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하라 칼럼] 페미니스트 백래시 혹은 ‘휴브리스’의 덫
[반하라 칼럼] 페미니스트 백래시 혹은 ‘휴브리스’의 덫
  • 반하라 인류학자·작가
  • 승인 2021.08.27 21:44
  • 수정 2021-09-07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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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릴레이백래시규탄시위 단체가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여성 없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전국 릴레이 백래시 규탄 시위 '해일'팀이 8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사회적 혐오에 편승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정치권의 행보에 경고한다"고 규탄했다. ⓒ홍수형 기자

도쿄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의 선전은 팬데믹의 불안을 재우리만치 감동적이었다. 특히 양궁 3관왕 안산은 동료들과 함께 여운이 지속되는 감동적 경기를 선사했는데 일부 네티즌들에게서 엉뚱하게도 반여성적 공격을 받았다. 활을 든 사냥의 여신, 아름답고 독립적인 아르테미스를 떠올리는 안산은 비루한 공격이 공격자들 자신에게 돌아가도록 침착히 대응했다.

페미니스트 백래시(정치·사회적 개혁을 막으려는 기득권 다수의 반동적 반발)가 확산되면서 ‘영웅 안산’을 저격할 정도로 오만해진 네티즌들의 행보는 경계적 시선을 비켜갈 수 없었다. 직장과 학교에서 여성들을 ‘페미니스트냐’고 심문하고 위축시켜서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란 방어적 부정을 유도하고, 어떤 식으로든 표적을 피하려는 여성들이 스스로 페미니즘과 거리를 두게해야만 남성지배 체재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네티즌들이 일부 정치권의 비호를 받으면서 날개를 단 듯 ‘휴브리스’(hubris· 붕괴를 초래하는 과도한 오만)에 도취되어 있다면 그 파괴적 백래시에 대해서 전략적 대처가 요구된다.

올림픽 기간 중 벌어진 백래시를 보며 제우스신을 기리는 종교적 제전으로서의 고대 그리스 올림픽이 스쳤다. 남성지배의 상징인 제우스가 페미니즘 백래시와 겹쳐진 것이다. 고대 그리스를 연구한 ‘장 피에르 베르낭’은 그리스 신화에서 변화해간 고대 철학자들의 사유에서 ‘서구인의 출생증명서’와 같은 정신이 발견된다고 했다. 하지만 서구의 시공간을 떠나 그리스 신화는 여러 사회에 편재한 남성지배권력의 서사를 탐험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신화는 개벽에서 시작한다. 세상에 아무 것도 없던 텅 빈 카오스에서 최초로 생긴 땅의 여신 가이아는 우라노스를 낳아 결합하여 티탄 자식들을 낳는다. 그 중 막내인 크로노스는 아버지 우라노스의 성기를 잘라서 쫓아내고 신들의 지배자가 되어 여자형제 레아와 결혼해서 제우스를 낳는다. 크로노스는 우라노스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서 태어나는 자식들을 다 삼켰기 때문에 레아는 막내 제우스를 임신하자 크로노스를 속이고 아기를 낳은 뒤 숨겨서 키운다. 무사히 성장한 제우스는 아버지 크로노스와 티탄신들을 상대로 벌인 전쟁에서 승리해 모든 신들의 지배자가 된다. 제우스의 전쟁은 2차, 3차로 이어지면서 거인족 전사들과 티폰괴물을 모두 제압한 후에야 비로소 무소불위의 지배자로서 세상의 질서를 잡는 최고의 신이 된다.

제우스는 변신과 속임수에 능란한 교활한 남신인데 두 번이나 출산능력을 발휘한다. 그의 첫 부인, 지혜의 여신인 메티스가 임신하자 속임수로 아내를 작게 만들어 잡아먹고 두통의 산고를 겪으며 전쟁과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를 머리에서 분만한다. 또, 연인 세멜레 공주가 술과 축제의 신이 되는 디오니소스를 임신한 상태에서 제우스가 발산하는 광채에 불이 붙어 죽게 되자 제우스는 세멜레 자궁에서 재빨리 태아를 꺼내 자신의 허벅지에 넣어 키워 분만해낸다. 제우스가 자신의 머리와 허벅지로 여성자궁을 대체해 출산한 자식들에 대한 부모의 권한을 독점하게된 건 그가 임신한 여성들을 먹어버리고 자신의 광채로 타죽게해서 출산과 육아에서 여성들을 완벽히 배제시켰기 때문이다. 제우스는 탁월한 두뇌와 변신능력을 보유한 메티스를 삼켜먹음으로써 메티스의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통치술을 발휘한다. 제우스는 올림포스의 신이 되는 아테나와 디오니소스를 직접 출산했을 뿐만 아니라 최초의 인간여성 ‘판도라’를 구상해서 여러 올림포스 신들의 합작물로 완성해냈기 때문에 인류의 창조주이기도 하다. 문제는 판도라의 탄생 이유가 남성신들(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간의 기싸움의 결과였고 이로 인해 인간들은 피눈물 나는 운명을 피할 수 없게됐다는 점이다.

프로메테우스는 티탄신인데 다른 신들과 달리 유일하게 제우스를 도발했다. 그러자 인간친화적인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보복으로 제우스는 인간들이 사용하던 불도 뺐고 거져 먹던 밀도 땅속에 숨겨서 인간들이 땅 파는 노동 없이는 먹을 수도 없게 만들어 버린다. 미안해진 프로메테우스는 신전에서 불씨를 훔쳐 인간에게 갖다 준다. 대노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극형을 내려 보복하지만 성에 차지 않자 여성이 없던 인간세상에 최초의 여성인 판도라를 만들어 보낼 계책을 낸 것이다. 완성된 판도라를 인간세상에 보내면서 열지 말라며 상자를 주는데 판도라가 그 상자를 열자 안에서 죽음, 질병, 사고, 굶주림, 갈등과 분쟁 등 갖은 악들이 인간세상에 풀려나왔다. 벌어진 재앙은 인간을 영원히 고통에 가두려한 제우스의 계략인데도 불구하고 악을 인간세상에 불러들인 책임은 ‘여성’판도라에게 씌워졌다. 제우스는 판도라의 상자에 ‘여성 혐오’을 설치해 놓은 것이다.

프로메테우스가 훔쳐다 준 불씨를 받게 된 인간은 불을 사용하면서 기술을 발전시키고 과학지식을 축적하게 된다. 산업혁명기에 들어서 과학기술을 향유하면서 황홀한 ‘휴브리스’에 도취된 남성과학자들은 머리(과학지식)로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창조주의 야심을 갖게 된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반영해 1818년 안산선수 또래의 천재작가 메리 셸리는 소설 『프랑켄슈타인 혹은 모던 프로메테우스』를 출간한다. 소설 속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과학실험을 통해 생명체인 피조물의 ‘아버지’가 되는데 성공하지만 그의 자식은 사람들을 살해하고 자신의 죽음까지 부르는 ‘괴물’이 된다.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서로를 증오하게된 부자는 비극적 파국을 면할 수 없게된다. 제우스가 인간 판도라를 창조해 냈듯이 그에 질 수 없는 프로메테우스도 인간에게 불씨(기술과학)를 주어서 ‘괴물’을 탄생시킨다. 기싸움에서 물러시지 않는 두 남신들의 대결에서 인간과 인간의 ‘괴물’이 부산물로 창조되었고 탄생된 본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고통으로 점철된 비극적 운명에 떨어졌다고 생각해서인지 메리 셸리는 소설 제목에서 프랑켄스타인을 ‘모던 프로메테우스’로 명명했다.

‘여성의 권리옹호’(1792)를 쓴 선구적 페미니스트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딸인 메리 셸리는 분만휴유증으로 사망한 어머니는 모르지만 어머니의 저서를 읽으며 자랐고 극도로 방만한 시인 남편 셸리로 인해서 겪게된 중층적 고난에서 여성들이 착취되고 배제되는 남성지배 구조의 비극적 근원을 간파하고 휴브리스에 가득찬 남성의 파괴성을 공상과학 추리소설로 고발한 페미니스트 작가였다. 페미니즘은 권력과 지식을 쥔 남성들(제우스와 모던 프로메테우스)이 인간들의 생산(노동)은 물론 출산과 같은 재생산에 대한 통제권을 놓고 경쟁하면서 여성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바꿀 수 없는 운명같이 고통으로 몰아온 역사를 고발하면서 해방과 주체적 삶을 찾기위한 대안적 방법론을 제시하는 비판적 사유로 볼 수 있다. 페미니스트 백래시는 이기적 남신들을 모방하고 싶은 이 시대의 힘없는 남성들의 망상적 휴브리스가 몰아가는 파괴적 행위일뿐이다. 백래시 휴브리스의 덫에서 풀려나와 빛을 보게 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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