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동십자각에서 열린 제40회 한국여성대회 현장. ⓒ한국여성단체연합
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동십자각에서 열린 제40회 한국여성대회 현장. ⓒ한국여성단체연합

우리가 더 빠르게 행동해야 하는 이유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을 하루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취소 결정이 내려졌다는 속보를 전해 들었다. 일 년에 하루, 그나마 여성의 권리와 지휘 향상을 외칠 수 있는 날인데 시작도 하기 전부터 틀어진 느낌이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과정, 이후의 행보, 그리고 이런 우연마저도 일관되게 반여성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성의날을 맞이하는 설렘마저 사라진 건 아니었다. 특히 올해는 여성의날을 기념해서 페미니스트들과 경복궁 일대를 달리기로 했다. 이는 여성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페미니스트 60여 명으로 이뤄진 러닝 크루 ‘다시 뛰는 여성 정치’(다뛰여)에서 제안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부터 크루를 결성해 매주 일요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 일대를 달린다. 오는 5월 열리는 제25회 여성마라톤에 함께 참여해 10㎞를 완주하는 목표도 세웠다. 모임을 처음 제안한 이는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 연대하는 여성들끼리 모여 꾸준히 운동하며 여성의 정치 세력화를 실행해 보자는 제안에,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과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대책위원장도 뜻을 함께했다. 이에 더해 여성이면서 동시에 페미니스트를 대변하는 정치인이 지금 국회에 필요하다고 절감하고 여성을 위한 정치 세력을 만드는 데 동참하고 싶은 이라면 누구나 함께 달릴 수 있다.

이처럼 페미니즘과 운동이 결합한 사례는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글로벌 화장품 회사인 레블론이 후원하는 ‘레블론 런/워크(Revlon Run/Walk)’는 미국에서 여성 암 환자 및 암 연구 지원을 위해 개최됐던 대규모 걷기·달리기 행사다. 이 행사는 주로 매년 5월, 어머니날 주말에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렸다. 또 호주 시드니에서 여성의날마다 열리는 펀 런(Fun Run)도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쳤다. 사우스 브리즈번에서 시작해 시티 보타닉 가든에서 끝나는 5km 코스를 참가자들은 걷기, 달리기 등을 선택해서 참가한다.

다뛰여는 3월 8일 오전 11시 무렵부터 경복궁 일대를 달리고 싶은 만큼, 각자의 속도로 달렸다. 경복궁 둘레는 약 2.5㎞로 두 바퀴를 달리자 총 5.3㎞가량 달린 것으로 기록됐다. 1㎞당 6~7분 속도로 달리면서 여성이 처한 현실에 관해 골몰했다.

세계여성의날은 1908년 3월 8일 임금 인상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미국 뉴욕 섬유 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됐다. 2025 세계여성의날 조직위원회가 내건 슬로건은 ‘더 빠르게 행동하라’(Accelerate Action)다. 세계경제포럼(WEF)의 자료를 참고한 조직위원회는 성평등이 현재 속도라면 2158년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측했다. 결국 성평등을 이루기 위해서 신속하고 단호한 행동이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민주주의가 절실한 여성들의 1만인 선언

경복궁 일대를 달리는 동안 대규모 인원이 광화문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광장에서 여성의 위치는 어디인가? 2017년에도 여성은 촛불 광장의 주역이었으나 이후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세운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면서 공격받고 소외당했다. 전력 질주는 아니어도 더 빨리 달렸다면 우리의 권리와 지위가 달라졌을까? 속도를 최우선에 두자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2158년은 너무 늦다. 그때는 지금의 우리, 우리 곁에 있는 이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내란 사태 이후 광장에 그토록 많은 여성이 모였던 것은 그만큼 우리에게 정치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여성의날을 맞아 여성계에서 준비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여성 1만인 선언문’이 5일 만에 큰 호응을 얻으며 서명 1만 명을 돌파했다. 선언문은 8일 오후 5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세계여성의날 기념 한국여성대회에서 발표됐다. 발표를 통해 여성들은 주권자 여성으로서 내란수괴 윤석열 파면, 김건희 수사, 성평등 정치 등을 요구하며 여성들의 연대를 강조했다.

발표를 지켜보면서 더 빠르게 행동하라고 강조하지 않아도 1만 명으로 상징되는 수많은 여성이 각자의 위치에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란 사태 이후 아니, 2017년 촛불 광장에서, 또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새로운 정치를 만들기 위해 앞장선 여성들이 있다. 이제 주자를 교대해서 달리는 이어달리기처럼 더 많은 여성이 쉼 없이 행동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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