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의 보통날] 당신 곁에 조금 더 일찍 함께 했더라면
[김지은의 보통날] 당신 곁에 조금 더 일찍 함께 했더라면
  • 김지은 작가
  • 승인 2021.07.02 09:24
  • 수정 2021-07-02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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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pik
성폭력 피해로 생을 달리하신 분들을 애도한다. 당신 곁에 조금 더 일찍 함께 하지 못한 우리를 용서해주길 기도한다. ⓒFreepik

 

성폭력 피해자들 중 일부는 최후의 고발 수단으로 죽음을 선택한다. 죽음의 무게가 있어야 사람들은 피해자의 절실함과 진정성을 믿는다. 살아 있는 자의 고발은 ‘피해호소인’으로 조롱당하고, 의심 받는다. 죽음으로 향하는 그 시간 속에는 수없이 많은 고통과 좌절, 절규가 있다. 고발 이후 세상의 차가운 벽에 부딪혔을 때, 가열 찬 2차 가해 앞에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꼈을 때 비로소 선택에 이르게 된다. 나의 주검을 마주할 가족을 떠올리고, 이후에도 다시 아무렇지 않게 반복될 잔혹한 2차 가해의 현실에 선택을 주저한다. 살아남는 일과 죽음을 선택하는 일 중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여전히 혼란스럽다.

어느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다시 민사 재판을 시작하면서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현실을 마주한다. 가해자의 성폭력 범죄 사실이 대법원에서 명백히 인정받은 이후에도 가해자와 가해자의 권력을 누린 사람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최민희 전 국회의원은 가해자 측이 올린 2차 가해성 글을 공유하며 귀 기울여달라고 했고, 이광재 전 의원은 저명한 분의 요청이라며 가해자 면회 계획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안희정계 의원들로 불렸던 박수현, 조승래, 김종민 의원은 판결 이후에도 진정한 반성 한 마디 없이 청와대로, 경선 캠프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른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의 죽음에는 애도를 표했고, 책임자들을 지적했다. 그 사이 안희정 사건에서 진실을 증언하고, 2차 가해에 맞섰던 연대자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가해자를 옹호하는 온라인의 2차 가해는 더 극심해지고 있다. 최소한 대법원 판결 이후 가해자와 가해자 주변인들의 진심어린 사과 한 마디만 있었어도 허무맹랑한 음모론과 모욕 등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자신과 모르는 사람이 가해자여야만 피해자와 연대한다. 최고 권력자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친소 관계를 떠나 부당함을 당한 피해자가 온전히 고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절차대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비로소 피해자의 불행한 선택을 막을 수 있다. 사건 발생 이후의 정상적인 조치는 피해자에게도, 또 다른 잠재적 피해자와 조직에게도 건강한 회복을 가능하게 해준다. 성폭력은 가해자와 그 조직에 의해 발생되고 용인된 것이다. 피해자의 고발은 가해자로 인한 것이며, 그 고발은 조직을 헤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직을 나아지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왜 죽어야 멈추고, 공감해줄까?

지금 당장 변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죽음들이 계속될 것이다. 오래된 악습과 잘못된 대처로 더 이상 피해자가 고통 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일반인과 같은 인간의 존엄성을 가졌다. 당신의 가족이고, 친구일 수 있다. 왜 죽어야 멈추고, 공감해줄까? 인간의 존엄을 찾고자, 생명을 지키고자 고발하는 사람에게 왜 생명의 무게를 요구할까?

고발의 목소리에 반응해주고, 2차 가해자들을 막으며, 조직의 책임자들을 처벌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의 비극을 목도하지 않을 수 있다. 성폭력 피해로 생을 달리하신 분들을 애도한다. 당신 곁에 조금 더 일찍 함께 하지 못한 우리를 용서해주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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