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나도 사람이다” 외친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 복원한 두 여성
[만남] “나도 사람이다” 외친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 복원한 두 여성
  • 이하나 기자
  • 승인 2021.03.01 10:39
  • 수정 2021-03-03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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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윤석남 화백·김이경 작가
강주룡·정정화·박자혜·안경신 등
잊혀진 여성독립운동가 조명

페미니즘 미술의 역사 윤석남
14인 대형 채색초상화 발표
“더 발굴해 100명까지 그릴 것”

윤석남의 ‘벗’, 작가 김이경
사료 기반해 서사 불어넣고
다큐·편지 등 다채롭게 풀어내
왼쪽부터 김이경 작가 윤석남 화백 ⓒ홍수형 기자ㅍ
(오른쪽부터) 윤석남 화백과 김이경 작가가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주제로 한 대형 설치작업 ‘붉은 방’(혼합매체·가변크기) 앞에 섰다. 두 사람은 여성 독립운동가 14인의 삶을 복기해 그림과 글로 복원해냈다. ⓒ홍수형 기자

유관순 열사(1902~1920). 앞장 서 조국의 독립을 외친 여성하면 떠오르는 이름이다. 또 다른 이름들은 좀처럼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102년 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수많은 여성이 스러졌지만, 우리가 떠올리는 여성은 유관순 열사 정도뿐이다. 독립운동 서훈자 1만6282명 가운데 여성은 488명, 3%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2020년 9월 기준). 한국 페미니즘 미술의 역사로 불리는 윤석남(81) 화백이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초상화로 복원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도 여기에 있다.

“여성 독립운동가 하면 유관순 밖에 떠오르지 않잖아요. 저도 팔십 평생 유관순 외에 다른 여성 독립운동가는 모르고 살았더라고요. 그런데 공부를 해보니 상당히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가 있었어요. ‘여자들이 이렇게나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시초상화로 그려보자고 했죠.”

윤 화백은 2년간의 준비 끝에 개인전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를 열었다. 서울 삼청동 학고재갤러리에는 100년 전 일제에 맞서 독립을 외친 여성 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화가 걸렸다. 그 곳에 가로 1m, 세로 2m에 달하는 커다란 화폭에 결연한 표정의 여성 혁명가들이 살아 숨 쉰다.

전시 개막과 함께 김이경(56) 소설가가 동명의 책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역사를 뒤흔든 여성 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을 펴냈다. 윤 화백의 전시에서 공개된 여성독립운동가 연작이 책 속에 그대로 담겼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김 작가는 그동안 소설집 『살아 있는 도서관』을 비롯해 에세이 『애도의 문장들』 『책 먹는 법』, 서평집 『마녀의 독서처방』 등 삶이 던지는 질문을 주제로 잡고 공부하며 글을 써왔다. 『싸우는 여자들』 작업은 윤 화백이 김 작가에게 함께 작업을 해보자고 제안해 시작한 일이다.

“2019년 선생님께서 여성 독립운동가 초상화 작업을 진행하는데 공동작업을 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사실은 처음엔 피하고 싶었어요. 역사를 전공했지만 독립운동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고, 선생님 작품에 먹칠을 하면 안 되니 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걱정이 됐죠. 선생님께서 열정적으로 작업을 하시니까 옆에서 도와드리자는 생각으로 시작은 했어요. 그래도 막막함은 여전했죠. 그런데 얼마 뒤 선생님 작업실에 가보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윤석남 화백 개인전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에서 선보이는 초상 14점 중 3점. 왼쪽부터 차례로 여성 독립운동가 강주룡, 김마리아, 남자현의 초상. ⓒ학고재
윤석남 화백 개인전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에서 선보이는 초상 14점 중 3점. 왼쪽부터 차례로 여성 독립운동가 강주룡, 김마리아, 남자현의 초상. ⓒ학고재

“나는 이들의 이야기가 남 같지 않아”
여성 혁명가의 인생 담은 글과 그림

서로를 “소울메이트”라고 부르는 윤 화백과 김 작가의 인연은 14년 전 시작됐다. 책 출간을 위해 화가와 출판기획자로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이제는 서로의 팬을 자처하는 지기가 됐다. 2019년 연 ‘벗들의 초상을 그리다’ 개인전에는 김 작가의 초상화도 걸렸다.

김 작가는 “존경하는 스승이자 가장 좋은 벗” 윤 화백의 공동작업 제안이 기쁘면서도 막막함을 느꼈다고 했다. 돕기로 하고 작업을 시작하고 관련 책을 읽고 사료를 찾아 여성독립운동가의 행적을 좇았지만 “어릴 적 위인전을 읽듯 막연한 느낌”은 여전히 남았다고 했다. 처음에는 인물 소개처럼 아주 짧고 간단하게 써서 윤 화백에게 보냈다. 얼마 뒤 글을 보고 그림을 완성했다는 소식에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윤 화백의 작업실을 찾았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림을 마주한 순간 김 작가도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했다.

“정정화, 이화림 열사의 완성된 그림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이화림 선생님의 경우, 회고록이 있어 비교적 수월하게 글 작업을 했는데, 완성된 그림은 마치 두꺼운 회고록 한 권이 압축된 느낌이었어요. 단순히 사실만 나열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다시 작업을 시작했어요.”

특히 윤 화백의 말이 김 작가의 마음도 흔들고 열정을 깨웠다. “나는 이들의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아요. 내가 그 시절에 살았다면 친일까지는 아니라도 나라의 상황을 외면하고 살았을 것 같거든. 그런데 이 여자들은 정말 대단하잖아. 정말 대단해! 그래서 더욱 이 이야기를 끝내야 해요.”

김 작가는 그렇게 논문과 회고록, 자료들을 살피며 여성 독립운동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책의 서술 방식은 독특하다. 일반적인 역사 서술과 달리 1인칭·3인칭 시점, 인터뷰, 다큐멘터리, 편지 형식 등 여러 문학적 기법을 활용해 인물별 이야기를 덧붙여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다채로운 파노라마로 보여준다. 김 작가는 “여성들의 삶을 한 사람의 인생으로 오롯이 느끼게 하고픈 마음으로 글을 썼다”고 했다.

 설치 작업 '붉은 방'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윤석남 화백. ⓒ학고재
 설치 작업 '붉은 방'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윤석남 화백. ⓒ학고재

총을 들고 일제에 대항한 여성들

목숨 걸고 자기 자신을 찾은 것

김 작가의 글은 고스란히 윤 화백의 화폭에 담겼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박자혜(1895~1943)의 초상을 만난다. 독립운동가 신채호(1880~1936)의 배우자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1920년 결혼 전에도 간호사 출신 독립운동가로 전면에 섰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박자혜는 궁녀였으나 일제에 의해 궁에서 내쫓긴 뒤 간호사가 되어 ‘간우회’를 조직하고 만세 시위와 동맹파업을 시도하다 체포됐다. 이밖에도 제주 해녀로서 맨몸으로 독립투쟁에 앞섰던 김옥련, 을밀대 지붕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고공농성을 했던 여성 노동자 강주룡, 조선 최고의 기생에서 사회운동가로 변신해 활약했던 ‘사상기생’ 정칠성. 서로군정서와 의열단에서 활동한 항일무장투쟁 운동가 남자현, 조선인 최초로 레닌이 이끄는 러시아 사회민주당에 가입하고 조선인적위대를 창설해 일본군·백위군 연합과 맞서 싸웠던 김 알렉산드라까지.

윤 화백은 인물의 강렬한 눈빛과 함께 그림 속에 독립운동의 방법이나 상황을 알려주는 묘사나 단서를 집어 넣어 인물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손은 유독 크게 표현됐다. 혁명가들의 손은 세월과 고난을 거칠고 투박하다. 광복군 결사대로 활동하며 임신한 몸으로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파 작전을 계획했던 안경신(1888~?)의 머리 위에는 작은 파랑새 한 마리를 그려 넣었다. 윤 화백은 “사형 선고를 받고, 옥살이를 해야 했고 아들이 영양실조로 눈이 멀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안경신을 떠올리면 굉장히 희망적인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파랑새가 꿈과 희망을 상징하잖아요. 안경신이 힘든 일을 겪었지만 슬픔 속에서도 오히려 제가 힘을 받는 것을 느껴요.”

윤 화백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여성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나 자신을 찾아간 사람들”이라고 봤다. “독립운동을 한 것은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라를 찾는 것이 자존심을 살리는 거고 여성의 자존심을 살리는 건데 거기에 남성, 여성을 따질 필요가 뭐가 있겠어요.”

김 작가도 이번 작업이 ‘애국’으로만 소비되지 않기를 바랐다며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에게 나라를 되찾는 것은 제국주의를 물리치고 여성도 당당한 나라의 주인으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데 뛰어드는 것이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들에게는 여성해방, 독립, 민족해방이 하나로 연결되는 일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마흔 살에 서양화로 그림을 시작해 일흔 살에 한국화를 배운 윤 화백은 팔순이 넘은 지금 지금 또 다른 도전을 진행 중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여성 독립운동가 100인의 초상을 그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매일 아침 서울 자택에서 화성의 작업실로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며 규칙적으로 작품활동을 하는 그는 1시간씩 걸으며 건강관리도 한다.

“여성 독립운동가 수 백명이 있어요. 건강이 허락한다면, 자료가 충분하다면 100인은 그림으로 남기고 싶어요. 사명감 때문이 아니에요. 위대한 일이라서가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학고재 겔러리 ⓒ홍수형 기자
윤석남 화백 개인전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는 4월 3일 서울 종로구 학고재 본관에서 열린다. ⓒ홍수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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