딸 ‘아란’이와 함께 유럽 여행길에 오른 지 어느새 2주가 지났다. 아이는 한눈에 다 담기지도 않는 스위스의 대자연을 품었고, 할아버지와 함께 푸른 초원을 가르며 공놀이도 실컷 했다. 어느 날엔 끝이 보이지 않은 폭포수 아래에서 온가족이 둘러 앉아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도시락도 까먹었고, 매일밤 다 세지도 못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잠이 들었다. 이토록 행복한 가족 여행 중이었지만 아이에게는 못내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또래 친구들과 놀 기회가 없었던 것!  

아이가 뛰어놀았던 유럽의 초원. ⓒ오재철 작가
아이가 뛰어놀았던 유럽의 초원. ⓒ오재철 작가

한국에 있는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아이를 위해 독일의 한 호숫가 공원의 놀이터로 방향을 잡았다. 그곳엔 정글짐부터 미니 짚라인까지 한국 놀이터에서는 보기 힘든 시설들이 가득했고, 아이는 마음껏 뛰놀기 시작했다. 그런데 잠시 후 잘 놀던 아이가 갑자기 한 곳을 응시했고, 아이의 시선이 머문 곳엔 한 무리의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어림잡아 열댓 명쯤 되는 아이들의 나이는 8살에서 10살 정도 되었을까? 자기 보다 큰 언니들인데도 아란이는 또래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며 무리의 아이들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동양인 꼬마에게 관심을 가질 만큼 독일 아이들은 한가하지 않았다. 게다가 말도 안 통하지 않는가?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주변을 서성이며 무리에 끼고 싶어하는 아란이의 모습이 아빠 눈엔 그저 안타까워 보였지만, ‘제풀에 지쳐 곧 돌아오겠지.’라고 생각하며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던 차였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아이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아기 상어 뚜루루뚜뚜루 귀여운 뚜루루뚜뚜루~” 양손을 합장해 머리에 얹고 귀여운 율동을 섞어 우렁차게 부르는 아이의 노래에 독일 아이들이 하나둘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어느새 아란이의 손짓 발짓 그리고 노래로 다가오는 아이들. 어떤 친구는 함께 따라 부르기까지! 노래가 다 끝나자 독일 아이들은 작은 동양인 꼬마, 아란이에게 큰 박수를 쳐 주었다.  

기차안에서 함께 뛰어놀며 친구가 되었던 인도 아이와 기념촬영.  ⓒ오재철 작가
기차 안에서 함께 뛰어놀며 친구가 되었던 인도 아이와 기념촬영. ⓒ오재철 작가

그 관심에 한껏 신이 난 아란. 이번엔 ‘날 따라 해봐요 이렇게~ 날 따라 해봐요 이렇게~’를 외친다. 아이가 같은 노래를 부르며 몇 번씩 동작을 되풀이하자 서로 눈치를 보던 독일 아이들이 이내 이해했다는 듯 아란이의 동작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아란의 선창에 맞춰 동작을 따라하는 기다란 줄이 만들어졌고, 한참이나 독일 아이들과 아란의 놀이가 이어졌다.

비록 언어가 통하진 않았지만 마음을 얻고 함께 친구가 되어 놀이를 즐긴 아란이와 독일의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괜시리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란아 너는 오늘 이렇게 성장했구나. 길 위에서 너만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구나. 잊고 지냈던 노래의 가사처럼 온 세상의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올 수 있도록 아빠가 응원할게!’

p.s 말이 안 통하던 독일 언니들과 친구했던 경험 덕분일까? 아란이는 친구를 잘 사귀면서 재미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하긴 말이 통하는 아이들과 친구하는 건 아란이에게 참 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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