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사회 로드맵
민법 ‘부성주의원칙’ 없애고
자녀 성, 부모협의 결정으로
육아휴직급여 단계적 상향
여성계 “캠페인 이상 대책 없어”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7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저출산·고령사회 본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7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저출산·고령사회 본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정부가 자녀 성을 결정할 때 아버지 성을 우선 따라야 하는 ‘부성주의원칙’을 없애고 부모 협의로 결정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다. 초등학교 입학 전 아동의 의료비를 전액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육아휴직 급여도 높인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출산위)는 7일 이러한 내용을 담은 ‘3차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을 발표했다. 기존 3차 기본계획을 재구조화한 이번 로드맵은 저출산 추세를 완화하기 위해 ‘출산 장려’ 정책에서 벗어나 ‘삶의 질’을 높이고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새롭게 세웠다.

모든 아동 차별 없도록

우선 비혼 출산·양육을 차별하던 법·제도를 개선한다. 아동이 태어나자마자 버려지거나 유기되는 일을 막고 모든 아동이 존중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이에 따라 그동안 아버지의 성을 우선적으로 따르도록 한 자녀의 성 결정 방식을 부모협의 원칙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현재 민법 제781조 제1항에는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다. ‘부성우선원칙’이다. 다만 ‘부모가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다고 선택 조항을 넣어 여지를 뒀다. 정부는 앞으로 부성우선원칙를 부모협의원칙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협의 시점도 혼인신고 시에서 출생 신고 시까지 확대된다.

또 현재 국회에는 ‘계모, 계부, 배우자의 자녀’ 등 주민등록 등·초본의 표기, ‘혼외자’ 구별을 을 없애는 법안이 현재 발의돼 있다. 출생 등록이 누락되는 아동이 없도록 의료기관이 출생 사실을 알려주는 ‘출생통보제’와 실명 출생신고가 어려운 아동의 경우 익명신고를 허용하는 ‘보호출산제’(가칭) 도입도 추진한다.

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1부장은 부성우선원칙 폐지 추진에 대해 “앞으로 법 조문을 살펴봐야겠지만 추진 방향에 동의한다”며 “법 개정이 이뤄지면 국제사회가 지속적으로 개선을 권고한 사항이기 때문에 국제적 흐름에 발 맞출 수 있고, 법에서 부부가 평등할 권리를 명시함으로써 딸과 아들을 차별하던 인식이 달라지고 나아가 우리사회 성차별 문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CEDAW)는 가족성에 대해 부부가 동일한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면서 한국정부에 부성우선원칙을 개선할 것을 14년째 권고했다. 그러나 정부는 가족성에 관한 규정인 제16조 제1항 g호를 14년째 ‘유보(reservation)’하며 이행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

당연히 육아휴직 할 수 있도록

육아휴직 제도가 누구나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권리가 되도록 제도 개편도 추진한다. 내년부터 배우자 출산휴가가 유급 3일에서 10일로 확대되고, 현재 13% 수준인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율을 20%대로 높이기 위해 육아휴직급여의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구체적으로 초반 3개월간 통상임금의 100%까지 지급했다가 계단식으로 낮추는 안이다. 그동안 논의했던 남성이 자녀를 낳으면 1개월 이상 의무적으로 육아휴직을 쓰도록 하는 ‘자동 육아휴직제’나 노사가 함께 기금을 만들어 육아휴직 비용을 대는 ‘부모보험’ 등은 로드맵에선 빠졌다. 중소기업이나 전문직 등 육아휴직이 어려운 직종에 맞는 보완대책도 마련하기로 했다.

임신·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폭 넓게 쓸 수 있도록 사용 기간을 최대 1년에서 최대 2년까지 쓸 수 있도록 한다. 육아·돌봄·학업 등 생애주기 여건에 따라 노동시간 조절이 가능한 ‘근로시간 단축 청구권’이 도입될 계획이다. 또 정부는 ‘남녀평등 아이 키우기 좋은 우리 일터’(가칭) 캠페인을 범국적으로 전개해나갈 예정이다. 성평등한 일터를 만들고 일·생활 균형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일환이다.

또한 정부는 내년부터 1세 미만 영아의 의료비를 사실상 전액 지원하기로 했다. 2025년까지 초등학교 입학 전 모든 아동으로 혜택 대상을 넓히겠다는 계획이다. 의료비는 임산부에게 일괄 지급하는 국민행복카드로 결제할 수 있다.

일각에선 정부정책의 근간을 뒤엎는 새 로드맵에 ‘알맹이’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성차별적 노동시장과 사회문화가 문제의 중요한 원인임에도 정부는 ‘고용평등 전담조직 검토’ 등 성평등 노동 실현에 소극적”이라며 “노동시간 단축이나 남성 육아휴직에 대한 캠페인성 대책 외에 돌봄의 주체로서 남성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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