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 여성 선배가 후배들에게 보내는 편지
체육계 여성 선배가 후배들에게 보내는 편지
  • 신정희 대한하키협회 부회장
  • 승인 2019.02.04 12:01
  • 수정 2019-02-04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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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희 대한하키협회 부회장이 체육계 미투(MeToo) 사건을 계기로 여성 후배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은 편지를 여성신문에 전해 왔습니다. -편집국

지금 이 순간에도 정신적 고통 속에서 묵묵히 지옥훈련을 이겨내고 있을 여성 후배 선수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반성문을 써내려 갑니다. 이번 체육계 미투(MeToo) 사건은 ‘스포츠에서도 인권이 지켜져야 진정한 의미의 스포츠 가치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저 또한 여성 체육계 선배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스스로를 깊히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스포츠 정신은 반칙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해 싸워야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여성 선수들이 훈련 과정에서 지도자의 폭언과 폭행을 감당하며, ‘기록의 노예’처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지 못했을 때 정신적, 육체적으로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 선배들이 인권이 보장되는 스포츠 환경을 만들고, 후배들에게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알려줘야 했지만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저희 세대는 인간의 존엄에 대해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고 설령 그런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쉬쉬하며 침묵을 배워야 했던 세대였습니다. 저 역시도 여성 선수로서 존엄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스포츠 계에서 인권이라는 영역에 큰 구멍이 나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조재범 성폭력 사태 근본 대책 마련 긴급 토론회 ‘왜 체육계 성폭력은 반복되는가?’가 열리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조재범 성폭력 사태 근본 대책 마련 긴급 토론회 ‘왜 체육계 성폭력은 반복되는가?’가 열리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체육계 폭력·성폭력 문제는 10여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되어 스포츠 인권 교육 프로그램이 생기고 체육 관계자들이 교육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2009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 가이드라인’과 ‘스포츠 인권 헌장’도 만들었습니다.

제가 선수위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성폭력 지도자를 영구제명을 시킨 일이 있습니다. 당시 성폭력 지도자를 용서하지 않고, 유사한 일들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현실적인 교육을 강화 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스포츠 현장에서 반인권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범죄는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되며, 범죄를 저지른 지도자가 스포츠 현장에 남아 있어서도 안됩니다.

지금도 변하지 않은 남자 지도자들이 존재합니다. 이들이 훈련을 빙자해 타인의 인권을 파괴하는 것은 스포츠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입니다. 인간의 존엄을 무시하고 반칙을 저지른 지도자는 지도자 자격이 없습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성취한 것을 성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선 잘못을 저지른 지도자를 엄벌하여 다시는 스포츠계에 발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가해자에 대한 온정주의로 피해자의 인권을 다시 한번 짓밟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제왕적인 1인 지도자 체제를 바꾸고 더불어 여성 지도자의 진출도 제도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폭력·성폭력 범죄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스포츠 현장의 인권 교육 시스템을 강화해야 합니다. 선수들에게 자신의 존엄을 파괴하는 공격 앞에서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지킬 용기와 힘을 길러주는 현실적인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곧 스포츠 인권이며, 선수들이 알아야 할 스포츠 정신입니다.

이와 같은 스포츠계 스스로의 노력이 계속되어야 운동을 좋아하는 여성들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고, 미래 스포츠사회의 행복한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렵게 용기내 미투(MeToo)를 외친 선수들이 진정 바라는 일일 것입니다.

과거 여성 선배들은 여성 스포츠인의 지위 향상을 위한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체육계 임원, 지도자 자리에 초점을 맞췄을 뿐, 진정한 인간의 존엄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스포츠 정신이며 진정한 스포츠인의 가치란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후배들의 아픔을 소홀히 해온 것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합니다. 직접 실명을 걸고 자신의 피해를 알리는 용기를 내준 후배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선배로서 미안한 마음을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저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관심을 갖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지도자 뿐만 아니라 학부모와 관계자들도 좀 더 관심을 가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 번 용기를 내 미투(MeToo)를 외친 후배들에게 고맙고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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