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성착취물 소지·시청 처벌법, 국회 법사위 통과
‘알면서’ 문구 추가…가해자 처벌 회피 위해 악용 가능성

‘딥페이크(불법합성물) 성착취’ 영상인지 알면서도 이를 소지하거나 시청하면 최대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뒤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법사위는 지난 25일 여야 합의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딥페이크 성 착취 영상을 비롯해 허위 영상물 등의 소지·구입·저장·시청죄를 신설해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가 된 부분은 바로 14조2, 제4항의 ‘알면서’라는 문구다. 법사위원들은 딥페이크 성착취 영상인지 몰랐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시청하거나 저장했다가 처벌받을 수 있는 부작용을 예방하겠다는 취지에서 해당 조항을 추가했다.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누군가가 카톡으로 영상을 보내오면 자동으로 다운로드가 돼서 보게 된다. 그것이 만약 딥페이크 영상이면 소지, 시청한 사람이 된다”며 “하지만 그 영상만으로는 딥페이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고의라는 것을 명확하게 집어넣어서 불필요한 수사 대상이 확대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사위에서 개정안이 의결된 이후 ‘알면서’라는 추가 조항을 악용해 가해자들이 교묘하게 처벌을 피해 갈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이에 이날 온라인상에서는 법사위 소속 의원들에게 “‘알면서’라는 부분은 범죄자들에게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어떤 대안을 마련할 계획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을 담은 이메일을 보내는 집단 움직임이 이어지기도 했다.
여성계와 전문가들 역시 가해자들이 해당 조항을 악용해 처벌을 회피할 수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여성의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수많은 가해자들이 손쉽게 처벌을 피할 수 있는 누더기 법안”이라며 “딥페이크 범죄가 수많은 여성들의 인권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와중에 남성 중심의 국회는 ‘우연히 카톡으로 딥페이크 영상을 받아본 억울한 사람’이라는 있지도 않은 사례를 창조해가며 가해자들의 방탄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알면서’라는 허들을 높이는 조항을 굳이 넣은 것은 억울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는데, 이전에 아청법으로 입건됐던 가해자들도 ‘아동청소년인지 몰랐다’ ,‘성인인 줄 알았다’라고 주장했다”며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딥페이크인지 몰랐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더 큰 사각지대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그러면서 “경찰도 딥페이크 영상을 식별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딥페이크인지 몰랐다’고 말하면 (법망을) 비껴갈 수 있게 됐다”며 “(법안이) 진전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가해자들에게 서사를 만들어 줄 수 있게 됐다”고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