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글로벌 파워 우먼 업데이트: 여성 리더들이 가리키는 변화의 방향
[기고] 글로벌 파워 우먼 업데이트: 여성 리더들이 가리키는 변화의 방향
  • 김은희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위원
  • 승인 2020.04.30 08:40
  • 수정 2020-04-30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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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여성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기대와 환호 속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나고 있는 현재를 조망해보면 과연 세상은 얼마나 달라지고 있나 새삼스레 질문하게 된다. 여성들은 모두에게 동등한 권리가 보장되는 평등한 뉴밀레니엄을 상상하지만, 너무나도 당연한 이 명제는 아직은 멀리 있는 듯하다.

유엔여성(UN Women)이 북경여성회의 이후 25년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성별에 따른 ‘권력격차(power gap)’는 여전하다. 변화하고 있지만 기대보다 더디고 고르지 못하다. 유엔개발계획(UNDP)도 정치·교육 분야 등의 편견을 분석해 젠더사회규범지수(GSNI)을 새롭게 발표했는데, 성별을 불문하고 90% 이상이 여성에 대한 편견 갖고 있다고 한다. 일테면 아직도 정치지도자에는 남성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말이다. 여성들은 명시적인 성차별은 물론 은연중에 작동하는 이런 ‘자애로운 편견(benign bigotry)’과 싸우면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여성들이 정치에 발을 내딛고 있으며, 이것은 젠더쿼터 같은 법·제도의 영향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정치를 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결단과 용기의 발현으로부터 힘입은 바 크다. 성불평등 문제는 결국 “권력과 권력없음(power and powerlessness)”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리 안데르손(32) 핀란드 신임 교육장관, 마리아 오히살로(34) 내무장관, 산나 마린(34) 총리, 카트리 쿨무니(32) 부총리 겸 재무장관(왼쪽부터)이 지난해 12월 10일(현지 시각) 핀란드 의회에서 공식 임명된 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산나 마린 총리는 전체 19명의 장관 중 12명을 여성으로 임명했다.©AP/뉴시스
리 안데르손(32) 핀란드 신임 교육장관, 마리아 오히살로(34) 내무장관, 산나 마린(34) 총리, 카트리 쿨무니(32) 부총리 겸 재무장관(왼쪽부터)이 지난해 12월 10일(현지 시각) 핀란드 의회에서 공식 임명된 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산나 마린 총리는 전체 19명의 장관 중 12명을 여성으로 임명했다.©AP/뉴시스

 

내각의 과반을 여성으로 채운
핀란드 산나 마린 총리

2019년 기준으로 내각 여성참여비율이 40% 이상인 국가는 스페인을 비롯한 21개 국가다. 스페인은 2018년 사회노동자당 당대표로 신임 총리가 된 페드로 산체스(48) 총리가 페미니스트 내각을 구성 17명 중 11명을 여성으로 인선했다. 성평등부를 부활시키고, 부총리 겸 성평등부장관, 국방장관, 경제장관이 모두 여성이었다. 산체스 총리는 “스페인 현대사는 페미니스트 시위가 있기 전과 후로 나뉘며, 새 정부는 이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스페인은 2019년 총선에서도 여성의원 비율 47.4%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와 함께 여성이 정부 최고위직을 수행하고 있는 국가는 193개국 중 10개국이다. 노르웨이 총리 에르나 솔베르그는 2013년부터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아이슬란드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총리도 40대다. 다만 10개국이라는 수치는 2014년 당시 15개국이었던 것에 비하면 1/3 가량 뒷걸음질 친 양상이다(세계의원연맹(IPU)).

IPU 자료 이후 변화를 살펴보면, 2019년 3월 슬로바키아에서 주사나 차푸토바가 첫 여성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차푸토바는 1973년생 변호사로, 폐기물 매립에 대항하는 캠페인을 이끌며 2016년 환경 분야 노벨상으로 불리는 골드만 환경상을 수상했다. 그리스도 2020년 1월 첫 여성대통령이 탄생했다. 에카테리니 사켈라로풀루는 판사 출신으로 환경법 분야 전문가다. 특히 특정 정당 소속이 아니면서 90%에 가까운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현재 G20 국가 중 여성이 정부 최고위직인 사례는 독일 한 곳 뿐이다.

아마도 최근 정부 최고위직에 선출된 여성 중 가장 주목받은 이는 지난해 1985년생으로 세계 최연소 여성총리가 된 핀란드 산나 마린 총리일게다. 2006년 사회민주당에 입당해 2012년 시의원 당선으로 정치활동을 본격화했으며, 총선에서 사회민주당 부대표로서 선거운동 전면에 나서 승리를 이끌었다. 2019년 내각 교통통신장관을 맡아 화석연료를 완전히 탈피한 대중교통 로드맵 제작에 힘을 쏟기도 했다. 마린 총리 역시 내각 19명의 장관 중 12명을 여성으로 구성했는데, 부총리격인 재무부장관, 교육부장관, 내무부장관 모두 30대 초반 여성이다.

포브스의 목록 역시 무게감 있는 상위 순번에는 여성정치인들이 자리잡고 있다. 첫 손에 꼽히는 여성정치리더는 단연 독일연방 총리 앙겔라 메르켈로, 2011년부터 9년 연속으로 이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동독 출신으로 대연정을 이끌면서 2005년 독일 역사상 최초 여성총리가 되었고 현재 4번째 임기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2021년 총리직을 마무리하고 정계에서 물러나겠다고 공표한 상황이다. 중도보수파로 현실주의 정치 성향이고 페미니스트 정치에는 무심한 편이지만 수평적이며, ‘무티’라는 별칭을 얻으면서 민주적인 리더십을 추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메르켈은 “유럽이 난민 문제에 실패하면 우리가 원하는 유럽이 아닐 것이다”라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다.

크리스트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지난해 12월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외신지원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연합 총재. ⓒ뉴시스·여성신문

 

유럽연합(EU) 차기 집행위원장으로 2일(현지시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독일 국방장관이 내정됐다. ⓒAP/뉴시스.여성신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AP/뉴시스.여성신문

 

유럽 정치·경제 이끄는
라가르드와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의 리더십으로 나란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유럽의 정치·경제를 이끌게 되면서 남성들이 틀어쥐고 있던 60년 아성을 허물어뜨렸다.

2019년 여성 최초로 유럽 중앙은행 총재가 된 라가르드는 변호사로 매킨지에서 노동과 독점금지 및 인수합병을 전문분야로 했고 첫 여성 CEO로 일했으며, 2005년 프랑스 정부 발을 들이면서 경제부 장관을 지낸 첫 여성이다. 2011년에는 여성으로는 처음 IMF 총재에 선임되어 연임에 성공했으며, 여성리더로서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면서 남성 중심의 정책결정을 비판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도 2019년에 여성으로서는 처음 임명되었는데, 메르켈 내각에서 여성가족부장관, 노동부장관으로 일했고 2013년에는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국방부장관에 임명되어 5년 넘도록 안보정책을 책임졌다. 동성혼 허용과 최저임금제 확대 등을 주장하면서 보수 그룹 내에서 나름의 진보적 색채를 드러내는 정치인으로 지지도를 확보해왔다. 현재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인적구성은 역사상 가장 젠더균형(gender balance)을 이루고 있다는 평가다.

매년 그 해의 인물을 선정하고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사의 목록을 발표하는 것으로는 타임을 빼놓을 수 없다. 2019년 TIME100 리더 분야에 선정된 26인 중 여성은 6명이다. 미국 연방하원 제52대 의장인 낸시 펠로시는 민주당 소속으로 포브스와 타임 목록 모두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간평가 성격을 띄었던 2018년 중간선거를 이끌었고, 민주당은 2008년 하원의원 선거 이후 8년만에 하원 다수당 지위를 탈환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에 대적하면서 탄핵을 주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고 공공연히 주장해 온 파리기후협정 탈퇴에 제동을 거는 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키는데도 역할을 했다.

펠로시 하원의장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조치는 도덕적이고 경제적이며 국가안보에도 필요한 것으로 ‘파리기후협정 탈퇴 제동’법안이 올바른 방향이라는 입장이다. 또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여성후보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후보직을 사퇴하게 된 것은 “유리 천장이 아니라 대리석 천장(This is a marble ceiling, it’s not a glass ceiling)”이라며 여성혐오에 기인한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명하기도 했다.

뉴질랜드 총리 저신다 아덴도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아덴 총리는 2017년 총선을 채 2개월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당 대표직을 맡게 되었는데, 부진한 당 지지율에도 변화를 기치로 ‘저신다 매니아’를 만들어내면서 총리로 선출되었다. 9년 만의 정권 교체였다. 취임 당시부터 여성으로 젊고 진보적인 성향으로 관심을 모았고, 총리직 임기 수행 중에 임신을 경험하고 출산휴가를 다녀왔으며, 총리직에 복귀해서는 3개월 된 딸을 동반해 유엔총회에 참석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녀의 리더십이 빛났던 것은 바로 2019년 3월 무슬림테러 참사를 수습하면서였다. 히잡을 쓰고 포옹하는 저신다 총리의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리고 벽화로도 새겨졌다.

 

그레타 툰베리 ⓒAP/뉴시스.여성신문
그레타 툰베리 ⓒAP/뉴시스.여성신문

 

16세 기후정의 활동가 툰베리
미국 최연소 하원의원 AOC

여성정치의 역할이 권력의 얼굴을 바꾸는 일이고, 권력의 의미가 제도정치가 가진 기득권이 아닌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영향력에 있다면 가장 적합한 인물은 그레타 툰베리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16세 기후정의운동 활동가 툰베리는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 중 한 사람이자 타임 선정 2019년 올해의 인물이고, 노벨평화상 최종후보가 된 가장 어린 후보이다. 스웨덴정부는 파리기후협약을 준수해야 한다는 요구를 위해 ‘기후를 위한 학교파업(Skolstrejk för Klimatet)’이라고 적힌 푯말을 들고 스웨덴의회 건물 앞에 혼자 앉아서 시작된 그레타의 시위는 소셜미디어를 타고 세계로 확산되었다. 툰베리는 기후위기만이 아니라 페미니스트로서의 인식도 깊다. 지난해 여성의날 SNS에 (더) 어린시절 여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을 #feminist 해시태그와 함께 다음과 같이 적었다. “기후위기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될수록, 페미니즘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닫게 됩니다.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연구결과가 많습니다. 그리고 여성들은 기후위기로 인해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모든 젠더의 사람들이 존중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지속가능한 세계에 살 수 없습니다.”

UN총회 참석을 위해 혼자서 대서양을 건넌 툰베리를 환영한 사람 중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OC)가 있다. 넷플릭스 다큐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로 유명한 AOC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치러진 2018년 중간선거의 가장 주목을 끌었던 후보다.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가족 출신으로 예비선거에서 민주당 서열4위인 거물정치인을 눌러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뉴욕주에서 80%에 달하는 득표율을 거두면서 1989년생 미국 최연소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반자본주의적 입장으로 버니 샌더스보다도 좌파적 성향이 강력하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AOC는 여성정치인으로서 미국 주류사회의 정체성정치에는 비판적이며 계급과 인종정의를 교차적으로 고려하는 입장에 서 있다.

정치영역은 아직까지 남성적 공간이고 여성정치인들은 이질적인 존재인 ‘공간침입자(Space Invaders)’로 존재한다. 하지만 더 많은 여성들이 정치에 발을 들이고 있고, 많아지면 달라진다는 모습도 만들어내고 있다. 이제 지난 세기처럼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만한 여성정치인을 꼽기도 쉽지 않다. 여성들의 리더십을 유형화해서 특정한 이름으로 명명하는 흐름도 있었지만, 여성주의 리더십을 잘 정의하는 것조차 결론에 이르고 있지는 못한 듯하다. 지금 세계는 전환의 변곡점에 서 있고, 그래서 2020년이 중요하다고 강조되곤 한다. 앞에서 소개한 여성정치인들은 정치적 스펙트럼도 관심사도 다양하다. 하지만 최소한 보다 나은 사회를 지향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의 정치인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한 인식 그리고 지구가 직면한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과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이들로 찾고자 했다. 그녀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세계는 더디더라도 조금씩 움직여가게 되지 않을까?

*이 글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젠더리뷰2020년 봄호 게재 내용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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