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입니다』를 읽고] 재난 속에 쓰고 보내온 연대의 편지
[『김지은입니다』를 읽고] 재난 속에 쓰고 보내온 연대의 편지
  •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 승인 2020.03.08 14:14
  • 수정 2020-03-08 1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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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입니다』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
김지은 지음|봄알람 펴냄
『김지은입니다』 김지은 지음|봄알람 펴냄
『김지은입니다』 김지은 지음|봄알람 펴냄

“온 사회가 나서서 막아야 할 성폭력은
왜 진보적 대권주자로부터 일어났고
입막음되었는지 이 책은 고발한다.
어떤 재난은 왜 ‘정상화’되는지 알아야 하며,
마스크를 낀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다.”

 

책이 나왔다. 일간지부터 외신까지 줄이었던 인터뷰 요청에도 응할 수 없던 ‘김지은’은 직접 기록을 했다. 부여잡았던 종이 퀴퉁이, 모서리들은 380쪽의 한 권이 되었다. 뉴스 생방송으로 ‘미투’를 하기로 결심했던 2년 전 그날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행진이 지연되고 있는 2020년의 3월, 미투가 흔들고 변화시킨 세상에서 미투 이후의 세계는 모르는 척 하기로 한 이들이 대표자가 되겠다고 나서는 혼돈의 정치적 시간에 이 책이 우리 앞에 도착했다.

세상을 향한 ‘두 번째 말하기’. 첫 번째 말하기는 일터에서 겪은 성폭력 고발이었는데, 두 번째는 성폭력 고발인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숨통을 첩첩이 막고, 프레임에 꽁꽁 가두는” 거짓 주장, 위증 모략 공격 비난 의심에 대한 말하기다. “이상한 여자로 낙인찍는 시선”이 무분별하게 눈덩이가 되어 버린 역대 최악의 2차 피해 사태 속에서, 상대를 이기기 위한 프레임과 조직 노하우를 발휘하는 정치인 피고인과 피고인 지지자들의 포화에서 ‘김지은’은 어떻게 살아남은 것일까? 광폭한 공격 속에서도 자기의 말과 글을 잃지 않으려 재판에 먼저 집중하며 쓰고 말하고, 입·퇴원을 반복하면서도 펜과 종이를 놓지 않은 저자의 여정은 ‘말하기’가 왜 자기의 시간과 서사를 찾고, 들을 수 있는 이들을 만나고, 그래서 ‘살아있음’을 다시 만드는 행위인지 생각하게 한다.

다시 말하면 성폭력 고발자라는 이유로 출처없고 근거없는 짧은 말들의 공격을 공유하고 확산한 사람들은 ‘말하는 피해자’들의 ‘삶’을 반대하는 행위를 해온 것이다. 삶에 대한 반대는 절멸 혹은 숨죽임을 지망한다. 아니,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고 손사레가 쳐진다면, 이 두번째 말하기를 꼭 사서 읽으시길 바란다. 아니, 내 의심은 합리적 의문이었고, 합리적 질문에는 피해자가 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라면 즉시 책을 주문하여 찾아가며 읽으시기 바란다. 지연된 시간 사이에서 의심이 증발된 분이 있다면, 답장을 잊지 않은 저자의 노력에 다시 시간을 이어 책을 사서 읽어주시길 바란다.

‘안희정 무죄판결에 분노한 항의행동’이 14일 오후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1심 무죄판결을 규탄하는 ‘안희정 무죄 선고한 사법부 유죄’집회를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8년 8월 14일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1심 무죄판결을 규탄하는 ‘안희정 무죄 선고한 사법부 유죄’ 집회 모습. ⓒ여성신문

 

2년 동안 마스크를 쓰고 저자가 써온 글이, 온 국민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이 시절에 도착한 것은 어떤 의미일까. 모자를 처음 벗기, 호떡을 먹기, 세탁소에 가기 같은 그 조심스러운 평범한 일들은 4장 ‘세상과 단절’에 수록되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온 ‘김지은’은 여전히 얼굴은 전혀 내지 못한 채로 그러나 그 이름을 표지에 걸어야 하는 간극만큼, 한 개인으로는 상상하지 못했던 ‘재난’의 시간을 살아왔다.

누가 걸릴 지 모르고, 백신도 없어서 아직 ‘미지’의 고통인 코로나19 앞에서 온 사회는 잠시 멈춤으로, 정부의 지침과 시민들의 연대행동으로 맞서 싸우고 있다. 그러나 ‘성폭력’이라는 왠지 아는 것 같은 고통, ‘피해자’라는 왠지 ‘소수의 사람’이 되는 것 같은 자리에 대해서는 정당화, 합리화, 외면, 배제라는 권력적 장치가 개발되어 왔다. 이 책은 성폭력이 어떻게 일어나고, 어떻게 피해자의 몫으로 전가 되는지의 복기하고 있다. 온 사회가 나서서 막아야 할 성폭력은 왜 진보적 대권주자로부터 일어났고 입막음되었는지 이 책은 고발한다. 어떤 재난은 왜 ‘정상화’되는지 알아야 하며, 마스크를 낀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다.

9일 서울 대법원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의한 직장 내 성폭력 유죄확정 선고 후 기자회견이 열렸다.ⓒ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9년 9월 9일 서울 대법원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의한 직장 내 성폭력 유죄 확정 선고 후 기자회견에서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여성신문

 

표지만 봐도 무겁고, 마음이 답답해져 온다는 말도 듣는다. 그 역시 책과 저자에 대한 공감과 지지의 마음임을 안다. 그러나 ‘김지은’이 얼마나 따뜻하고 소박하고 재밌는 사람인지 말하지 못한 시간이 지난 2년 중 필자에게 제일 안타까웠다. 그런데 이 책에서 그 재밌고 따뜻하고 소박한 ‘김지은’은 후반부에 짠 하고 등장하지 않는다. 재난과 일상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사고방식에 이 책은 다른 행간을 전한다. 재난에는 일상이 없고, 일상은 재난을 탈출했거나 극복한 이후에 찾아온다는 단선적, 계단식 인식은 재난을 스펙터클하고 압도적이며 처절한 이미지로 그리고, 영웅같은 구출 행위 이후에 그제야 되찾는 따뜻한 일상 에필로그로 상상한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유머는 지극한 고통을 표현하려던 밤에 찾아오고, 일상을 지키고 복원하려는 걸음에서 고발과 대응, 연대의 행위가 실현됨을 이 책은 증언한다. 저자 곁에서 함께 해온 이들은 그래서 용기를 내서 가능했지만, 함께 이기에 성장하고, 울면서 웃고,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바꾸지 않을 선택을 하고 있다.

이 책을 무거운 마음으로만 대할 수 없는, 마지막 이유는 이 책이 연대를 향한 편지이기 때문이다. ‘김지은’이 지난 2년 동안 얼마나 많은 성폭력에 관한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성폭력 사건에 관한 기사와 대응 활동에 관한 광고와 기록을 놓치지 않아 왔는지, 피해생존자들의 책을 읽고 편지와 메세지를 전하고 만나왔는지는 책 틈틈이 적혀 있다. 또한 1, 2, 3심의 탄원서, 최후 진술, 기자회견 서면 발언, 집회 서면 발언 등의 제한된 기회에서 항상 저자는 다른 피해자들과 맞서싸우는 이들에게 연대의 위로의 인사를 건네왔다. 귀로 쏟아져 들어오는 댓글과 욕설, 횡단보도를 건너오는 인파가 쏟아내는 시선의 압력 속에서도 “종이장 뒤에서 나를 묵묵히 지지해주는 누군가와 나긋이 대화를 나누는” 상상은 우리가 서로에게 어떻게 연결되어야 살아남고, 살아갈 수 있을지를 절박하고 명징하게 제안하고 있다. 책을 구입하고, 온라인서평을 남기고, 각자 자리에서 해시태그를 걸고, 저자에게 편지를 전달하고, ‘김지은’이 싸우는 2차 피해를 함께 제지하는 것, 이런 연대의 손길을 서로에게 더 “눈덩이처럼” 만들어가는 일, 그것은 우리 앞에 놓인 완결이 아닌 새로운 삶들을 향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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