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100년, 3·1운동 100년] “광복군은 남자의 전유물이 아니오”
[임정100년, 3·1운동 100년] “광복군은 남자의 전유물이 아니오”
  • 진주원 기자
  • 승인 2019.04.16 08:59
  • 수정 2019-04-16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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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무장투쟁한 여성들
총칼 들고 일제 항전에 나서다
서로군정서·조선의용대·한국광복군까지
권기옥, 박차정, 오광심, 지복영 등

 

“비행사가 돼 조선총독부를 폭파하고 싶습니다.” (권기옥, 1924년 중국 운남항공학교 입학 당시)

3·1운동은 비폭력주의였다면, 한국광복군으로 대표되는 항일 무쟁투쟁조직은 일제를 상대로 한 전투를 통해 우리 힘으로 독립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극에 달한 일제의 탄압을 피해 1940년 9월 17일 중국 중경으로 근거지를 옮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주석 김구가 발표한 광복군 선언문에서 “광복군은 한-중 두 나라의 독립을 회복하고자 공동의 적인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며 연합군의 일원으로 항전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항일운동의 최전선에서 총칼을 들고 나섰던 여성들에 대한 조명은 턱없이 부족하다. 만주의 서로군정서에서 남자현, 조선의용군으로 최전선에서 활약한 김명시 장군, 조선의용대의 이화림과 박차정 등의 활약이 대표적이다.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에는 창설 초기 오광심, 김정숙, 신정숙, 지복영, 조순옥 등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들을 포함해 100명 정도로 늘었으나 기록을 통해 발굴된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공적조서에는 31명이 등록돼있다. 남녀를 통틀어 전체 광복군은 700명에서 1000명 정도로 추정된다.

임시정부는 무장투쟁에 여성의 참여를 처음부터 했을까. 초기에 의용군을 모집할 당시에는 여성에 대한 언급이 없었으나 한국광복군 창설에는 양상이 달라진다.

“범한국혁명 남녀는 누구를 물론하고 그의 역사적 혁명을 완성하기 위하여 광복군에 참여할 권리와 의무를 똑같이 소유한 것이다”(이청천, 1941)

‘이처럼 달라진 것은 1919년 임시정부 수립 이후 한국 여성들이 국내외에서 남성 못지 않은 전투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라는 것이 윤정란 서강대 종교연구소 선임연구원 분석이다.

입대 동기는 일본군에 의한 가족의 사망, 독립운동가들의 권유 등과 함께 여성들의 권리 신장에 대한 관심도 높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광복군 오광심
한국광복군 오광심

 

조선혁명군, 민족혁명당 등을 거쳐 한국광복군에서 활약한 오광심(1910~1976) 독립운동가가 1941년 당시 밝힌 입대 계기다. “광복군은 남자의 전유물이 않이오. 우리 여성의 광복군도 되오며 우리 여성들이 참가하지 않이하면 맞이 사람으로 말하면 절룽발 리가 되고 술래로 말하면 외박퀴 수레가 되야 필경은 전진하지 못하고 쓰러지게 됨이다.” 

한국광복군 지복영
한국광복군 지복영

 

지복영(1920~2007)은 “대한의 잔 다르크가 되라”는 아버지 지청천 광복군 총사령관의 말에 따라 광복군에 지원하며 최전선에 배치해 달라고 요청한다. 지청천도 “내가 남의 자식도 사지에 보내는데 내 자식이라고 못 보내겠느냐”라고 허락했다. 지복영은 1996년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임시정부 헌법이 빈부와 신분의 귀천을 구별하지 않고 특히 남녀평등을 강조한 데 자극받아 미력이나마 일조를 하고 싶어서였지요. 당시 여군에 대한 대접도 좋아 월급도 중국 돈 5원으로 남자들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라고 밝혔다. 당시 상해 임시정부는 임시헌장 3조에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무하고 일체 평등함”이라고 했다.

한국 최초 여성 비행사 권기옥
한국 최초 여성 비행사 권기옥

 

권기옥(1901~1988)은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로 1938년 육군참모학교 교관으로 활약한 뒤 상하이임시정부의 독립운동에 적극 뛰어들었다. 상하이임시정부에서 한국광복군 비행대 편성과 한국광복군 건군 작전 계획에 참여했고, 공군설계위원회 위원, 대한애국부인회 사교부장 등으로 활동했다. 1920년 당시 비행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임시정부의 추천서를 들고 중국 운남성 운남항공학교에 가서 “비행사가 돼 조선총독부를 폭파하고 싶습니다”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광복군 내에서 여성대원들은 남성대원들과 군복무 수당을 같이 받으면서 똑같은 교육과 훈련을 받고 군인으로서의 역량을 길렀다. 특히 여성대원들은 남성대원들의 역량보다 떨어지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다고 알려져 있다. 남성대원들과 함께 병력을 모집하는 초모활동과 교육과 훈련, 선전활동, 한미군사합작과 전략첩보활동, 국내진입작전과 경진대 활동 등에 참가했지만, 한편으로는 세탁, 재봉, 구호대 등 ‘여성의 일’로 여겨지는 역할을 담당하면서 성역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1935년 중국 공군에서 선전 비행을 준비하던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 권기옥(왼쪽 둘째)
1935년 중국 공군에서 선전 비행을 준비하던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 권기옥(왼쪽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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