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위한 레시피] 누군가에게 노래를 불러 준다는 것은
[아내를 위한 레시피] 누군가에게 노래를 불러 준다는 것은
  • 편성준 작가
  • 승인 2022.11.10 08:00
  • 수정 2022-11-10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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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영욱 씨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어쿠스틱 기타로 ‘겨울 아이’를 불렀다. ⓒ편성준 작가
화가 영욱 씨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어쿠스틱 기타로 ‘겨울 아이’를 불렀다. ⓒ편성준 작가

아내와 함께 동네에 있는 마트에 가서 야채와 와인을 좀 샀다. 집에 손님이 오기 때문이다. 오늘의 게스트는 같은 동네에 사는 영화감독 익준 씨와 그의 동업자이자 여동생인 경희 씨, 그리고 책보냥이라는 고양이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대영 씨, 일러스트도 하고 만평도 그리는 화가 영욱 씨 등이다. 경희 씨를 빼고는 모두 동네에 사는 나이 든 총각들이고 또 영욱 씨 생일이 이 주간이라 토요일에 우리 집에 모여 생일잔치 겸 ‘괜히파티’를 하기로 한 것이다. 유일하게 동네 사람이 아닌 유부남 은중 씨도 왔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굴과 과메기로 안주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영욱 씨를 위한 축하곡을 위해 어쿠스틱 기타를 꺼냈다. ‘겨울 아이’라는 곡은 후렴구에 ‘해피 버스데이 투 유’가 반복되어 이 계절이 생일인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곡이다. 오랜만에 기타를 치며 하는 노래라 틀릴 수도 있으므로 나는 미리 종이 위에 가사와 기타 코드를 적어 연습을 잠깐 했다.

드디어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우리는 과메기와 매생이 굴국, 굴 카르파쵸, 파김치 등을 먹으며 청주와 와인을 마셨다. 나중엔 영욱 씨가 가져온 위스키도 마셨다. 내가 기타를 꺼내와 생일 축하곡을 부르기 시작하자 경희 씨가 “동영상으로 찍어도 돼요?”라고 물으며 스마트폰을 들었다. 영욱 씨는 물론 경희 씨도 너무 좋아했다. 내가 기타를 치는 것도 처음 보았으므로 약간 놀란 것 같았다. 평소에도 이렇게 노래를 불러주느냐는 질문에 아내가 “가끔 술 마시다가.”라고 웃으며 대답하며 나에게 처음 들은 노래가 ‘조용히 들어요’라고 했다. 이 노래는 이주원 나동민 강인원 등이 ‘따로 또 같이’라는 그룹으로 활동하던 때 발표한 곡인데 나에게는 아내를 만나 처음 들려주었던 노래이기도 하다. ‘조용히 들어요, 자그만 이 노랠…’이라는 가사가 애잔한 느낌을 주는 예쁜 곡이다.

‘기타는 작은 오케스트라’

내가 그 노래까지 부르고 난 뒤 경희 씨는 남편에게 노래를 선물 받는 여자가 너무 부럽다고 하며 특히 ‘오세요 내 곁에 산에는 꽃들이…’ 부분을 아내가 자연스럽게 따라 부를 때 너무 좋았다고 했다. 낭만적이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대학 때 창작곡 동아리에서 활동한 사람 치고는 너무 기타를 안 치며 살았다. 지금 가지고 있는 자그마한 기타는 이소룡 액션 피규어 아티스트로 활약 중인 어니 형에게 30만 원 주고 산 것인데 줄이 좀 떠서 낙원상가에 가서 약간 수리를 했다.

누군가에게 노래를 불러 준다는 것은 돈이나 값비싼 선물을 사주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를 위해 노래를 고르고 악기로 연습을 하고 혹시 틀릴까 봐 노심초사하다가 마침내 부르는 그 모든 과정이 한순간에 음성으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기타의 울림에 실린 나의 목소리는 그대로 상대방의 가슴에 가서 따뜻한 온기를 만든다. 그래서 기타를 배워둔 것이 다행이다. 베토벤이 ‘기타는 작은 오케스트라’라고 한 것처럼 서툰 솜씨라도 이 작은 악기 하나만 있으면 어느 순간 마법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이 담긴 노래의 힘

기타를 배워 인생이 달라진 여자도 있다. 로버트 레드포드의 딸인 에이미 레드포드가 만든 <나의 인생, 나의 기타(The Guitar)>에 나오는 멜로디가 그렇다. 멜로디는 주치의로부터 암 말기 판정을 받은 날 회사에서 잘리고 애인에게 결별 통보까지 받는다. 절망한 그녀는 전 재산을 털어 호화로운 아파트를 빌리고 온갖 음식을 주문하여 먹는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거 다 하다 죽겠다는 생각이었다. 마지막으로 기타를 한 대 사고 기타 교습 DVD를 보며 기타를 배웠다. 그런데 그게 기적을 일으켰다. 기타 연주를 하는 동안 몸이 저절로 좋아진 것이다. 암세포가 모두 사라진 그녀를 보며 의사가 도대체 뭘 바꾼 거냐고 묻자 그녀는 대답한다. “모든 것이요.” 그렇다. 기타 하나가 모든 것을 바꿔줄 수도 있다. 너무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기타를 배워 누군가에게 노래를 불러줘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마음이 담긴 이야기와 노래는 언제나 진실하다. 그렇게 믿으며 오늘 아침에도 글을 쓴다.

편성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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