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유지영 기자, CBS라디오 박선영 피디
두 사람이 수집 기록한 "여기 이렇게 말하는 몸들"
오디오 다큐 ‘말하는 몸’에서 시작돼 동명의 책으로 출간

“몸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몸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2018년 오디오 다큐멘터리로 시작된 『말하는 몸』 프로젝트는 위의 두 질문에서 출발했다. 100명 넘는 여성을 만나 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2019년 제21회 양성평등미디어상 최우수상, 2020년 제241회 이달의피디상 등을 수상하며 주목받기도 했다. 

날씬하지 않고 식욕이 왕성한 요가 강사, 미인대회 출신 교사, 하루 300킬로칼로리씩 섭취했던 섭식장애 경험자, 여름이 끔찍하게 싫은 다모(多毛)인, 담배를 사랑하는 여성학자, “생리 해방”을 외치는 생리중단 시술 경험자…… 

다양한 직업군, 다양한 경험, 다양한 관점의 몸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이 여성 중에는 뮤지션 요조, 이수정 범죄심리학 교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 ‘안경 아나운서’ 임현주 MBC 아나운서, 이슬아 작가 등도 포함돼있다.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오디오 다큐에서 편집된 부분들을 추가로 정리해 출간한 책이 『말하는 몸』이다. 각 출연자 에피소드에 유지영 기자와 박선영 피디의 에세이도 더해졌다.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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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는 몸에 관해 할 말이 있다는 것이 이들의 기획 의도였다. 박 피디는 “독자들도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이야기도 기록될 만한 가치 있는 이야기라는 걸 생각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으면 한다”고 했다.  

특히 여성의 몸은 함부로 말해지기 쉬웠다. 몸에 대한 기억이 수치심을 동반하는 경우도 많았다. 유 기자는 사회에서 건강하지 않다고 말하는 몸에 대해 고민했다. “몸에 대한 담론은 페미니즘적으로도 해석될 수 있지만, 자기계발 담론으로도 해석될 수 있기에 좀 더 극복하기 어려웠다. ‘노력하지 않아서 실패한 몸’이 된다는 말을 듣는 것 말이다”고 했다. 

이들은 몸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만담 위주의 팟캐스트가 아니라 고요하게 한 사람의 이야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인터뷰어의 개입은 빼는 ‘오디오 다큐’ 포맷을 시도했다. 유지영 기자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박선영 피디가 편집을 맡았지만, ‘말하는 몸’ 채널에는 유지영 기자의 목소리는 들어가지 않고 인터뷰이의 목소리만 담겼다. 

유 기자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의심 없이 그대로 믿어보고자 했다. “언론사 인터뷰에선 팩트인지 아닌지, 과한지 아닌지를 중심으로 판단하게 되는데 삶에 대한 이야기는 팩트로만 볼 순 없잖아요.” 

팟캐스트 플랫폼 '팟빵'에서 '말하는 몸'을 검색하면 88명 여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다.
팟캐스트 플랫폼 '팟빵'에서 '말하는 몸'을 검색하면 88명 여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다.

‘말하는 몸’ 1화는 ‘위안부 생존자 이용수의 몸’이다. 88화는 ‘노동운동가 김진숙의 몸’으로 끝난다. 몸에 관한 기억을 꺼내고 공유하는 데서 시작했는데, 후반부에는 사회 안에서 몸이 위치하는 자리를 고민하는 지점으로 확장됐다. 책에는 톨게이트지부 요금수납원, 여성 배달 라이더, 미싱사, 콜센터 직원, 산업재해 피해자 등 노동 이슈에 관련된 인물과 이야기도 여럿 들어있다.

 “콜센터 노동은 보통 감정노동이라고들 하잖아요. 맞는 말이긴 한데 절반만 반영하는 말 같아요. 분명 육체노동의 측면이 있거든요. 귀는 계속 불특정 다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입은 말해야 하고 손은 바쁘고 허리는 아프고 계속 앉아서 오랫동안 일하니까 가끔 화장실 문제가 있을 때는 방광이 터질 것 같고요. 강성 민원을 응대할 때는 심장이 벌렁거리기도 해요.” (콜센터 노동자 오희진의 몸)

숨기고 싶은 이야기, 남들에게 차마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도 있었다. ‘오드리의 몸’ 에피소드는 행글라이딩이나 차박(차 안에서 잠을 자는 캠핑) 등 야외활동을 즐기는 여성으로서 기획됐지만, 막상 녹음실에서는 친족성폭력 경험이 나왔다. “본인 자신도 전혀 예상치 못하게 그런 이야기를 꺼내준다는 것 자체가 기억에 오래 남았다”고 유 기자는 말했다.

자칫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달리 거식증, 비만, 논바이너리, 생리, 자위, 낙태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몸에 관한 수많은 서사가 쌓였다. 박 피디는 이처럼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바닷물을 손으로 한 움큼 뜬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비록 여기는 88명의 이야기만 묶였지만, 독자들도 읽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도 기록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주면 좋겠다”고 했다. 

“‘나를 온전히 사랑하고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건 판타지라고 생각하거든요. 완전하게 내 몸을 받아들이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 ‘내 몸을 받아들이자!’라는 구호 대신에, 매일 지는 싸움이 되더라도 매일 나의 몸에 대해 반성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제겐 필요해요.” (신나리, 「‘조금 더 사랑하자’가 아니라 ‘조금 덜 미워하자’」 중에서)

'말하는 몸' 프로젝트 제작자 박선영 피디(왼쪽), 유지영 기자. ⓒ문학동네 제공
'말하는 몸' 프로젝트 제작자 박선영 피디(왼쪽), 유지영 기자. ⓒ문학동네 제공

폭력의 기억, 트라우마, 수치심, 두려움이나 공포, 열등감, 불만 등 『말하는 몸』 속의 몸들은 수많은 단어와 연결돼있다. 두 제작자에게는 이 책이 어떤 단어와 가장 닿아있다고 느끼는지 물었다. 박 피디는 ‘깊이’, 유 기자는 ‘다양성과 존중’이라고 답했다. 

“88명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위계 없이 놓여 있고, 우리는 위계 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그 힘은 존중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함을 존중하는 게 생각보다 참 쉽지 않다고 느껴요.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를 존중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계속 품고 있고. 그에 대한 나름의 답이 이 책입니다.”

박선영 피디는 인터뷰이의 삶을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실험적인 프로그램 ‘김종대의 뉴스업’을 만들기 시작했고, 유지영 기자는 두 번째 책을 쓰고 있다. 이들의 고민은 여성의 몸과 기억에서 시작해 사회로, 또 다른 문제의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 점에서 이들은 『말하는 몸』 속 이 문장과 닮아있다. “몸은 내가 살아온 날들의 역사이고 살아갈 날들의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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