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혁신은 포용으로부터 ⑧]
식생활의 건강 영향 연구서도
데이터·연구 방법의 성별 편향 드러나
모두가 건강한 식생활
‘영양의 젠더혁신’이 출발점

ⓒiStock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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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은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식생활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방안을 찾는 분야이다. 젠더혁신은 과학기술 연구의 전 과정에서 성·젠더 분석을 통해 지식의 젠더 편향성을 없애고 모두에게 적합한 과학기술을 개발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영양에서 성 분석은 음식에 포함된 영양소와 성분들이 체내에서 어떻게 이용되고 대사되는가를 규명하는 기초연구에 중요하다. 식생활과 건강에 대한 측면에서는 성 분석과 젠더 분석이 모두 적용돼야 한다. 이처럼 ‘영양의 젠더혁신’으로써 모든 사람이 자신의 특성에 맞는 식생활을 통해 건강하게 오래 사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식생활과 건강에 관한 연구에서 영양소와 식이 내용을 평가하기 위해 많이 사용되는 것은 식품섭취빈도 조사지(빈도 조사지)이다. 많은 대상자를 선정해 식생활을 빈도 조사지로 조사하고 몇 년~몇십 년간 발생한 질병이나 사망 자료를 분석해 질병에 영향을 미치는 영양 요인을 찾을 수 있다. 빈도 조사지는 주요 음식들을 제시하고 대상자들이 각 음식의 섭취 빈도와 섭취 분량을 응답한 것을 바탕으로 영양소 섭취량을 계산한다. 따라서 조사지의 구성이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식품섭취빈도 조사지 샘플. ⓒ박민경. 2011. 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4쪽
식품섭취빈도 조사지 샘플. ⓒ박민경. 2011. 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4쪽

세계적으로 1980년대 이후 개발된 196개의 빈도 조사지를 분석했을 때, 개발 과정에 젠더를 고려한 것은 10.9%(21개)에 불과했다. 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검증 연구를 수행하면서 빈도 조사지로 조사한 영양소 섭취량을 기준으로 계산한 결과와 비교했을 때, 젠더를 고려하지 않은 빈도 조사지의 경우 여자의 섭취량 분석이 남자에 비해 부정확하며 특히 과다 평가되는 경향이 높았다. 특히 여자의 에너지와 지방 섭취가 과대 평가되는 것으로 분석돼 여성의 비만 및 만성질병 관련 연구의 정확도가 크게 떨어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식생활과 건강에 관한 연구에서 여성에서의 연관성이 남성에 비해 약하거나 연관이 없다고 보고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식이섬유의 대장암 발생 억제에 관한 연구에서 기초 결과는 남녀 모두에게서 식이섬유가 유의미하게 대장암 발생을 억제한다. 그러나 관련 생활요인과 식이 요인을 보정했을 때, 남자에게서는 계속 유의미한 감소 효과가 나타났지만 여자에게서는 유의성이 사라졌다. 또 칼슘과 비타민D의 대장암 예방 효과 연구에서도 칼슘 섭취가 남녀 모두에게서 유의미한 효과를 보였으나 비타민D는 남성에게만 유의미한 효과를 보였다. 이러한 차이는 여성의 생리적 변화가 남성에 비해 크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빈도 조사지의 부정확성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식품의 종류와 섭취 분량은 모두 영양소 섭취량에 영향을 미치지만, 식품 섭취량의 성별 격차가 크다. 2021년 국민건강영양조사 통계를 보면 1일 평균 에너지 섭취량은 남자가 2천124kcal, 여자는 1549kcal로 차이가 컸다.

미국 하와이대학 암연구소가 다인종코호트 연구를 위해 만든 빈도 조사지. ⓒ미국 하와이대 암연구소
미국 하와이대학 암연구소가 다인종코호트 연구를 위해 만든 빈도 조사지. ⓒ미국 하와이대 암연구소

이러한 남녀 식사량 차이를 빈도 조사지에 반영할 때 식생활과 건강 분석 차료에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미국 하와이대학에서 운영하는 다인종코호트 연구에 사용된 빈도 조사지에 남자, 여자의 섭취 분량을 달리 정한 젠더 특화(gender-specific) 빈도 조사지를 개발했다. 영양소 섭취량을 다시 계산했을 때, 남녀 모두에서 젠더 특화 빈도 조사지로 계산한 대상자들의 에너지 섭취량이 실제 섭취량과 매우 비슷한 분포를 보였고 평균 섭취량 계산도 더 정확했다. 대상자들을 에너지 섭취량에 따라 5분위로 나눠 20년간 사망률을 분석했을 때, 원래의 빈도 조사지를 사용했을 때는 섭취량이 가장 높은 분위의 사망률을 가장 낮은 분위의 사망률과 비교한 위험률이 남자에게서는 1.05로 유의미하게 높았으나 여자에게서는 1.03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젠더 특화 빈도 조사지를 사용했을 때, 그 비율은 남자 1.07, 여자 1.06으로 모두 더 높고 유의미했다. 젠더를 반영하지 않은 빈도 조사지에서는 에너지 섭취가 높은 여자들의 사망률이 증가하는 것을 찾지 못했으나 설문지에 젠더를 반영하면서 위험률이 높아지는 것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현대인의 질병에서 식생활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고려하면 이제까지 젠더를 반영하지 않은 설문지에 의한 식생활과 건강 연관성 자료의 정확성에 의구심이 든다. 영양 연구의 젠더 혁신으로 올바른 연구 도구를 구성하고 적용함으로써 남녀 모두에게 적합한 건강한 식생활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백희영 교수는

백희영 전 여성가족부 장관·서울대 식품영양학과 명예교수. ⓒ본인 제공
백희영 전 여성가족부 장관·서울대 식품영양학과 명예교수. ⓒ본인 제공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명예교수, 젠더혁신연구센터장(2016~2020),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2014~2015), 여성가족부 장관(2009.8~2011.8.), 국제영양학회 이사(2005~2009), 한국영양학회 회장(2005), 대한가정학회 회장(2003) 등을 지냈다. 과학기술포장(2008), 아시아태평양임상영양상(2009), 청조근정훈장(2012)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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