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책타래]

자연스럽다는 말
모성은 여성의 본능이 아니다. 사람은 오랑우탄이나 침팬지보다 훨씬 짧은 간격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었는데, 비결은 서로의 아이를 함께 돌보는 협동 육아였다. “누가 엄마인지, 친모인지에 연연하지 않는 육아”야말로 인간 진화의 핵심이었다. 독일 막스 플랑크 인구학연구소에서 활약 중인 진화인류학자 이수지는 첫 저서에서 “모든 생명은 어미가 새끼를 돌본다”, “동성애는 자연 법칙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어떻게 차별을 정당화하는지 밝힌다. 여성성도 생물학적 운명이 아닌 경제와 제도 변화 속에서 재구성된 것이다. 또 폭력과 지배를 남성 본능으로 포장하는 담론을 비판하며, 성차를 본성으로 환원하는 순간 불평등이 고착될 뿐이라고 말한다.
이수지/사이언스북스/2만2000원

양양
“1932년에 태어난 할머니는 첫째로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죄인처럼 숨죽여 지냈다. 1975년에 세상을 떠난 고모는 남자친구 집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가족 안에서 지워져야 했다.” 양주연 감독은 “너는 고모처럼 되지 말라”는 부친의 말을 듣고 1975년 세상을 떠난 고모 양지영의 삶을 파헤친다. 영특했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없었고, 학생운동에 동참했으나 운동권 내 교제폭력을 겪은 여성. 저자는 고모의 삶을 통해 1970년대 여성 자살 사건을 들여다본다. 여성의 경험을 개인의 경험으로만 여기는 사회에서 구조적 폭력이 어떻게 가려지고 감춰지는지 드러낸다. 동명의 영화로 부산여성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다.
양주연/한겨레출판/1만7000원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
소수자 인권 문제에 천착해 온 법학자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의 신간.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전직 대통령의 발언이 어떻게 현실을 은폐했는지, 여성 할당제가 왜 역차별이 아닌 적극적 평등화 조치인지 설명한다. “구조적 차별의 현실을 부정하면 정확히 그 반대의 결과가 나타난다. 각자도생하며 개인적으로 해결하면 되니 국가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대안으로 저자는 성별, 장애, 성적 지향 등 모든 차별을 포괄하는 차별금지법을 제시한다. 특정 집단만을 위한 특혜가 아니라 공존의 조건임을 강조한다.
홍성수/어크로스/1만8800원

동료에게 말 걸기
철학책 편집자 박동수는 도저히 서로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동료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다. 서양 철학과 동시대 젊은 저자들의 책을 나란히 읽으며, 지식의 위계를 넘어 함께 사유하는 길을 제시한다. 상대를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협상의 주체로, 적이 아니라 잠재적 동료로 보는 게 출발점이다. 극우 세력 지지자에 대해 “그들도 우리처럼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대신, “우리도 그들처럼 감정으로 정치를 판단하고 있다. 단지 깊은 이야기가 다를 뿐이다”라고 말해 보자고 제안한다.
박동수/민음사/1만8000원

천왕성에 집 한 채
스페인 출신 트랜스페미니스트 철학자 폴 B. 프레시아도가 5년간 『리베라시옹』에 발표한 칼럼 67편을 묶었다. 도널드 트럼프와 마린 르펜으로 대표되는 극우정치의 부상, 유럽의 난민 문제 등 우리 시대의 현안들을 트랜스적 시각에서 다룬다. 베아트리스에서 폴로 성전환하며 40여 개 도시를 횡단한 저자는 “나는 성별-젠더체계의 반체제자”라고 선언한다. 젠더의 변화가 단지 몸의 변형이 아니라 시간과 권력 관계의 변화임을 보여준다. 트랜스-이주자-난민의 경험을 연결하면서, 남성과 여성, 시민과 이방인의 이분법 너머 존재하는 이들을 위한 새로운 존재론적 공간으로 ‘천왕성’을 제시한다.
폴 B. 프레시아도/문경자 옮김/문학동네/2만2000원

통역사
네팔 여신 쿠마리 출신 결혼이주여성이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다. 법정 통역사 도화는 1억원을 대가로 피고인의 허위 통역을 제안받는다. 재판 후 피고인 차미바트의 증언을 복기하던 도화는 거대한 음모를 깨닫고 진실을 밝히기 시작한다. 25년 차 시나리오 작가 이소영이 한국의 소도시에서 발생한 잔혹한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네팔의 언어와 종교, 문화라는 이국적인 요소를 매끄럽게 엮어 선보이는 사회 고발 미스터리. 출간 전 영상화가 확정됐다.
이소영/래빗홀/1만6800원

블루 시스터스
뉴욕에 사는 네 자매 중 셋째 니키가 스물일곱에 세상을 떠났다. 1년 후 남은 세 자매는 엄마로부터 아파트를 처분하겠다는 메일을 받는다. 런던, 로스앤젤레스, 파리에 흩어져 살던 자매들은 니키의 죽음을 마주하고 다시 가족으로 돌아가야 한다. 『클레오파트라와 프랑켄슈타인』으로 틱톡에서 폭발적 반응을 얻은 영국 작가 코코 멜러스의 두 번째 작품. 각 장마다 자매들의 시점으로 번갈아가며 슬픔과 그리움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그린다.
코코 멜러스/심연희 옮김/클레이하우스/1만9500원

우리를 찾아줘
“지구가 우주에서 유일하게 생명이 있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부담”이다. 관측천문학자이자 과학커뮤니케이터 제이미 그린은 그래서 생명이 우주 곳곳 어디에나 존재할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슈퍼지구와 미니해왕성 같은 행성 형태를 그리고, 휴머노이드가 아닌 식물·동물 형태의 지적 생명체를 상상한다.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며 외계 생명과의 첫 접촉이 가까워진 지금, 지구에서 벌어질 상황을 예측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외계 행성 연구자, 철학자, 언어학자 등을 취재해 융합 연구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제이미 그린/손주비 옮김/위즈덤하우스/2만1000원

달려!
가난과 차별로 상처 입은 한 흑인 소년이 백인 교장 선생님의 따뜻한 관심과 응원으로 새로운 희망을 찾아간다. 라가치상 수상 다비드 칼리 작가와 안데르센상 수상 마우리치오 콰렐로 작가의 그림책 개정판이 출간됐다. 삶이 던져 준 어려움을 당당하게 마주하는 주인공을 통해 갈등과 화해, 성장과 희망의 서사를 아름답게 그렸다.
다비드 칼리 글, 마우리치오 A. C. 콰렐로 그림/나선희 옮김/책빛/16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