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인터뷰] 김이듬 시인
데뷔 20년차 시인이자 ‘책방 언니’
『히스테리아』로 미 번역상 최초 2관왕
최근 산문집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 펴내
1인 독립서점 '책방이듬' 운영중

“성차별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유령’...여성의 시쓰기는 ‘도전’
좋은 시는 질문을 던지는 시
젊은 시인들, 건강한 시쓰기 경향 강해
흔들리며 고뇌하며 쓰는 시도 기대”

올해로 데뷔 20년 차. 김이듬 시인(52·본명 김향라)은 방랑과 관능, 여성의 울분과 들끓는 감정을 자신만의 통렬한 언어로 표현해내는 시인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한국 작가 최초로 전미문학번역상을 수상했다.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도 받아 ‘한국 최초 번역상 2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최근에는 산문집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를 출간했다. 경기도 고양시 대화동에서 ‘책방이듬’도 운영하고 있다. 이번 책엔 그가 운영하는 책방 이야기뿐만 아니라 문학을 바라보는 관점, 삶을 살아가는 태도,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그는 어떻게 문학을 대하고 있고, 그에게 한국에서 여성 시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어떤 의미일까.

김이듬 시인이 자신이 운영하는 서점 '책방이듬' 서가 앞에서 신간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를 들고 있다. ⓒ홍수형 사진기자
김이듬 시인이 자신이 운영하는 서점 '책방이듬' 서가 앞에서 신간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를 들고 있다. ⓒ홍수형 사진기자

- 지난 10월 전미번역상,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다시 한 번 축하드린다. 

“한창 책방 일이 힘들고, 문 닫아야 할지 고민하는 괴로움 속에 있을 때였다. 2개의 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처음에는 실감이 안 났다. 그간 대한민국에서 여성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서러움이 있었던 것 같다. 책도 10권 출간했는데 그만한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했고 독자로부터 외면당한다는 느낌도 있었는데, 상을 받으니 뭔가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시를 써도 괜찮다'는 응원 메시지로 들려서 굉장히 기뻤다. 지금은 내 시집이 폴란드어, 독일어로도 번역되는 등 세계적인 움직임이 있다. 고(考) 황현산 선생님이 ‘김이듬의 시는 번역했을 때 뉘앙스가 굉장히 살아나기 좋은 시여서 세계적인 작가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더라.”

 

- 어떤 면에서 그럴까? 어찌 보면 작가님의 시는 한국의 매우 특수한 정황을 담고 있지 않나. 다른 나라 독자들에게 가 닿을 보편성이 어디에서 획득되는지 궁금하다.

“눈치 보지 않고 쓰는 편이다. ‘어떻게 써야겠다’는 의도는 없고 단지 쓰고 싶으니까, 혹은 이 시를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열정이나 분노나 슬픔이 있을 때 쓴다. 그런 감정들은 인류를 관통하는 감정이기에 다른 사람에게도 아마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한국에선 내 시가 너무 어수선하고, 불안정하고, 난해하고, 뭔가 들끓는 것 같고 지나치게 뜨겁다, 극단적이라는 이유로 수상 등에서 제외되곤 했다. 그런데 이번 번역상 심사위원들은 한국에서 욕먹었던 지점을 장점으로 바라보더라. 그곳의 심사기준은 ‘완결된’ ‘온유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교훈적인’ 등이 아니었다. ‘왜 넌 눈이 하나밖에 없어?’라고 비난받던 땅에서 다른 곳으로 가면 ‘넌 눈이 하나라서 매력적이야, 하나라도 충분히 잘 보이지’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지 않은가? 한 사회가 내리는 판단이 그 예술의 호불호나 완결성을 확정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또 모든 시는 나름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 관련 일화를 하나 들려달라.

“몇 해 전 경주의 큰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국제 펜클럽 행사에 초대받아 작품을 낭독한 적이 있다. 그런데 ‘시골창녀’라는 내 작품을 낭독한 직후에 어느 한국 남성 시인이 삿대질하면서 집어치우라고, 이 숭고한 행사장에서 그렇게 지저분한 시를 읽다니, 그게 무슨 시냐, 추하다, 하며 소리 질렀다. ‘시는 이렇게 난잡한 게 아니야!’라고도 했다. 국내외 작가 300명 이상이 모여 있었는데 순식간에 우왕좌왕 시끄러워졌다. 그다음으로 읽을 작품이 두 편 더 있었는데 중지하고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그때 굉장히 실감했다. 한국에서 시를 좋아하고 읽는 독자뿐만 아니라 시를 쓰는 시인들 사이에서도 얼마나 차별과 편견이 팽배한지를 말이다. 혼자 엉엉 울었다. 패션에 있어서는 다 찢어진 청바지 입고 거리 쓸면서 다닐 때 사람들이 처음엔 그게 무슨 옷이냐고 핀잔주다가도 점점 관대해지는데, 한국에서 시라는 것은 어쩌면 그 정도의 관대함도 없는 것 같다. 무서워서 그 뒤로 6개월 정도 시를 못 썼다(웃음).”

국란 때마다 나라 구한 조상은 있어도 기생으로 팔려간 딸 하나 없었다는 말은 진짜 쓸쓸하다

내 마음의 기생은 어디서 왔는가

오늘밤 강가에 머물며 영감(靈感)을 뫼실까 하는 이 심정은

영혼이라도 팔아 시 한 줄 얻고 싶은 이 퇴폐를 어찌할까

밤마다 칼춤을 추는 나의 유흥은 어느 별에 박힌 유전자인가

(...) 

눈앞에서 마귀가 바지를 내리고

빨면 시 한 줄을 주지

악마라도 빨고 또 빨고, 계속해서 빨 심정이 된다

자다가 일어나 밖으로 나와 절박하지 않게 치욕적인 감정도 없이

커다란 펜을 문 채 나는 빤다 시가 쏟아질 때까지

나는 감정 갈보, 시인이라고 소개할 때면 창녀라고 자백하는 기분이다 조상 중에 자신을 파는 사람은 없었다 ‘너처럼 나쁜 피가 없었다’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펜을 불끈 쥔 채 부르르 떨었다

나는 지금 지방축제가 한창인 달밤에 늙은 천기(賤技)가 되어 양손에 칼을 들고 춤춘다

- 김이듬 ‘시골 창녀’ 중에서 (시집  『히스테리아(2014)』 수록)

- 한국에서 통용되는 주류문학의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쉽게 이룩되는 화해나 위로가 많이 그려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작가님의 작품처럼 울분이나 두려움이나 들끓는 감정을 다 펼쳐내는 구절을 읽을 때만 느껴지는 독특한 해소감이 있다.

“나도 책방을 하다 보니 느끼게 된다. 한국에서 잘 팔리는 시들은 읽었을 때 즉각적으로 위로를 주거나 깨달음을 주는 작품들이다. 그 원인을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가 굉장히 복잡하고 경쟁적이고, 시간이 없고 피로한 사회 아닌가. 그러다 보니 좀 더 단순하고 부드러운, 온유한 시를 읽고 싶어 하는 듯하다. 피로했던 하루에 설탕이나 밀크티 같은, 쓰다듬어주는 작품이기를 원하는 독자들이 많다. 그건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독자의 양상이라고 생각한다. 또 시를 처음 접하는 어린 독자들에게 시의 주제를 끌어오게 하고, 작성 의도를 파악하게 하는 데 주력하다 보니 그런 태도가 고착화된 것 같다. 좋은 시는 질문을 던지는 시, ‘이래도 될까?’ 하고 한 번 더 생각해보게 하는 시라고 생각한다.”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인 김이듬 시인. ⓒ홍수형 사진기자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인 김이듬 시인. ⓒ홍수형 사진기자

- 작가님의 시는 차마 말해지지 않는, 어떤 경계를 넘나드는, 때로는 기존 사회적 통념을 넘어서는 사고나 감정을 표현해 자유롭게 느껴진다. 여성 시인이라는 정체성을 평소에도 많이 자각하는지 궁금하다.

“재작년 김혜순 시인과 함께 코펜하겐에서 열린 세미나와 낭독회에 초대받아 여성 시, 여성으로서 시를 쓴다는 것을 주제로 이야기를 했다. 그때 그런 질문을 받았다. ‘왜 한국 시에는 여성이 유령이 되는, 없는 존재처럼 보이는 시가 많고, 래디컬하고, 시에서 비명이 들리는가? 유럽 여성 시인들은 그렇지 않은데 한국 여성 시인들의 시엔 유독 절규와 비명, 존재 없음이 등장하는가?’ 그 질문에 나름의 대답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한국의 여성시는 왜 이렇게 참혹한가요? 왜 살인과 강간, 죽음의 서사와 귀신, 고아, 무당, 슬픈 어머니 등의 화자가 자주 등장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 “저는 세월호 참사와 강남역 사건 등을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만,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차별과 억압, 강간이나 성폭력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다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 김이듬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 262쪽 

한국에서 여성은 유령의 존재처럼 보일 때가 많지 않나? 내 어린 시절부터도 부모에게 딸은 없는 존재, 아들 위주로 돌아가는 구조였다. 또 한국 문학사를 두고 봐도, 내가 대학에서 문학 공부를 하던 시절 필독서였던 두꺼운 한국 문학사 책들에 여성 작가는 없었다. 여성은 더 치열하게, 더 열렬히 살았을 텐데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삭제됐다. 지금까지도 내 제자들이 취업할 때 성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내게 한국에서 시를 쓴다는 것은 하나의 도전인 것 같다.

그래도 그나마 내가 쓰고 싶은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용기였나?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앞선 좋은 시인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가령 최승자 선생님은 시에서 정말로 하고 싶은 발설을 하셨다.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 그전의 여성 시에서 그런 표현은 없었다. ‘Y에게’라는 시에 보면 ‘못 잊어 개새끼’라는 구절이 있기도 하다. 그즈음 고정희 시인은 새벽에 밥해놓고 자는 아이 두고 출근하는 여성이 버스에서 말하는 어투, 혹은 노동 현장에서 싸우고 있는 핍박받고 착취당하는 여성의 삶을 쓰셨다. 그런 분들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이렇게 시를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가족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며 노래하는 시, 어딘가에 봉사하고 헌신하는 삶에서 깨닫게 되는 기쁨, 자연 찬미, 사랑의 감미로움만 시로 여겨지던 시절을 뒤엎고 나의 선배 여성 시인들이 투쟁으로써 앞서나간 지점이 분명히 있었기에 지금 내가 ‘당신의 시가 여성의 문제, 한국 여성들이 지닌 말할 수 없는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말을 듣는 거라고 생각한다.”

 

- 여성 시나 페미니즘 시라고만 읽힐 수 있는 작품이란 없지만, 여성의 목소리 중 하나로 김이듬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 같다.

“세월호 문제나 여성 문제나, 아이들을 입양해서 죽음에 이르게까지 하는 사회 문제들, 뭐 하나 가슴이 아프지 않은 게 없는데 시에 표면화해 쓰지는 않는 편이다. 같이 앓고 공감하되 나 혼자 고통받고 고민하고 애도하고 슬퍼하는 양 쓰지 않는 건 나의 윤리다. 많은 사람들은 위안과 다독거림을 주는 시가 윤리적인 시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는 함부로 다독거림과 공감과 위안을 주는 것이 굉장히 무책임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쉽게 언어화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대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또 다른 권력 집단을 두려워하다 보니 지금도 문단이라고 하는 곳에서 도피해 이렇게 작은 책방에서 책방 언니로 늙어가고 있을 수도 있다. 나는 투사야, 나는 굉장히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고 싸워나가는 윤리적이며 연대감을 중시하는 시인이야, 라는 포즈는 없지만, 나는 시인이기 때문에 최대한 인간이 지향해야 하는바, 인간이 견지해야 하는 태도에 대해서 나 스스로를 지켜보면서 나아가고자 한다. 시를 쓰다 보면 시가 나를 그렇게 살아가게끔 그렇게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 올해로 데뷔 20주년이다. 20년간 이 생태계 안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구축하며 버텨온 선대 시인이 된 셈이다. 미래에 올, 혹은 지금 분투하고 있는 젊은 여성들이나 여성 시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건강한 시가 좋은 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퇴폐적이고, 쓰러져가고, 슬프고, 약한 시도 좋아한다. 젊은 시인들에게서 굉장히 건강하고 윤리적인 시를 읽게 되는데, 그렇게 써야만 하는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는 것 같다. ‘너는 정말 건강한 삶을 살고, 올바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고, 이 사회를 고민하는 윤리적인 사람이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시 말이다. 이 사회가 필요로 하거나 원하는 시와 신뢰감을 주는 시를 쓰는 것이 안전하고, 독자층도 많이 확보할 수 있고, 어르신들이 예뻐하고 심사위원들 눈에 쏙 드는 시를 써서 행복할 수도 있겠지만, 좀 안 그런 시인도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실수 안 하고 빈틈없고 후회 없이 살지 않을 텐데, 나의 치부, 나의 부끄러움, 나의 말 못 할 추악함과 슬픔...... 그런 것들이 시에서 보이는 후배 시인을 나는 사실 기다리고, 기대한다. 너무 확고하게 자신의 시를 지키려 하기보다는 좀 흔들리면서, 또 고뇌하면서 써나가길 바란다.”

 

- 경남 진주에서 오래 살았고, 해외 여러 도시를 방문하거나 여행했다. 연고지가 없는 일산에 ‘붙박여’ 서점을 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꽃을 좋아하면 꽃가게를 좀 해보고 싶은 거 아닌가? 빵 좋아하면 빵가게 하고 싶은 것처럼 나는 책을 좋아했기에 책방을 열고 싶었다. 6-7년 전 예고 특강을 하러 일산에 왔다. 호수 공원을 걸으면서 ‘아, 여기 호수 근처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얼마 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대학에 파견 작가로 가게 됐다. 거기서 북카페라는 공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차도 마시고 책 읽고 종일 머물 수 있는, 또 작가들이 소그룹으로 모임을 여는 모습을 보면서 예전부터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꿈을 이룬 셈이다. 그런데 꿈이 꿈으로 끝났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수백 번 했다. 하루 종일 책방에 있으면서 문 열고 청소하는 것부터 마지막 마무리까지 해야 한다. 또 행사할 때 포스터도 만들고 장도 보고 책들 혼자 나르고 등등. 돈은 돈대로 계속 들고. 한 달쯤 됐을 때 이건 아닌데 싶었다. 그런데 자존심 때문에 멈출 수가 없었다. 다들 말리던 일을 시작했으니 2년만 어떻게든 버텨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여행도 거의 못 갔다. 그런데 여행 가도 결국 알게 되는 건 사람들이잖나. 비행기 티켓 안 끊어도, 여기 오는 사람들이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보다 더 신기하고, 다 유별나고 개성 있어서 이분들을 만나는 게 매일의 여행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지속해나가고 있다. 그래도 책방 하는 거 추천은 안 한다(웃음).”

경기도 일산에 위치한 '책방이듬' 전경.  ⓒ홍수형 사진기자
경기도 일산에 위치한 '책방이듬' 전경. ⓒ홍수형 사진기자

- 올해로 서점을 연 지 4년째다. 요즘은 어떤가?

“얼마 전 ‘책방이듬 시즌1’을 닫고 ‘시즌2’를 시작했다. 월세를 더 이상 못 내게 돼 더 싼 데로 옮겼다. 너무 힘들고 돈도 다 날려서 책방을 더 못하게 됐는데 우연히 임대료가 절반 정도 되는 곳을 알게 돼 이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여기로 옮기면서부터 책방에 사람들이 더 많이 오더니 지금은 책도 많이 나가는 편이다. 3년 전에는 혼자 쩔쩔맸는데 이제 많은 벗들이 생겼고, 3년 동안 단골분들이 자기 책방처럼 사용하시고 애써주시고 도와주는 실정이어서 어려움이 많이 줄었다.”

 

- 서점 운영 이후 글 쓰는 방식에 변화가 있었다면? 또는 글에 초점을 맞추는 테마나 시선이 좀 변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책방을 열고 나서부터는 청탁을 거절한 적도 많았다. 도저히 마감 기한까지 쓸 자신이 없어서다. 그래도 시 쓰기나 글쓰기를 한 번도 놓은 적 없다. 나더러 문학 안 하고 책방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내가 하는 문학의 방식이 이전까지 그냥 '쓰기'였다면 이제는 '행위하기'에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행위 속에, 내가 해나간 책방 속에 어떤 문학 활동이 있고 시 쓰는 사람들과 책 읽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일, 그 과정을 스스로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내 작품을 본 동료 작가가 그러더라. 시가 되게 희망적이라고, 밝아졌다고. 정작 희망이 조금 있을 때는 암울하고 우울한 시를 많이 썼는데, 지금 진짜 희망이 없어져 버리고 코로나19 때문에 책방에서 낭독회나 독서 모임도 할 수 없는 난감한 시절이니 나라도 좀 빛을 보여줘야겠다, 이런 오기가 생기면서 오히려 시가 좀 더 밝아지는 것 같다.”

 

“시인이라고 하면 좀 이상한 사람, 혹은 특별한 사람,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기곤 하는데 나는 사실 시를 쓸 때나 시인이지 책방에서 책 처방하고 책 팔고 할 때는 책방 언니다. 그게 되게 편하다”고 김이듬 시인은 쾌활하게 말한다. 친근한 책방 언니이자 예리한 여성 시인. 그는 앞으로도 계속 변화하며, 그치지 않고 시를 써나갈 것이다. 그의 시집 중 한 권의 제목을 빌어 이 말을 건네본다. 명랑하라, 김이듬.

“한국에서 여성으로 시를 쓴다는 것은 대단히 쉽지 않은 일이고, 박수를 받을 가능성이 굉장히 적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써나가는 것은 자기와의 대화이고, 세계와 싸워나가는 것이기에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이듬 시인 약력

2001년 계간 『포에지』로 등단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현재)

1인 독립 책방 ‘책방이듬’ 운영

시집 『명랑하라 팜 파탈』(2007), 『말할 수 없는 애인』(2011), 『베를린, 달렘의 노래』(2013), 『히스테리아』(2014), 『별 모양의 얼룩』(2014), 『표류하는 흑발』(2017), 『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2019)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2011), 산문집 『모든 국적의 친구』(2016), 『디어 슬로베니아』(2016) 

연구 서적 『한국 현대 페미니즘 시 연구』(2015)

영역 시집 『Cheer Up Femme Fatale』(2016), 『Hysteria』(2019)와 영역 장편소설 『Blood Sisters』(2019)

시와세계작품상, 김달진창원문학상, 올해의좋은시상, 22세기문학상, 김춘수시문학상, 전미번역상,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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