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난민 혐오는 우리를 비추는 거울
예멘난민 혐오는 우리를 비추는 거울
  •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우리 곁의 난민』 저자
  • 승인 2018.08.08 13:29
  • 수정 2018-08-1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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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이유로 난민 인정을 신청한 이란 국적 중학생 지난달 19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서울남부출입국외국인사무소에 난민을 신청한 가운데 밖에서는 같은 학교 친구인 중학생들이 소년을 난민으로 인정해 달라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종교적 이유로 난민 인정을 신청한 이란 국적 중학생 지난달 19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서울남부출입국외국인사무소에 난민을 신청한 가운데 밖에서는 같은 학교 친구인 중학생들이 소년을 난민으로 인정해 달라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나의 존엄은 이웃의 존엄과

연결되어 있으며,

인간의 존엄은 공동체가 함께

협력하고 지킬 때 보장된다

제임스 루나라는 작가가 있다. 미 캘리포니아주 루이세뇨 부족 출신의 인디언인 그는 지금으로부터 31년 전, 샌디에이고 인류박물관의 인디언관 진열대에 누워 스스로 작품이 되었다. 허리에 천 하나만을 두른 채 누워있는 그가 자신에게 붙인 작품 이름은 ‘인공품(artifact)’. 아메리카 인디언을 때로는 미개하고 난폭하며 열등한 존재로, 때로는 한없이 지혜롭고 순수한 존재로 추앙하는 두 시선 모두가 자신들의 실제적 사회 정체성을 드러내기보다는 인위적 생성물에 불과하다는 비판과 저항이 담겨있다. 루나의 의도는 그냥 있는 대로 봐달라는 것이었다.

온라인에 넘쳐나는 제주 예멘 난민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 폭력적 시선들을 보면서 루나가 떠올랐다. 시중에 유포되는 예멘 난민의 모습은 놀이동산의 바이킹처럼 양극단을 오간다. 한편으로는 시혜와 동정의 대상, 다른 한편으론 혐오와 적대감의 표적이다. 여성 억압이 심한 무슬림 국가 출신인 예멘 난민은 한국 여성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잠정적 범죄자’이며, 한국 젊은이의 일자리를 뺏거나 사회에 큰 짐이 되어 복지를 좀먹는 불청객으로 인식되고 있다. 잘해야 무시의 대상이거나 동정심을 자극하는 존재일 뿐이다.

예멘 난민을 성폭력범이나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고 두려움과 공포심을 표출하는 것은 근거 없는 편견이자 인종주의의 발로다. 통상 난민의 범죄율은 유입국가의 범죄율보다 낮다. 국내의 경우 난민의 범죄발생률을 별도로 조사한 바는 없지만 한국 내 외국인의 범죄 발생률은 내국인 범죄 발생률의 절반 이하다(한국형사정책연구원 김대근 연구위원).

지난 2001년 ‘유엔 더반선언 및 행동계획’은 “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혐오는 현대판 인종주의”라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인종주의는 피부색과 출신국에 따라 이방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는데 고약함이 더해진다. 한국보다 잘 사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호의적이거나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방인에 대해서는 터무니없는 모욕과 경멸적 태도를 서슴없이 내보이고 불온시 한다. 파리에서 난민으로 살았던 홍세화 선생은 이를 두고 ‘GDP 인종주의’라 명명했는데, 부인할 수 없는 한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예멘 난민을 불온한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의 이면에는 이 같은 또 다른 인종주의가 작동하고 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존재로 살고 있는 난민들

낯선 이국땅에서 난민이 된 이들은 한껏 몸을 낮춘 채 위축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난해 책 출간을 위해 한국에 살고 있는 난민 여러 명을 인터뷰 한 적이 있는데, 이들은 한국 사회의 시선을 눈치 채고 스스로 마음과 꿈을 ‘구조조정’하며 살고 있었다. 그 존재가 납작하다 못해 이 땅에 ‘점’처럼 콕 박혀 살고 있다고나 할까. 이 땅에서 난민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은 없다. 누군가 대변해주지도 않을뿐더러 열심히 찾아서 들으려는 노력도 크게 미흡하다. 한국의 난민들은 이웃과 단절된 채, 보이지 않고(invisible) 들리지 않는(voiceless)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마당에 당장 본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불안정한 신분의 난민이 자신들의 문화적 특성을 맘껏 과시하며 성폭력을 자행할 것이라는 주장은 누가 봐도 지나친 억측이며 왜곡이다. 범죄를 저지를 경우 당사자 뿐 아니라 난민집단 전체가 비난에 직면하고 최악의 경우 영원히 떠도는 부평초처럼 되리라는 것을 난민 스스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어느 집단이든 소수의 개인이 범죄자가 될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 정작 문제는 사건은 개인에서 비롯되는데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던지는 혐의의 눈길과 비난은 난민이라는 사회적 집단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난민혐오를 조장하는 세력들은 시민들의 불안을 부채질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에 대한 지지율 상승과 결집에 이용한다. 독일의 ‘페기다(PEGIDA)’와 같은 일부 극우단체나 일부 국가의 극우 보수 정당이 난민과 이주자에 대한 적대적 여론을 조장해 자신들의 지지율 상승에 이용해 온 예가 이를 입증한다. 현명한 민주시민이라면 선동과 왜곡에 휘둘리기보다 이를 악용하는 집단은 누구이며 무슨 의도가 있는지를 간파해 보는 것이 우선일 터이다.

 

난민을 대하는 인식과 태도는

소수자에 대한 인권수준 보여줘

난민들이 가뜩이나 힘든 한국 젊은이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라는 의구심 또한 얼마나 억지스런 주장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국경을 뚫고, 생의 한계를 넘어 난민이 된 이들은 사실 대단한 역량을 갖고 있다. 상상해보라. 생명의 안위가 걸려있는 극한의 상황을 돌파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보력과 지혜와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겠는가. 내가 만나본 다수의 난민들은 본국에 있었더라면 웬만큼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고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는 이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한국인이 하지 않는 가장 허드렛일을 한국인에 비해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저임금을 받으며 묵묵히 살아가고 있었다.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궂은일을 이주노동자나 난민이 떠맡고 있으며 한국노동자와 경쟁대상이 안 된다는 사실은 새삼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낯선 이방인에 대한 불편함과 불안감은 어떤 사회에서든, 누구든 갖기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삶이, 그리고 사회가 이질적인 것과 섞여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 있다. 세계는 갈수록 국경의 의미가 퇴색돼가고 한국인 누구라도 한반도만 떠나면 이방인이 된다. 이질적인 문화 및 존재와 공존할 것인가, 아니면 차별하고 혐오하며 배제할 것인가. 이건 순전히 한 사회의 개방성과 관용과 연대의식에 달려있다. 그런 점에서 난민을 대하는 한국인의 인식과 태도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한국인의 인권수준을 보여주는 척도라 할 수 있다.

예멘난민에 대한 혐오와 적대감이 난무한 지난 몇 달간 마음이 부대끼고 착잡했던 이유는 사실 난민 때문이 아니었다. 정작 문제는 한국인, 스스로에 있다. 제주 예멘난민에 대해 한국 사회가 분출하는 혐오와 불안감, 그리고 공포는 결국 우리 내면의 투사다.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젊은이, 성폭력과 몰카의 불안감을 일상적으로 감내하고 살아가는 여성들의 공포, 희망을 찾기 어렵다는 절망감은 분노와 적개심으로까지 번져 가장 힘없는 약자에게 쏟아지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달려온 지난 수십 년 간의 삶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특정인을)낙인 찍는 행동은 (낙인찍는 이) 자신의 허약함과 나약함으로 인한 불안감, 그 자체에 대한 반응”이라고 했던 세계적인 법 철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의 말이 마음을 찌르듯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난민을 돌보면 좋겠지만 우리도 힘드니 어쩔 수 없다”는 볼멘소리도 있다. 그런데 난민을 외면하는 사회는 그 사회 안의 다른 소수자와 약자도 쉽게 무시하고 외면하기 십상이다. 난민을 내몰아서 아낀 세금이 반드시 가난한 자에게 돌아간다는 보장도 없다. 힘센 사람, 있는 사람을 중시하는 사회는 세금도 그들 중심으로 편성하는 법이다.

 

지난 6월 제주시 일도1동 제주이주민센터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주 예멘 난민신청자들을 대상으로 인권 상담을 진행했다. 이날 센터를 찾은 예멘인들이 상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6월 제주시 일도1동 제주이주민센터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주 예멘 난민신청자들을 대상으로 인권 상담을 진행했다. 이날 센터를 찾은 예멘인들이 상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1992년 난민협약 가입한 한국

난민의 존엄성 보장할 의무 있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중심에 놓는다는 것은 나머지 사람들을 등한시하거나 소외시키자는 것이 아니다. 소수자의 부당한 처지를 변화시킬 때만이 모두가 존중받고 존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서로 연대하는 것뿐이다.

난민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인간 삶이 얼마나 복잡다단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불완전하고 취약한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뜻하는 대로 일이 되는 경우는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생각지도 못한 일을 갑작스레 만나 망연자실하거나 불행을 한탄하며 예상치 못한 행로를 따라 살아가기도 한다. 한국 땅을 찾은 난민들 또한 어느 누구도 난민이 되겠다고 작정하고 된 경우는 없다. 계몽주의 철학자 루소의 말대로 우리 모두는 “벌거벗고 가난하게 태어나며, 삶의 비참함, 슬픔, 병듦, 곤란과 모든 종류의 고통을 겪게 되며, 종국에는 모두 죽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 속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일찍이 13세기 페르시아의 시인 사아디가 “손가락의 한 부분이 고통을 겪으면, 다른 부분도 평안할 수 없다”고 했듯이 인간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공감하고 돕는 것은 인간이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의 존엄은 이웃의 존엄과 연결되어 있으며, 인간의 존엄은 공동체가 함께 협력하고 지킬 때 보장된다.

1951년 제정된 난민협약은 인류공동체가 연대라는 인권 가치의 실현을 통해 난민을 돌볼 수밖에 없다는 자각에서 탄생한 국제법이다. 협약은 가입국이 난민의 존엄성과 안전을 보장해 주어야 하는 국제법적 의무가 있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선택사항이 아니라는 뜻이다.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하고 비준한 한국 또한 예외일 수 없다.

몇 주 전 예멘 난민을 만나보기 위해 제주를 방문했을 때 많은 제주도민들이 난민가족에게 한 달씩 방을 내주기도 하고 먹을 것, 입을 것을 한보따리씩 싸들고 오는 것을 보고 적잖이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몇 몇 개인이 감당하는 데는 너무나 한계가 분명하다. 예멘난민에 대한 혐오와 불안감이 커진 데는 정부가 잘못 대처한 책임이 크다. 2013년 난민법을 제정했고, 이후 유럽에서의 난민유입 사태를 보면서도 강건너 불처럼 여기고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은 것은 만시지탄할 일이다.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정부라면 난민에게 존엄한 삶을 보장하는 것이 지구촌 국가가 함께 걸머져야 할 사명임을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국가가 나설 차례다.

※칼럼의 일부는 『우리 곁의 난민』의 내용을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우리 곁의 난민』 저자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우리 곁의 난민』 저자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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