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채널 ‘민영 IN THE GI’ 영상 중 ‘EP1.에르메스 요가복♀️ALO [ART&LIFESTYLE] 아티스트 데이’ 썸네일.](https://cdn.womennews.co.kr/news/photo/202508/266244_431802_4015.jpg)
‘셀럽의 요가복’으로 알려진 미국의 애슬레저 브랜드 알로(alo)가 국내에 상륙했다. 지난달 아시아 최초의 플래그십 매장을 서울 도산공원 부근에 오픈했고 이달에는 용산을 비롯해 세 개의 매장을 추가로 오픈한다. 아시아 첫 매장을 서울에 연 이유는 국내 애슬레저 시장 규모가 10년간 150%, 연평균 11%씩 꾸준하게 성장한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취재를 위해 알로의 오픈 이벤트를 무더기로 신청했더니 알로 용산점 프리 오픈(정식 오픈 하루 전에 초대받은 고객이 먼저 쇼핑할 수 있는 이벤트)에 당첨됐다. 호기심은 크게 두 가지 질문을 향했다. ‘알로는 과연 요가복 계의 에르메스라고 불릴 만한가?’, 그리고 ‘알로를 입는 여성은 누구인가?’
매장 앞에 북적이던 여성들은 입장하자마자 경쟁적으로 옷을 골랐다. 피팅룸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회당 5분으로 제한됐다. 대기 줄도 상당해서 최대한 많은 옷을 빠르게 입어야 했다. 그러다가 혹시나 옷이 뜯어지기라도 할까 봐 불안했다. 그럴 만도 한 게 알로의 레깅스는 15~20만 원, 스포츠브라는 10~12만 원이다. 베스트셀러인 봉제선을 따라 라인이 들어간 레깅스와 브라 세트가 마음에 들었지만 가격이 거의 30만 원에 육박했다.
피팅이라고 해봤자 나에게 어울리는지도 겨우 알 수 있게 잠깐 입어본 게 다였다. 그런데도 알로의 제품은 전반적으로 마음에 들었고 높은 가격만 아니면 두어 벌 구매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모델 켄들 제너와 블랙핑크의 지수가 입고 다수가 열광하는 군중심리가 작용하지 않아도 과연 이 옷을 욕망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일단 옷에서 튼튼하고 잘 만들어진, 고가의 제품이 주는 만족감을 느낄 수 없다. 예를 들면 바느질이 완벽한 가죽 제품이나 고급 시계의 견고함 같은. 사실 여성복은 제아무리 가격이 비싸도 내구성과 거리가 멀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애초에 실용성을 우선하는 물건도 아니고 유행에 따라 자주 교체된다. 지금 쇼윈도를 점령한 핑크와 뉴트럴 컬러의 요가복, 크롭 티셔츠도 언젠가 사라질 걸 알지만 순간의 이미지를 위해 지갑을 연다.
치유는 의무, 스타일은 필수
그러나 이런 의구심과 별개로 방문객들의 손에는 쇼핑백이 여러 개 들려 있었다. 알로를 구매하는 이들의 연령, 체형, 스타일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공통점은 운동복과 일상복을 겸하는 애슬레저룩을 입고 있었다는 것이다(나도 마찬가지였다).
운동복 시장에서 요가복은 확고한 주류이며 운동복을 넘어 일상복으로 인정받은 지 오래다. 실제로 요가나 필라테스를 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요가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쿨하고 멋진 여성상으로 자리 잡은 현상을 눈여겨 봐야 한다.
요가, 필라테스가 이처럼 크게 지지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운동보다 치유와 회복의 이미지를 강조한 덕분이다. 여성에게 치유와 회복은 곧 폭넓은 의미의 자기 관리다. 남성은 운동을 해도 치유에 열중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른바 ‘헬창’으로 대변되는 남성성과 힘에 얻고자 한다. 똑같이 운동을 해도 이처럼 결과가 대조적인 데는 ‘여자는 여자답게, 남자는 남자답게’를 강조하는 성역할의 이분법이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여성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
바쁘게 일하면서 내면까지 다스리는 삶은 겉보기엔 매우 바람직하다. 흔히 하는 말로 ‘갓생’이라 추앙받을 만하다. 그러나 분노하는 여성이 자기 관리에 실패한, 미성숙한 사람으로 인식된다면? 치유와 회복의 이미지를 위해 건강한 음식, 타이트한 요가복에 어울리는 몸, 여유롭고 유순한 성격까지 뒷받침돼야 한다면 이는 롤모델이 아니라 새로운 억압일 뿐이다. 명품 마케팅은 거의 모든 산업에 적용되지만 알로의 고공행진을 단순히 소비문화라고만 보기엔 석연찮은 면이 있다.
간단한 통계만 봐도 스트레스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성별이 따로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이야말로 치유와 회복이 필요한 자들이 아닌가? 반대로 지나치게 억압된 여성들에게 필요한 건 치유가 아니다. 정당한 분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