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폭력상담소, 2024년 상담 1492건 분석
폭행·협박 명확한 피해는 12.8%에 불과

현행법상 강간죄는 저항이 곤란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어야만 인정되지만, 지난해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성폭력 상담 10건 중 7건은 폭행·협박 없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7일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난해 접수된 상담 1492건(710명)을 분석한 ‘2024년 한국성폭력 상담소 상담통계’를 발간했다. 이 중 강간·준강간·특수강간 등에 해당하는 218명의 상담을 분석한 결과, 폭행·협박이 없음이 70.2%(153명), 강제·강압이 17.0%(37명)등으로 법적으로 폭행·협박을 인정받기 어려운 피해 상담이 87.2%에 달했다.
폭행·협박이 없는 피해상담 중에서 30.3%(66명)은 심신상실·항거불능에 해당했다. 이어 아동·청소년이 14.2%(31명), 위계·위력이 13.8%(30명) 순으로 높았다. 또 ‘하지 말라’고 하거나, 가해자를 밀어내는 등의 ‘명시적 거절’과 몸이 얼어붙는 등의 ‘비명시적 거절’ 의사를 표현한 경우는 18.9%(28명)였다.
반면, 폭행·협박이 있었던 피해상담은 12.8%(28명)에 불과했다. 현행 형법 제297조는 강간죄 구성 요건을 '폭행 또는 협박'으로 정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대다수의 강간 범죄는 폭행·협박이 없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강간죄 구성요건이 ‘폭행·협박’으로 남아 있는 한 피해자 보호 및 가해자 처벌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피해상담이 많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는 여성이 96.3%로 대다수였고, 남성은 3.8%에 불과했다. 반면 피해자의 성별과 상관없이 가해자 98.8%가 남성이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살펴보면, 아는 사람 비율이 87.9%(211명)로 지난해 상담통계보다 5.6%p 높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 보호 및 구제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강간죄 구성 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없음’으로 개정할 뿐 아니라 ‘적극적 합의’에 기반한 ‘동의 없음’의 판단 기준을 확립하고 법적·사회적·문화적으로 널리 확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UN은 한국정부에 현행 형법의 강간죄를 개정할 것을 몇 차례나 권고한 바 있다. UN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한국 정부에 2017년, 2018년에 이어 2024년에도 또다시 “국제인권기준에 따라 부부 강간 등 합의되지 않은 모든 성적행위를 포괄하는, 적극적이고 자유롭고 자발적인 동의가 없는 성적행위를 강간으로 정의하도록 형법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2023년 UN 자유권위원회도 한국 정부에 모든 형태의 강간을 협박이나 폭력이 아닌 동의 부재로 정의할 것을 권고했다.
한편, 2007년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비동의강간죄 관련 법안은 20대 국회에서 10건, 21대 국회에서 3건이 발의됐지만 모두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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