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새로운 질문, 왜 일하는가

 

요즘 건축계에서 자주 튀어나오는 단어 하나, ‘탈건축’.

듣기만 해도 불안하고, 또 묘하게 숨이 트인다. 2023년 대한건축사협회 통계에 따르면 건축 서비스 산업은 입사자(1만 7천 명)보다 퇴사자(1만 9천 명)가 더 많아졌다. 특히 1~4인 규모의 소규모 사무소는 퇴사자가 입사자의 세 배에 달한다. 숫자는 냉정하다. 과로와 낮은 보상 때문만일까? 나는 이 흐름을 세대 전체의 가치관 변화로 읽는다.

과거 건축은 “사회를 위한 위대한 건축물을 세우는 일”에 꽂혀 있었다. 지금의 젊은 건축가들은 다르다. ‘내 삶이 풍요로워지는가’—이 질문을 일의 정중앙에 놓는다. 여기서 말하는 워라밸은 단순한 조기 퇴근 욕망이 아니다. 일과 삶을 칼로 자르듯 분리하기보다, 살아낸 경험을 작업에 녹여내려는 창조적 의지다. 이것이야말로 건축계가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야 할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세대의 기억은 엇갈린다. 대학에 여학생이 10%도 채 되지 않던 시절을 지나온 선배들은 “남자와 똑같이” 일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고 믿었다. 여성성을 숨기고, 때로는 지워가면서. 나 역시 ‘여학생’, ‘여직원’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게 몹시 싫었다. 하지만 지금의 후배들은 “학교에선 성별이 문제 되지 않았는데 왜 사회에 나오면 급히 성을 붙이는가”라고 묻는다. 같은 현장을 두고 다른 언어. 기울어진 운동장을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세대나 성별이 쳐놓은 선을 건너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하려는 새로운 흐름이 분명히 보인다.

그 변화와 함께 건축의 무대도 넓어졌다. 설계사무소와 현장만이 전부가 아니다. 도시 정책을 다루는 기획자, 공간 콘텐츠를 설계하는 프로듀서, 사회적 기업가로 활동하는 동료들. 건축적 사고가 다른 업종과 맞물릴 때 생산적인 마찰열이 생긴다. 그 지점에서 여성들이 두드러지는 장면도 많다. “여성이라서 섬세하다”는 낡은 말은 피하고 싶지만, 생활의 미세한 균열을 놓치지 않는 능력은 많은 여성 건축가가 몸으로 익힌 감각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거대한 기념비보다 공공의 벤치, 골목의 조도, 동네 도서관의 동선처럼 삶에 스며드는 ‘생활밀착형’ 건축이 힘을 얻고 있다. 작은 배려가 도시의 체온을 바꾸고, 벤치 하나가 하루의 피로를 바꿔주기도 하니까.

경력 단절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구조적 과제다. 해외 건축계에서는 출산·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을 완화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교육·업데이트 지원, 네트워킹 프로그램 제공 등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휴직 중에도 전문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때, 더 많은 여성 건축가들이 현장에 머물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개인의 몫’이 아니라 ‘모두의 책임’으로.

그렇다면 ‘탈건축’은 무엇일까. 건축을 떠나는 선언? 나는 오히려 건축이 더 넓은 세계와 접속하는 방식이라고 본다. 큰 회사를 나와 동네와 직접 맞닿는 실험을 하는 것, 전업 설계를 잠시 뒤로하고 정책과 산업의 언어를 배우는 것, 혹은 팀의 리듬을 바꾸는 것까지. 이탈처럼 보이는 움직임이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것이 지속가능성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젊은 세대가 바라는 건 단순히 근로시간 단축이 아니다. 자기 삶의 결을 해치지 않는 일, 그리고 그 결을 작업으로 되돌려주는 환류다. 그 가능성을 찾고 있다. 그리고 그 길의 선두에 나는 여성 건축가들이 서 있다고 믿는다. ‘여성성’의 규범을 따르자는 뜻이 아니라, 삶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타인과 공간의 관계를 오래 들여다보는 태도로 새로운 건축의 시대를 먼저 열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왜 일하는가. 거창한 사명감만으로는 오래 못 간다. 그렇다고 취향만으론 도시를 바꿀 수 없다. 두 가지가 엮일 때, 비로소 지속가능성이 생긴다. 건축의 언어로 말하면 이렇겠다. 구조와 마감. 둘 다 필요하다. 오늘의 ‘탈건축’ 논쟁은 그 균형점을 다시 그려보자는 신호일 거다. 끝이 아니라 시작—그쪽에 나는 한 표다.

이영미 건축사·에이라우드건축사사무소 대표 ⓒ본인 제공
이영미 건축사·에이라우드건축사사무소 대표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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