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고백하자 쏟아진 악플...예술로 승화하다
성폭력 고백하자 쏟아진 악플...예술로 승화하다
  • 최현지 기자
  • 승인 2021.02.14 19:37
  • 수정 2021-02-16 17: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 우리는 생존자입니다]
서도이 작가의 화폭에 옮긴 ‘미투’
피해자 향한 악플 모아 설치작품 만들어
“용기 내어 고백했더니 꽃뱀 취급...
‘진짜 피해자’ 프레임에 저항해야”
서도이 작가의 프로필 사진 ⓒ서도이
서도이 작가의 프로필 사진 ⓒ서도이

이어지는 기사 ▶ 성폭력 피해경험을 떠나보내는 장례식에 초대합니다 www.womennews.co.kr/news/207472

 

언론에 보도되는 성폭력 사건을 보고 누구나 끔찍한 일이라며 한숨을 쉬지만, 사건 후 피해자가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관심은 낮다. 무작정 ‘악플’을 쏟아내는 사람도 많다. 서도이 작가가 지닌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성폭력 문제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해결하려면 실제 피해자들의 ‘피해 이후의 삶’도 조명돼야 합니다. 재판이 끝나 가해자가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그것이 피해자의 완전한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듯이, 기사 속 몇 줄만으로는 알 수 없는 ‘진짜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성폭력 피해자 향한 악플로 도미노를 쌓다 

서 작가가 주목한 문제 중 하나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다. 첫 전시를 시작으로 2차 가해를 소재로 한 작품을 여러 차례 발표했다. 지난해 개인전 ‘Dixit Dominus Domino Meo – 도미노, 숭배자들의 게임’에서는 집단적인 2차 가해를 다뤘다. 2차 가해성 악성 댓글을 집단적, 종교적 행위로 해석해, 쓰러질 듯한 도미노로 표현한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Dixit Dominus Domino Meo' ⓒ서도이
'Dixit Dominus Domino Meo' ⓒ서도이

서 작가는 그간 일면식 없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악성 댓글이 “하나의 종교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수많은 댓글이 나름대로 정형화돼 있습니다. 한마디로 ‘너의 피해 사실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공감도 하고 싶지 않지만, 네가 처녀가 아니라는 것은 알겠고 당연히 돈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냐’는 거죠.”

가장 불쾌했던 말은 “당일에 신고하지 그랬냐” “이런 식으로 언론에 나올 게 아니라 증거를 모아서 신고해라” “여러 번 겪었으면 너도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가 겪은 성폭력 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었는데, 일일이 해명하기 싫은 마음과 해명하고픈 마음을 동시에 느꼈다. “피해를 신고하고, 진술만 하면 상대가 감옥에 가는 것처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너무 억울해서요. 그렇게 쉬운 일 아니잖아요.” 

피해자는 수치스러워한다는 편견을 거부한다

2차 가해 발언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서 작가지만, 결코 강하기만 한 건 아니다. “저는 제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을 지울 수 없었어요. 사람들이 자꾸 ‘진짜 피해자’냐고 묻거든요.”

그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에 강력히 저항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폭력 피해자는 피해자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하나의 집단이 아니라 특정 사건을 겪은 개개인의 집합이기 때문입니다. 피해자가 부끄러워할 거라고 단언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는 굉장히 화가 났을 테고, 누군가는 무서웠겠죠. 피해자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해서 사건이 사라지지 않잖아요.” 

고통의 시간 속에서 그린 그림 '엉망진창 원더랜드' (2016) ⓒ서도이
'엉망진창 원더랜드' (2016) ⓒ서도이

그에게 ‘피해 이후의 삶’은 느리게 찾아왔다. 2009년, 첫 번째 피해 이후 9년 동안 불면에 시달렸다.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증상도 오래 이어졌다. 다시 그 일을 겪는 듯한 경험도 했고, 스스로의 감정에 대한 인지나 상황 판단능력도 떨어졌다. 자기파괴적인 행동도 했다. 병원도 여러 차례 찾았지만 마땅히 도움을 받진 못했다. 

“호전되기 시작한 건 해바라기센터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라고 서 작가는 회상했다. 약물치료와 상담 치료를 병행하면서, 일상에서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에 대해 하나씩 인지하는 훈련을 했다.

치료 도중 자신이 했던 말을 작가는 기억하고 있다. “갑자기 내 삶에 들이닥친 사건들 때문에 여태까지 이렇게 지내왔는데, ‘괜찮아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절박하게 일상을 회복하고 싶었지만, 괜찮아진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봤을 때 아무것도 없을까 봐 무서웠다고 고백했다. “(성폭력 경험은) 그 정도로 제 삶을 압도했습니다.”

'인두겁을 위한 순례길1' (2019) ⓒ서도이
'인두겁을 위한 순례길1' (2019) ⓒ서도이

피해 경험으로부터 꽤 멀리 걸어온 작가는 이제 약 없이도 잘 자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도 많다. 그럼에도 가끔씩, 하나도 바뀐 게 없는 듯한 사회의 모습을 보면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그런 순간을 지나 보내며 작가가 터득한 것은 스스로 작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눈 감고 싶을 땐 잠깐 쉬어가도 될 것 같더라고요. 한순간에 바뀌는 문제가 아니니까, 저는 성폭력 근절을 위해 애쓰는 모든 분들의 일상과 삶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피해자다움’ 깨고 다양한 활동 이어가

'나는 웃으면서 영업하고 빈말하기 싫은걸요' (2020) ⓒ서도이
'나는 웃으면서 영업하고 빈말하기 싫은걸요' (2020) ⓒ서도이

서 작가는 2019년 가정폭력·성폭력 추방주간을 맞아 울산상담소시설협의회 주최로 울산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해바라기센터에서 치료를 받았던 작가에게는 감회가 남다른 전시였다. 

피해 경험에서 시작된 작품을 여럿 발표했지만 그것만이 서 작가의 유일한 관심사는 아니다. 다양한 작업도 꾸준히 하고 있다.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7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팔레 드 서울’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기존 유화 작품과 함께 드로잉 신작 5점을 전시했다.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분위기의 작품이다. “피해자가 완전히 일상으로 돌아가는 삶을 경험하고 있는 요즘 제가 느끼는 행복감, 사람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유대와 사랑에 대해서도 표현해보고 싶어요.” 

서 작가는 앞으로도 그림을 계속 그려나갈 예정이다. 주제는 무한하다. 동물권, 환경 운동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어디로든, 그는 나아갈 것이다. “저는 지금 도이라는 이름의 사람이지만, 분명히 민영이라는 사람도 담고 있어요. 그리고 그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요.”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의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