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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베르시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체조 여자 도마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미국 시몬 바일스가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이렇게 여유로운 저녁이 얼마 만인가. 수년째 저녁을 주짓수 도장에서 보내다가 모처럼 휴식기를 맞았다. 문제는 휴식이 너무 달콤해서 일주일이 2주일, 2주일이 3주일로 늘어난 거다. 한편으론 이러다가 주짓수를 관두겠다 싶었다. 그러자 ‘나만 좋으면 무슨 상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깨달았다. 몸과 마음이 지쳤다는걸.

미국 체조계의 살아 있는 전설 시몬 바일스에 관해선 명성만 알지, 그가 겪은 역경까지 알지 못했다. 지난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그는 도마 경기 중에 전례가 없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올림픽 무대에서 기권했다. 기자회견에서는 ‘너무 큰 중압감을 느꼈고 내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해 기권하겠다’고 말했다.

슈퍼스타의 기권이라니. 어떤 비난이 따를지 누구보다 잘 알 텐데 그는 그 모든 비난이 두렵지도 않은 걸까? 용기 있는 결단을 보여준 여성에게 관심을 두게 된 건 그때부터였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시몬 바일스, 더 높이 뛰어올라’는 유명 스포츠 스타가 누리는 인기의 이면, 스포츠에서의 심리적인 문제,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여기서 시몬 바일스에 관해 추가적으로 눈여겨볼 사항은 그가 체조선수로는 벌써 은퇴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의, 흑인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체조는 오랫동안 여성스러운 외모의 백인 여성들이 활약한 종목이다. 어리고 가벼울수록 성적이 좋다는 이유로 어린 선수들에게 강도 높은 훈련과 엄격한 식이요법을 강요해 비판 받아왔다. 이러한 체조계의 관행으로 시몬은 어린 시절부터 줄곧 외모와 인종에 관한 악성 여론에 노출된 바 있다.

또 2018년에 선수들을 성적으로 학대한 주치의를 고소 고발한 사건까지 겪으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시몬 바일스에게 나타난 ‘트위스티’라는 증상은 두뇌가 신체와 소통을 멈추고 서로 따로 움직이는 현상을 뜻한다. 이 문제로 시몬 바일스는 공중에서 회전하는 중에 방향을 잃었고 멈추지 않으면 생명마저 위험할 상황이었다.

선수도 인간이라는 외침

스포츠는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성으로 기적을 연출하지만, 또 그로 인해서 잔인해지기도 쉽다. 대중은 시몬이 더 크게 성공하기를 기대했다. 2016년에 4관왕이었으니 도쿄 올림픽에서는 체조 전 경기 메달 석권, 6관왕이 되길 바랐다. 여기에 애국심과 성과주의까지 더해지면서 한 선수에게 너무 큰 중압감을 안겨준 셈이다.

흔히 스포츠에 있어서 정신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보통은 건강하고 강한 정신에만 의미를 둔다. 운동선수도 인간이고 그들도 무섭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2021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발표한 조사 결과는 대중이 외면한 불편한 진실을 일깨웠다. IOC 선수위원회가 4천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32%의 선수가 ‘정신적인 문제를 겪고 있다’고 응답했고 생각보다 훨씬 많은 선수가 정신 건강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러므로 시몬 바일스의 기권은 성과주의에 내몰린 선수들을 대변한 용기 있는 외침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들에게 전하는 슈퍼스타의 메시지

이는 크게 보면 여성을 대변한 외침이기도 하다.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만큼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래서 매번 좋은 성과를 내야 하고 자신을 더 가혹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는 강박에 빠지기 쉽다. 그런데도 결과가 기대 이하이거나 실패했을 땐 자신을 비난하고 자책한다.

시몬 바일스는 3년간 노력한 끝에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2024년 파리 올림픽에 출전, 27세의 나이로 2관왕을 기록했다. 미국 체조 역사상 남녀를 통틀어서 가장 많은 메달을 획득한 선수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울림을 주는 건 다큐멘터리의 말미에 전한 그의 메시지다. “제 경력을 돌이켜보면 가장 자랑스러운 건 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했고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한 해의 출발이자 이루고 싶은 목표가 많은 시즌이다. 그러나 원하는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인간은 누구나 실패할 수 있고 어쩌면 그것이 가장 인간적인 모습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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