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혁신은 포용으로부터 ⑦]
평균 기온 예상보다 빠르게 상승 중
여성·노인·경제적 취약계층일수록
폭염피해 취약...맞춤형 대책 시급

서울 전역에 폭염 경보가 발효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사거리에서 시민들이 그늘막 아래에서 더위를 피하며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음.  ⓒ연합뉴스
서울 전역에 폭염 경보가 발효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사거리에서 시민들이 그늘막 아래에서 더위를 피하며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음. ⓒ연합뉴스

2024년 여름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한 계절이었다. 여름철 기온, 열대야 일수, 시간당 강수량, 해수면 온도 모두 기록적인 수치를 보였으며, 9월 말까지 이어진 더위로 인해 9월 17일 추석에도 다수의 지역에서 폭염경보 기준인 35℃를 넘겼다. 이는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운 추석 연휴로 기록됐다. 이러한 현상을 통해 우리는 기후변화가 실질적으로 우리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평균 기온은 상승하고 있으며, 그 속도는 예상보다 빠르다.

기상청의 ‘종합 기후변화감시정보’에 따르면, 1973년부터 2023년까지 전국적으로 평균 기온이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다. 예를 들어, 10년 동안 원주는 0.64℃, 청주는 0.59℃, 구미는 0.5℃, 서울은 0.34℃씩 상승했다. 특히 서울의 연평균 기온은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더욱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으며, 이는 기후변화의 영향이 지속적으로 가속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의 연평균 기온 변화 (1973 ~ 2023) ⓒ기상자료개방포털
서울의 연평균 기온 변화 (1973 ~ 2023) ⓒ기상자료개방포털

지구가 더워짐에 따라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폭염 피해는 주로 경제적 취약계층과 야외 노동자들에게 집중된다. 이들은 에어컨이 설치된 실내에서 생활하기 어려워, 폭염으로 인해 열사병 등의 온열질환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매년 1~4천명의 사람들이 온열질환으로 응급실을 찾으며, 그중 20~40명 정도가 사망에 이른다.

사망자들의 성별과 연령을 살펴보면, 40~50대 중장년층에서 남성 사망자가 많은 반면, 80대 이상의 경우 여성 사망자가 월등히 많다. 이는 남성과 여성의 사망사고 발생 원인이나 유형에 차이가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남성들은 주로 실내외 작업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반면, 여성 노인들은 밭일을 하거나 집 안에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해 폭염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2024년 8월에도 60대 근로자가 건설현장에서 열사병으로 사망했고, 80대 여성 노인이 밭일하다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온열질환 사망자 연령별 성별 구분 (2012~2023년) ⓒ여성가족부, 2023
온열질환 사망자 연령별 성별 구분 (2012~2023년) ⓒ여성가족부, 2023

폭염이나 더위에 대한 취약성은 여러 요인에 의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단순히 성별의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의 경제적 환경과 거주 조건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에어컨이 잘 설치된 실내에서 생활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폭염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을 수 있지만, 쪽방촌이나 반지하 같은 열악한 주거 환경에 사는 사람들은 폭염에 적응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다양한 작업 및 생활 환경에 따라 맞춤형 기후위기 적응대책이 필요하다. 건설 현장 같은 야외 작업장이나, 물류센터처럼 실내 작업장과 같은 폭염에 취약한 작업장에서 남성들이 노동집약적인 직업에 종사하며 직면하고 있는 온열질환에 대해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

또한, 농촌에서 혼자 생활하는 노인 여성의 경우, 경제적 여건상 폭염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가 더 어려워지며, 밭일을 계속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무더운 여름 동안 여성들은 폭염을 피할 수 있는 공공 무더위 쉼터나 외부에서의 활동을 포기하고, 집 안에서 폭염을 견디는 경우가 많다. 이는 여성들이 외부에서 성범죄나 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했으며, 60세 이상의 인구 중 여성 비율이 더 높다. 특히, 70대 이상의 여성 1인 가구 수는 남성에 비해 월등히 많다. 이러한 인구 구조는 여성 노인들이 폭염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여성 노인들의 폭염 대응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며, 특히 경제적 취약계층과 노인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지원 대책이 중요하다.

2024년 8월 기준 연령별 성별 인구수.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2024년 8월 기준 연령별 성별 인구수.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2024년 8월 기준 연령별 성별 1인 가구수.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2024년 8월 기준 연령별 성별 1인 가구수.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2023년 스위스의 여성 연금 생활자들과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스위스 정부를 상대로 기후변화 대응을 강화하기 위한 소송을 제기한 것처럼, 기후변화는 특정 계층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지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세계보건연구소(ISGlobal)에서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23년 유럽의 폭염으로 약 5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여성과 노인이 특히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에 따르면 여성의 사망률은 남성보다 1.55배 높았고, 80세 이상의 고령층은 65~79세보다 8.68배 높은 사망률을 보였다. 이처럼, 기후변화는 여성과 고령층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사례를 참고하여 여성 노인들을 위한 기후변화 및 폭염 대응 정책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물론, 이는 여성 노인들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모든 노인들을 위한 주거 복지와 기후 위기 적응 정책을 촘촘히 수립하는 과정에서 젠더적 관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노인복지회관, 경로당, 지역 커뮤니티 센터 등 공공건물을 이용한 무더위 쉼터를 설계할 때, 성별에 따라 냉방시설 접근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폭염 등 기후 재난 시 건강 모니터링과 비상 연락망을 구축하여 노인들의 기후 위기 적응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독거노인과 같이 무더위 쉼터에 접근하기 어려운 이들을 대상으로 주거시설 내 에어컨 설치 및 전기료 지원사업 등을 구상할 수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모든 세대와 성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취약계층은 더욱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으므로, 취약한 계층을 고려한 정책이 필요하다. 성별과 연령을 고려해 다양한 재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정의하고 그에 맞는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실내외 작업장에서 폭염에 노출될 수 있는 경우에 대비해 휴식공간, 물, 경보시스템 등을 반드시 도입하도록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련 법령을 개정하고, 농촌 지역이나 경제적 취약계층이 거주하는 지역에 대한 집중적인 폭염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여성, 특히 노인 여성들이 지역 사회의 기후변화 대응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지역 차원에서 젠더 포용적 기후 위기 대응 매뉴얼을 개발하는 것이 궁극적인 회복 탄력성 구축에 기여할 것이다.

재난 피해자에 대한 성별 통계 구축 또한 매우 기본적인 일이다. 폭염에 따른 온열질환자뿐만 아니라, 한파, 홍수, 가뭄 등 기후변화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자연재해에 의한 피해자 통계를 성별과 연령으로 구분해 작성하고 관리해야 한다. 이와 같은 접근을 통해 재해유형별 취약계층을 구분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기후 변화의 영향을 줄이고, 취약계층의 생존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여성가족부, 2023, “2023년 글로벌 성평등 의제 및 정책사례 연구: 기후변화와 양성평등”

정건희 호서대 건축토목공학부 교수는

정건희 호서대 건축토목공학부 교수. ⓒ본인 제공
정건희 호서대 건축토목공학부 교수. ⓒ본인 제공

고려대 환경공학과와 토목환경공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를 마치고, 미국 애리조나대에서 토목공학(수자원)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수자원공학 분야에서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 피해 예측 및 저감 관련 연구를 하고 있으며, 호서대 재난안전시스템학과 대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대통령직속 국가물관리위원회 위원 및 한국방재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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