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 발표
삶의 질 향상·성평등 구현·
인구변화 대비… 목표 설정
‘합계 출산율 1.5’ 목표 포기
출산 장려 위주 정책 벗어나
‘삶의 질 높이는 정책’으로 전환
청와대는 ‘성평등’ 목표 잡았는데
국회 “돈 줄테니 낳아라” 불협화음

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7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7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정부가 ‘성평등 구현’을 저출산(저출생) 대책의 목표로 확정했다. 그동안 ‘합계 출산율’을 앞세운 출산 장려 위주의 저출산 대책에서 벗어나겠다는 각오다. 출산율 제고를 정책 목표로 삼고 지난 12년 동안 116조원의 정책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출산율이 ‘0명’대로 곤두박질 치자 ‘정책이 실패했다’는 정부의 자성이 이번 정책에 녹아있다.정부는 임금·채용 차별 없는 성평등한 일터, 비혼 자녀가 차별받지 않는 사회, 남성이 육아를 당연한 권리로 여기며 함께 돌보는 사회를 핵심 과제로 삼고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위원장 대통령, 이하 위원회)는 7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을 확정·발표했다. 김상희 부위원장은 “출산 장려 정책에서 모든 세대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했다”며 “결혼과 출산하더라도 퇴직하고 나이들더라도 삶의 질 떨어지지 않고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 방점을 뒀다”고 말했다.

이번 정책 로드맵은 ‘모든 세대가 함께 행복한 지속가능사회’를 비전 아래 △삶의 질 향상 △성평등 구현 △인구변화 적극 대비를 목표를 설정했다. 기존 3차 기본계획에서 내세운 ‘출산율 1.5’ 목표는 정책 로드맵에선 빠졌다. 개개인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 국가 주도 출산장려 정책이라는 점에서 비판받았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2005년 합계 출산율이 1.09명을 기록하자 처음으로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세우고 이듬해 시행에 들어갔다. ‘2020년 합계 출산율 1.5명’을 핵심 목표로 제시한 것은 2016년 내놓은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2016~2020)에서다. 그러나 2006년부터 약 116조원의 예산 투입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역대 최저를 매년 경신했다. ‘저출산 대책에 헛돈 썼다’는 비아냥과 함께 출산율을 정책 목표로 삼은 것은 여성을 인구 정책의 대상·수단으로 만 보는 것이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정부도 이같은 비판에 저출산 대책을 전면 수정하겠다고 밝히고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재구조화 작업에 들어갔다. 사회복지학·경제학 교수 등 전문가들로 꾸린 재구조화 비전팀이 꼽은 저출산의 핵심 문제는 ‘삶의 질’과 ‘성평등’이다.

저출산·고령사회 위원회는 이 같은 제언을 받아들이고 사상 처음으로 ‘성평등’을 정책 핵심 목표로 내세웠다.

정재훈 서울여대 교수는 “3차 기본계획 때까지 제대로 언급되지 않았던 ‘성평등’이 정책 로드맵에 정책 목표로 들어갔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이번 결정이 선언적 구호로만 남지 않으려면 기본계획에서 밝힌 대로 목표 달성을 위한 법률 개정과 사회 인식 변화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평가했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7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7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편, 정부가 낡은 방식에서 벗어나 ‘성평등’을 목표로 삼아 저출산 추세를 완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이, 국회는 여전히 낡은 ‘저출산 대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내년 10월부터 3개월간 모든 산모에게 1인당 250만원의 출산장려금을 한 번에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당초 복지부가 제출한 예산안에는 없던 항목이었다. 이 예산은 ‘출산 주도 성장’을 주장한 자유한국당이 강하게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이 알려진 직후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 여론이 쏟아지자 국회는 슬그머니 예산을 삭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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