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의 보통날] 변화는 더뎌도 ‘보통날’은 분명 가까이 있다
[김지은의 보통날] 변화는 더뎌도 ‘보통날’은 분명 가까이 있다
  • 김지은 작가(『김지은입니다』 저자)
  • 승인 2022.04.01 10:55
  • 수정 2022-04-01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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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의 보통날] (끝)
지난 2월 21일 김지은씨가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에게 선물한 책과 커피. 사진=심상정 후보 페이스북
평범한 노동자를 꿈꾸며 배우기 시작한 커피 교육 과정을 마쳤고, 이제는 소중한 분들께 조금씩 커피를 만들어 드릴 수 있게 됐다. 사진은 김지은씨가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에게 선물한 책과 커피.  사진=심상정 후보 페이스북

일 년 전 여성신문에 연재를 시작했다. ‘김지은의 보통날’이라는 멋진 제목과 어울리지 않게 무거운 글들을 써내려갔다. 더디지만 변화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품고, 한 자 한 자 세상의 부조리들과 작은 소망들을 담아왔다.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

평범한 노동자를 꿈꾸며 배우기 시작한 커피 교육 과정을 마쳤고, 이제는 소중한 분들께 조금씩 커피를 만들어 드릴 수 있게 됐다. 소량의 원두를 사고, 로스팅을 한 후, 곱게 갈아 만든 커피를 포장지에 담는다. 이렇게 가내 수공업으로 만든 드립백을 건네며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가해자 측에 의해 흩뿌려진 왜곡된 주장들로 세상은 여전히 나를 비난하고, 절벽으로 내몰지만 언제나 따뜻한 모습으로 위로해주고, 도움 주신 분들께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됐다. 정작 두려움에 카페 아르바이트도 시작하지 못했고, 공직으로 돌아갈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하지만 조금씩 노력하고, 도전하려 한다.

한 달에 한 번 글을 통해 안부를 확인한다는 분들, 함께 노력할 것들을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는 선생님들의 말씀들을 들으며 변화를 체감한다. ‘평생 지금처럼 최악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신이 내게 너무 가혹한 게 아닐까? 나아질 거야. 조금 더 살아내자’라는 다짐을 반복하며 다시 펜을 든다. 

작은 시도들을 통해 조금씩 변화는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그대로인 상황들을 마주한다. ‘안희정 사건’에서 재판을 통해 진실을 증명했지만, 일부 정치인들과 가해자의 지지자들은 여전히 결과를 믿지 않는다. 부정하고 오인하며 2차가해성 발언과 글들을 쏟아낸다. 대전시 산하 기관의 책임자로 있는 사람은 가해자를 비판한 정치인을 지적하며 SNS에 댓글을 달아 달라는 글을 커뮤니티에 올리고, 가해자 최측근의 가족은 책 『김지은입니다』의 상위 리뷰 글들을 찾아가 똑같은 악플들을 반복적으로 게시한다. 지칠 만도 하고, 사과할 법도 한데 이들의 태도는 변함없다. 만약 가해자가 대법원 선고 이후 진정으로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가해자 주변인들의 이러한 행위가 계속될 수 있었을까? 가해자의 온전한 사과와 반성이 없었기에 가해자 측근들의 후안무치한 행태는 4년 내내 계속됐고, 그로 인한 2차 가해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대통령 후보들의 TV 토론 이후 가해자 측근들의 2차 가해 행태를 조사할 수 있는 내용을 더불어민주당에 전달했다. 대통령 후보가 2차 가해자들을 찾아내어 다시는 이러한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말을 믿었다. 하지만 그 이후 어떠한 조치와 노력이 이루어졌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국민들 앞의 선언적 반성만 있었을 뿐 가해자가 수장으로 있던 기관과 가해자가 몸담았던 정당의 실질적인 노력은 보지 못했다.

사과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보통날로 다가가는 시간은 더뎌진다. 온전한 종결을 위해 끝까지 싸워야만 하는 건 역설적이게도 피해자의 몫이다. 단 한번도 이 힘겨운 굴레는 멈춰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려 두드린다. 언젠가 내가 사과 받을 지점, 내가 용서할 위치에서 누군가는 조금 더 쉽게 싸워나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세상의 변화는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말뿐인 정치권과 달리 시민들은 스스로 행동한다. 잘못된 것을 고발하고, 2차 가해자들을 비호하는 세력들을 엄중히 꾸짖는다. 권력에 맞서 함께 싸워주시는 정의로운 시민들을 보며 위로받고, 다시 희망을 품는다.

일 년간 이곳에 기록할 수 있게 해주신 여성신문과 활자를 통해 연대해주신 많은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어딘가에 계실 폭력 피해자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민다. 보통날은 분명 가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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