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 여성] “나도 누군가의 딸” 오카시오-코르테스 사건이 말해 주는 것
[세계 속 여성] “나도 누군가의 딸” 오카시오-코르테스 사건이 말해 주는 것
  • 장은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국제개발협력센터장
  • 승인 2020.07.28 09:45
  • 수정 2020-07-28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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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 폭언한 60대 남성 의원에
연설로 되받아친 최연소 여성 의원
16명 동료 의원들 릴레이 연대 연설
반면 피해자와의 연대 선택한
한국의 두 청년 여성 의원에게
지지와 연대는 없었다
미국 민주당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연방 하원의원이 7월 23일(현지시간) 워싱턴 의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폭력적인 발언을 한 테드 요호 공화당 하원 의원의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의회 내 성차별 문화를 비판했다. [워싱턴=AP/뉴시스]
미국 민주당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연방 하원의원이 7월 23일(현지시간) 워싱턴 의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폭력적인 발언을 한 테드 요호 공화당 하원 의원의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의회 내 성차별 문화를 비판했다. [워싱턴=AP/뉴시스]

 

여성. 만 30세. 히스패닉. 사회주의자. 민주당. 뉴욕주 제14선거구. 미 역사상 최연소 여성 하원의원. 바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AOC)의원을 수식하는 단어들이다. 지난주 이 여성이 동료 백인 남성 의원으로부터 당했던 성차별적 폭언 사건이 현재 워싱턴 정계를 뒤흔들고 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주 초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은 국회의사당 입구 계단에서 공화당 테드 요호(Ted Yoho·65) 하원의원을 마주치게 되었고, 그로부터 다짜고짜 “역겹다(disgusting, 미쳤다(crazy), 정신 나갔다(crazy and out of mind)”는 폭언을 듣게 된다. 이후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또다시 요호 의원으로부터 훨씬 심한 성차별적인 욕설(a fxxxxxx bxxxx) 들었다. (요호 의원은 평소 오카시오의 급진적인 주장을 싫어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바로 옆에서 이를 목격한 기자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고, 다음 날 요호 의원은 하원 의회에서 “사과”를 했다. 그러나 그의 사과는 변명에 불과했고, 웬만해서는 참고 넘어가려고 했던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은 요호 의원의 진정성 없는 태도에 분노해, 현재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연설을 하게 된 것이다.

나도 평소에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의 급진적인 견해, 공격적인 어투와 과장된 몸짓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이번 연설은 세기의 페미니스트 연설로 기억될 만큼 위대했다. 이 연설에서 그녀는 성차별적 폭언은 패턴을 가지고 계속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을 명확히 했으며, 이러한 폭언을 하는 남성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 없다는 점, 특히 미국 의회라는 곳에서 이런 일을 허락한다는 것은 결코 용인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요호 의원이 아내와 딸들을 방패로 삼아 사과 아닌 사과를 한 데에 대해서는, “나도 누군가의 딸이며, 나는 요호 의원의 막내딸 보다 두 살밖에 어리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어서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께서 이 광경을 보지 않으셔서 다행이다”라고 언급하며, “그러나 아직 살아계신 나의 어머니께는 나의 부모님들이 나를 남성의 학대를 참아내는 여성으로 키우지 않으셨다는 것을 보여 드려야 했다”고 차분하지만 강력한 어조로 말했다. 그녀는 이 연설에서 명민한 분석, 또렷한 발성과 수려한 표현력, 그리고 이를 개인사와 결부시켜 스토리텔링을 함으로써 감동을 자아내는 명문들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의 연설만이 아니다. 내가 놀란 지점은 그녀가 연설을 마치고 단상을 내려간 후, 16명의 민주당 동료 의원들이 차례대로 단상에 올라 요호 의원의 무성의한 사과에 반박하고 그녀를 지지하는 릴레이 발언을 했다는 점이다. 회기가 진행 중인 의회에서, 무려 한 시간 동안, 30대에서 70대에 이르는 인도계, 무슬림계, 중국계, 남미계 소수인종 여성 의원들과 백인 여성 의원들이, 그리고 무엇보다 남성 의원들이 차례로 미 의회와 정치권에 만연한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대해 맹렬히 성토했다. 소수인종 출신의 여성 의원들이 동료 남성 의원들로부터 “아이큐가 낮은 인간”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차별적 발언을 들었다는 얘기는 충격이었다. 70대 백인 남성의원이 “오늘의 사태는 우리들의 아버지, 오라버니, 아들에 관련된 사안이다”라며 남성들의 성찰을 촉구하는 장면에서는 눈시울이 울컥했다.

그래도 미국에는 희망이 있구나 싶었다. 의회 공식 회기 중 1시간이나 이러한 지지 발언에 할애해 주었다는 점, 16명이나 되는 의원들이 하루 만에 발언을 준비해 주었다는 점, 나이 지긋한 남성 의원들도 연대했다는 점에서 이 사회의 저력을 보았다. 미국도 갈 길이 멀었다고 생각했지만, 적어도 길은 보였다.

이러한 장면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최근 한국에서 일어났던 일이 오버랩되었다. 얼마 전 젊은 두 여성 의원들의 소신 발언에 대해 우리 정치권은 어떠한 반응을 보였는가? 지지와 연대는 커녕 오히려 “대리 사과”하는 모습에 좌절했다. 여성의 존엄을 지키고 성차별에 대항하는 용기있는 외침을 싹부터 잘라내는 환경 속에서 과연 어떤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미래를 꿈꾸는가. 통합을 원하는가. 정의를 찾는가. 더불어 가기를 희망하는가. 그렇다면 차별받는 이들을 위한 연대와 지지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연대는 정치색과 인종과 성별과 나이를 아울러야 한다. 2020년도 한국을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 오카시오-코르테스 사건은 이것을 말해 주고 있다.  

장은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국제개발협력센터장
장은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국제개발협력센터장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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