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엄 산에서의 개인전 ‘안도 타다오-청춘’

 

“그래서 나는 여성들은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강원도 원주 뮤지엄 산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안도 타다오-청춘’을 위해 한국에 온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꺼낸 말이다. 이 말에는 뮤지엄 산이 세워진 역사가 담겨있다. 뮤지엄 산은 고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안도에게 설계를 맡겨 장기간의 공사 끝에 2013년에 개관한 곳이다. 당시 이 고문은 “서울에서 2시간 걸리는 곳에 누가 찾아가겠느냐”는 의견들에 흔들리지 않고 안도가 구상하는대로 건축이 진행될 수 있도록 총력 지원했다. 개관 10주년을 맞아 뮤지엄 산에서 개인전을 열게 된 안도는 “이제는 연 20만 명이 오는 뮤지엄 산은 계속 성장할 것”이라며 “이인희 고문의 예측이 맞았다”고 말했다. 안도 전시회를 보러 간 김에 광활한 산자락에 들어선 뮤지엄 산 투어도 할 수 있으니, 하루 시간을 내서 천천히 둘러보면 일거양득이 될 수 있다.  

“풍요로운 개인이 풍요로운 가족
지역, 국가, 세계를 만들어 간다”

‘청춘’ 전시회장은 안도 타다오의 건축 세계를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250여점의 작품들을 건축물 모형, 스케치, 설계도면, 건물 영상 등의 다양한 형태로 보여준다. 사람과 자연이 만나도록 만들어진 스미노시 연립주택, 경사 60도의 산기슭 땅에 지어진 롯코 집합주택, 환경 훼손으로 버려진 외딴 섬을 예술의 섬으로 탈바꿈시킨 나오시마 프로젝트, 자연을 껴안은 유명한 건축물 ‘물의 교회’와 ‘빛의 교회’ 등 안도의 대표작들이 망라되어 있다.

스미요시 주택. ⓒ뮤지엄 산 제공
스미요시 주택. 사진=뮤지엄 산 제공
나오시마 프로젝트. 사진=뮤지엄 산 제공
나오시마 프로젝트. 사진=뮤지엄 산 제공

안도 타다오는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중심에 놓는 철학을 가진 건축가다. “건축이란 본디 인간이 생활하기 위한 출발점이어야 한다. 그런 건축이 상품화되면 인간은 풍토와 멀어지고 만다. 그런 흐름은 인간 정신의 붕괴와 직결되는 길이다.”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 안도는 효율이나 합리성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을 소홀히 여기는 획일성을 비판하고 자아를 가진 개인을 중요시해야 함을 강조한다. 17세기 들어 이성적 세계관을 앞세운 근대의 이념이 탄생했지만, 인간의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하려던 처음의 목적은 망각되고, 인간은 방치되고, 사물은 수량으로 헤아려지고, 사회는 관리하기 쉬운 대상이 되었다. “나는 ‘개’(個)로부터의 발상을 소중히 하고 싶다. 풍요로운 개인이 풍요로운 가족, 지역, 국가, 세계를 만들어 간다는,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는 생각을 나는 믿고 있다. 그리고 근대의 틀에 담기지 않는 개인이 가진 직감이나 몽상, 광기야말로 건축에 생명을 불어넣고,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 활력을 준다고 생각한다.” (『안도 다다오: 안도 다다오가 말하는 집의 의미와 설계』) 

안도 타다오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스미노시 연립주택(1975)도 그런 철학의 산물이다. 도시의 좁은 대지 위에 만들어진 스미노시 연립주택은 대지를 3등분하여 중앙부를 중정(내부의 뜰)로 만들어 외부로 개방했다. 집의 가운데 지붕이 없으니 비가 오면 우산을 받고 화장실을 가야 하고 내부의 동선이 단절되었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대지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중정이야말로 숨쉬는 주거의 심장이며, 주거를 의지를 가진 개인의 도시 아지트로 성립시킨다는 것이 안도의 생각이었다. 그 뒤로도 안도는 ‘도시 게릴라 주거’라고 불리우는 작은 주택들을 만들면서 개인의 개성이 드러나는 주택들을 짓고자 했다. 그가 주택을 지으면서 언제나 생각했던 것은 ‘자아를 지닌 개인이 어떻게 하면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다운 삶을 획득해 나갈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그가 만들고자 했던 주택은 지은 사람이나 사는 사람의 꿈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집이었다.  

“밝은 빛 같은 날들이 있으면 반드시
그 배후에는 그늘 같은 날들이 있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은 노출 콘크리트, 물과 빛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지곤 한다. 우선 안도는 재료 특유의 질감을 날 것 그대로 표현하는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해서 콘크리트 벽이 주는 강하고 무거운 느낌을 전해준다. 국내에 지어진 뮤지엄 산, 본태박물관, LG아트센터 등에서도 어김없이 노출 콘크리트의 벽이 던져주는 내면의 힘을 읽을 수 있다.

훗카이도에 만들어진 ‘물의 교회’(1985~1988)는 교회가 물 속에 들어간 느낌을 준다. 안도는 자연적인 시냇물을 인공호수로 바꾼 뒤 이를 배경으로 기하학적 형태의 교회를 세웠다. L자형 벽이 건물 본체와 인공호수를 둘러싸면서 교회로 인도한다. 예배당의 세 면은 노출 콘크리트로, 나머지 한 면은 유리창으로 되어있다. 예배당 안에서는 유리창을 통해 물과 자연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물 한가운데 세워져 있는 십자가는 마치 호수 밑에서 치솟아 오르고 있는 거대한 십자가를 연상시킨다.  

빛의 교회. 사진=뮤지엄 산 제공
빛의 교회. 사진=뮤지엄 산 제공

오사카의 ‘빛의 교회’(1987~1989)는 빛과 어둠의 두가지 요소를 통해 숭고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예배당 정면에 있는 벽에는 십자가 모양의 가늘고 긴 구멍이 뚫려있다. 이 틈새로 외부의 빛이 들어오니 마치 십자가 모양이 된다. 예배당 안의 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빛의 십자가는 눈부시고 장엄하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에서 빛과 어둠은 함께 하는 요소들이다.

안도 타다오에게 빛과 그늘은 건축에 관한 얘기만이 아니라 인생에 관한 얘기이기도 하다. “건축 이야기에는 반드시 빛과 그늘이라는 두 측면이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밝은 빛 같은 날들이 있으면 반드시 그 배후에는 그늘 같은 날들이 있다.”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자기 삶에서 ’빛’을 구하고자 한다면 먼저 눈앞에 있는 힘겨운 현실이라는 ‘그늘’을 제대로 직시하고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용기있게 전진할 일이라는 것이 그의 얘기이다. 

장기 적출하고 대학 안나와도
청춘 유지하며 잘사는 거 보여줄 것

사실 안도 타다오는 건축물들도 비범하지만,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배울 점이 많은 인물이다. 청년 시절 복싱을 하면서는 “철저히 혼자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고독감은, 이후 내가 창조를 하는 데 있어 밑거름이 됐다”고 회고한다.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하고는 모았던 돈을 다 털어 여러 나라의 건축을 공부하기 위한 세계여행을 떠났다. 안도 타다오는 어려운 일이 닥칠 때에도 결국에는 혼자 극복해야 한다고 믿는다. 강하지 않으면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그는 오늘까지 왔다. (후루야마 마사오 『안도 다다오』)

미술관 외부에 설치한 푸른 사과 형태의 조각 ‘청춘’. ⓒ김경주
전시장 입구에 설치한 푸른 사과 형태의 조각 ‘청춘’. 사진=김경주 제공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지난달 31일 강원 원주시 뮤지엄 산에서 열린 한솔 뮤지엄 산 개관 10주년 '안도 타다오-청춘' 회고전 부대 행사로 열린 행사에서 강연하고 있다.  ⓒ뉴시스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지난달 31일 강원 원주시 뮤지엄 산에서 열린 개관 10주년 '안도 타다오-청춘' 회고전에서 강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공

뮤지엄 산 전시장 입구에 가면 안도 타다오가 직접 만든 푸른 사과 조형물이 눈에 띈다. 그 사과에는 일본어로 ‘영원한 청춘’이라고 써 있다. 안도 타다오가 자주 인용하는 시인 새뮤얼 울만의 말이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늙지 않는다. 머리를 높이 올려 희망의 물결을 파악할 수 있는 한 80세일지라도 사람은 청춘으로 산다.” 암 때문에 5개의 장기를 적출한 81세의 노장 안도 타다오. “장기가 5개 없이도, 또 저처럼 학력이 없어도 청춘을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니 그는 ‘영원한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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