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남역 세대입니다②] “나는 아름다울 필요가 없다” 탈코르셋의 등장
[나는 강남역 세대입니다②] “나는 아름다울 필요가 없다” 탈코르셋의 등장
  • 김서현 기자
  • 승인 2020.03.20 07:55
  • 수정 2020-03-19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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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SNS를 중심으로 등장
여성규범적 꾸밈노동 거부해
가부장제가 요구한 획일화된 모습에서
벗어나겠다는 외침
실제 탈코르셋 수행 중인 20대들
“탈코르셋은 나를 바꾸었다”
ⓒ신윤지
ⓒ신윤지

 

지난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인스타그램은 사회 전반에 변화를 일으키는 여성들의 행보를 소개했다. 그 중 하나가 ‘탈코르셋 운동’이었다. 2018년 처음 등장한 ‘탈코르셋’은 과거 여성의 건강까지 해쳤던 체형 보정속옷 ‘코르셋’으로 상징되는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의미를 가진다. 10대와 20대 페미니스트 여성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탈코르셋 운동은 화장품 등을 부순 사진을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올려 인증하며 널리 알려졌다.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하는 여성들은 서로 격려하며 긴 머리를 짧게 자르고 몸을 옥죄는 옷과 브래지어로부터 벗어났다. 그러나 2년여가 지나는 동안 탈코르셋 운동에 관한 갑론을박도 이루어졌다. ‘페미니스트라면 가부장제 철폐를 위해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부터 ‘여성의 주체적 선택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까지 오갔다. 

장소라(25)씨는 2년 전 색조 화장품을 모두 버린 후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한 기초 화장이 아니라면 어떤 화장품도 바르지 않고 있다. 짧게 자른 머리를 멋들어지게 넘긴 장씨는 말투나 행동에 있어서도 의식적으로 당당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자리를 모으고 앉는 대신 벌리고 앉아 인터뷰에 응했다. “가부장제는 남성이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행동을 모두 억압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해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성적 대상이 아닌 인간으로서 인식되기 위해서는 탈코르셋이 필수라고 생각하고, 탈코르셋이 곧 가부장제를 부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고 봅니다.” 

탈코르셋에 참여하는 여성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증샷을 올리며 또 다른 여성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saenal_y
탈코르셋에 참여하는 여성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증샷을 올리며 또 다른 여성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saenal_y

 

김미주(26)씨는 화려한 화장과 밝은 분홍색의 원피스를 입고 “비만인인 내게는 이 모습이 바로 탈코르셋”이라고 말했다. 미주씨는 어린 시절부터 고도비만이었다고 밝혔다. 김씨는 “저는 페미니즘을 알기 전만 해도 제가 입고 싶은 옷은 입지 못 했어요. 큰 몸을 가리기 위해 검은 옷만 입었고, 화장을 할 때면 다이어트나 하라는 핀잔을 남녀노소로부터 들어야 했어요. 원하는 옷을 자유롭게 입은 후부터 다이어트 강박도 사라졌어요. 운동은 건강을 위해서 할 뿐, 체중감량을 위해서 하지 않아요.” 김씨는 가끔 자신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비난 받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페미니스트들은 꾸밈노동을 내려놓지 않는 제가 가부장제에 일조한다고 말하고, 안티 페미니스트들은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제가 전형적인 ‘꼴페미’라고 말해요.”

탈코르셋 운동이 20대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퍼지는 동안 ‘탈코르셋의 기준은 무엇인가’ 논란은 끊임없이 있었다. 가슴을 압박하는 브래지어와 눈 건강을 해치는 렌즈, 미용을 위한 성형 등은 일찌감치 ‘코르셋’으로 의견이 모였다. 그러나 긴 머리가 오히려 짧은 머리보다 미용실을 덜 가게 되니 코르셋으로 분류할 수 없다는 의견과 탈코르셋은 남성 규범적인 영역들까지 여성의 선택으로 가져오는 운동이므로 머리를 짧게 잘라야 한다는 의견 등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야망가(28,닉네임)씨는 탈코르셋 운동 중 회의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전했다. “저는 탈코르셋 운동을 긍정해요. 지금도 매달 머리를 자르고 있고, 편하고 맵시 있으면서 여성복 특징이 없는 옷을 골라 입어요. 성형도 할 만큼 외모에 신경을 많이 썼지만 이제는 안 그렇죠. 탈코르셋을 알기 전과 후가 달라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탈코르셋 설전을 볼 때면 우리가 지향하는 바가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요. 화장한 여자를 하타취(평균보다 못 한 수준을 뜻하는 인터넷 은어)라고 한다거나 여성이 주로 하는 몸짓, 과거에는 여성 해방의 상징이던 여성복 등을 모두 버려야 하는 억압과 악습으로 말하는 걸 볼 때면 그래요. 여성 집단의 특징이나 선택 자체를 남성의 선택 보다 열등하다고 하는 건 여성혐오 아닌가요?”

트위터 등 SNS에 탈코르셋 한 자신의 모습을 활발히 올리는 이유정(25,가명)씨는 “여성 규범적인 모든 것들을 억압”이라고 단정 지었다. “3살 어린애들이 다리를 모으고 앉고 어깨를 살랑이지는 않잖아요. 유치원 갈 쯤부터 억압을 받아들인 어른들은 여자답게를 가르치고, 거기에 결국 세뇌되어서 남자들이 원하는 예쁘고 가녀린 모습들을 갖추게 된다고 봐요. 긴 머리, 하늘거리고 짧은 치마, 가슴이나 성기에 하는 모든 성형 수술 전부 다 여자에게 어떤 이득이 있죠? 남자에게만 좋은 거잖아요. 주체적인 선택이란 허구에요.”

해외에서는 2018년 전후로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운동이 불기 시작했다. 장애, 성적 지향과 맞지 않는 몸, 비만하거나 마른 몸 등 자신의 신체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가꾸자는 취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해외의 바디 포지티브 운동과 한국의 탈코르셋 운동은 차이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바디 포지티브가 추구하는 것은 ‘아름다움의 다양성 확장’에 있지만 탈코르셋은 ‘아름다울 필요의 거부’라는 것이다. 

실제 여학교와 대학가에는 ‘탈코르셋’을 한 1020대 여성들이 쉽게 눈에 띈다. 인터뷰에 응한 성균관대학생 장씨는 “같은 과 여자 동기 20명 중 10명 이상이 정도는 다르지만 탈코르셋을 실천 중”이라고 밝혔다. 윤김지영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특히 10대와 20대 여성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탈코르셋 운동이 진행되는 것은 그동안 3040대 여성들과 경험한 문화적 토대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윤김 교수는 “영 페미니스트로 분류되는 3040세대 여성들은 과거 순결 이데올로기에 맞서 성 해방과 마음껏 꾸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했던 세대지만 지금의 영 영 페미니스트인 1020세대 여성들은 자원화된 신체로 매력자본을 경쟁하는 신자유주의적 담론이 주류가 된 사회에서 성장했다”고 말한다. 3040세대 여성들은 학창시절 교복을 거부하고 학교 두발제한에 맞서 싸우며 자신이 현모양처감 ‘성녀’일 필요가 없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1020세대 여성들은 극단적으로 성적 대상화된 아이돌 산업을 미디어로 접하며 초등생을 넘어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한 뷰티 산업 속에서 또래문화의 친목 수단 중 하나로써 꾸밈노동을 수행하며 성장했다. 윤김 교수는 “화장하지 않은 날은 마스크를 써서 얼굴을 가렸던 1020세대 여성들에게 탈코르셋은 실존적 해방 운동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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