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L코리아 유튜브 영상 갈무리
ⓒSNL코리아 유튜브 영상 갈무리

러닝이 MZ세대 사이에서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으면서 여럿이 함께 달리는 러닝 크루라는 새로운 문화도 생겨났다. 러닝 크루를 향한 대중의 관심을 반영하듯 〈SNL 코리아〉는 러닝 크루를 소재로 개그 콘텐츠를 만들었다.

이 콘텐츠로 화제가 된 건 여왕벌이다. 여왕벌은 크루 내에서 인기를 독차지하기 위해 몸매가 드러나는 운동복을 입고, 여성에게 선물 공세 등으로 환심을 사려는 여미새(‘여자에 미친 새끼’의 준말)를 비롯한 여러 남성에게 성적인 매력을 어필한다. 여왕벌의 의도를 간파한 여성 회원들은 그를 견제하지만, 여왕벌은 인기를 독점하기 위해 여적여(‘여성의 적은 여성’의 줄인말로 여성 간의 갈등을 일컫는 말)도 불사하며 모임 내 여성들과 기싸움을 벌인다.

운동을 즐기는 여성을 희화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레깅스 차림으로 헬스장에 와서 운동은 하지 않고 사진만 찍고 가는 여성을 비웃는 콘텐츠가 쏟아진 바 있다. 여왕벌은 이성의 호감을 이용하고 동성을 모두 적으로 돌린다는 점에서 그저 외모에 신경 쓰는 여성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여왕벌의 술수는 모임을 와해시킬 정도로 악랄해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남성과 여성, 모두 그를 마음 편하게 비웃을 수 있다.

된장녀, 맘충에 이은 새로운 놀잇감

사실 2000년대 초반 동호회 문화가 확산되던 시절부터 남초 모임 내에서 여왕벌 캐릭터는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SNL 코리아〉를 처음 봤을 때 든 생각도 ‘왜 해묵은 여왕벌을 소환했을까?’하는 것이다. 우선 여왕벌을 소재로 삼으면 운동모임 내에서 인기 있는 여성을 성적인 존재로 묘사하고 공감을 끌어내기 쉽다. 러닝 크루는 가뜩이나 이성을 만나는 게 목적인 사람들이 모인다는 인식이 강한데 그 안에서 가장 성적인 존재는 말할 것도 없이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다. 게다가 그 여성은 운동복을 입는다. 실제로 〈SNL 코리아〉는 여왕벌이 레깅스를 입고 등장할 때마다 그에게 시선과 관심이 쏠리는 걸 웃음의 포인트로 삼았다.

그러나 이른바 커뮤니티 운동을 많이 해본 경험을 근거로 말하면 리더십과 사교성이 뛰어난 경우 모임 내 중심이 되는 이는 대개 남성이다. 운동 모임은 남성의 수가 여성보다 훨씬 많고 운동 실력이 좋은 사람의 영향력이 커지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남성을 조롱하거나 멸칭으로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형님’으로 대접받는다. 똑같이 모임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해도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과는 매우 다른 처지에 놓이는 것이다. 이어진 의문은 실제로 여왕벌이라 불릴 법한, 다소 속물적이고 인정을 갈구하는 여성이 있다고 해도 그를 그렇게까지 비난하는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대중은 된장녀, 맘충, 셀기꾼이 이어 또 하나의 만만한 놀잇감을 찾은 게 아닐까?

여왕벌 캐릭터가 인기를 끌면서 여성의 리더십은 조종하기로, 여성의 사교는 정치질로 왜곡되기 쉬워졌다. 여성이 집단 내에서 돋보이거나 영향력을 가졌다가는, 또 그 힘을 행사했다가는 여왕벌로 낙인찍힐지도 모른다. 특히 어떤 여성과 가까우면 친구가 아니라 ‘시녀’로 삼는다는 말을 들을 것이고 반대로 갈등하면 ‘질투심에 의한 여적여’라는 프레임에 걸려들 것이다. 〈SNL 코리아〉가 만든 여왕벌 캐릭터는 결과적으로 여성의 말과 행동을 끊임없이 검열하는 억압만 하나 더 생산했다.

여성의 운동마저 왜곡하는 혐오 콘텐츠

그리고 여성의 운동 역시 성적으로 왜곡했다. 작가 리베카 솔닛은 여성을 ‘성적이지 않을 때가 없는 존재’라고 해석했고 ‘여자의 보행은 많은 경우 이동이 아니라 공연으로 해석된다’라고 말했다. 단순한 보행도 공연으로 치부되는데 운동은 어떻겠는가? 〈SNL 코리아〉와 같은 여성혐오적 콘텐츠는 ‘여성은 달릴 때도 남성에게 보이기 위해 달린다’라는 왜곡된 믿음을 강화하고 혐오 정서를 대중 속에 퍼뜨린다.

실제로 러너스 월드 매거진(Runner’s World Magazine)이 2016년 러닝을 취미로 가진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희롱 경험을 물은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43%가 ‘지나가는 남성이 의도적으로 쳐다보거나 소리를 지르고 따라왔다’고 응답했다. 반면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남성은 4%에 그쳤다. 이러한 현실에 무감각한 이들에게 여왕벌은 웃음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여성에게 그것은 검열과 억압의 프레임이 되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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