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성폭력 그 이후⑦] 공폐단단 활동가
3년 넘게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공소시효 폐지’ 외치는 생존자들

친족성폭력 생존자들이 손에 들고 있던 ‘공소시효 폐지’ 피켓을 내리고 모였다. “오늘은 뭐 먹죠?” 지난달 31일 서울 광화문. 30도가 넘는 뜨거운 날씨에 한 시간 가량 시위를 벌인 7명의 활동가가 옹기종기 점심 메뉴를 정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더우니까 시원한 냉면은 어때요?”, “웨이팅 없는 분식은 어때?”라며 토론 끝에 정해진 점심 메뉴는 분식. 시위를 마치고 점심을 먹거나 차를 마시는 건 공폐단단(친족성폭력피해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하고자 단단하게 모인) 활동의 하나의 의례가 됐다. 이날 공폐단단의 시위는 총 42회째로,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 나온 지 벌써 3년이 넘었다.
광화문 인근 지하 상가에 위치한 분식집에서 공폐단단 활동가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이번 텔레그램 딥페이크 사건에서 친족 성폭력 문제도 나오더라. 이번 기회에 다시 친족 성폭력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게 되면 좋겠다.” 송지혜(가명)씨가 말했다.
최근 불거진 텔레그램 딥페이크(불법합성물) 성착취 사건에 저마다 걱정 어린 목소리를 냈다. 강나리(가명)씨는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친족에게 성폭력 안 당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 조사해보면 절반 이상이 피해 경험이 있을 거야”고 했다.

2019년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부성애의 두 얼굴’ 편에서 친족성폭력을 ‘충격적인’ 소재로 삼고, 피해자를 무력한 존재로 그리는 시선에 분노한 친족성폭력 생존자들이 시위를 하며 공폐단단은 결성됐다.
공폐단단을 조직한 푸른나비(활동명)는 “친족성폭력하면 으레 생각하는 불쌍한 이미지가 있다. 악마가 문틈에서 오는 이미지, 피해자는 웅크려 두려움에 떠는 이미지에 분노해서 나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피해자들은 매 시간, 매분, 매초 친족 성폭력 피해자로 살지는 않는다”고 했다. 푸른나비는 “나는 회사원이고, 한 아이의 엄마다. 누군가에게 친절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이어 “다른 생존자 중에 기자가 된 사람도 있고, 돈을 잘 버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아픈 사람도 있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다. 어디서나 있는 사람들이다”라고 했다.

피켓을 들었는데, 회복으로 이어졌다
공폐단단은 가해자는 평범한 얼굴을 한 우리 주변의 인물이며 친족 폭력이 일상적인 범죄라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 광장에서 피켓을 들었다. 피켓을 드는 행위는 회복으로 이어졌다.
3년 전부터 공폐단단 활동에 참여한 미미(활동명)는 “우울하고 무기력한 순간들도 많았다. 그러다 법제도 변화를 위해서 피켓을 들고 활동하며 아 내가 변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겠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이어 “나올 때마다 생존자들, 활동가들에게 지지받는다. 생존자들 연령도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고, 각자 다른 배경을 갖은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 연대한다. 거기서 오는 단단함이 있다”고 했다.
광장에 나오고, 연대를 하고, 지지를 받으며 평생 갈 것 같았던 상처가 “생활기스(흠집)”가 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물론 힘든 순간도, 우울에 빠지는 순간도 있지만, 다른 생존가들을 만나 광장에 나오고 나서부터는 예전만큼 우울에 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공폐단단 활동가들은 다른 친족성폭력 피해자들의 상처도 ‘생활기스’가 될 수 있게끔 법제도가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일 필요한 것은 ‘공소시효 폐지’다. 생존자들은 피해를 인지하고 알리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현행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10년으로는 사건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푸른나비는 “공소시효 폐지는 피해자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라며 “아무리 시간이 지나더라도 생존자가 사건 해결을 원한다면 해결할 수 있게끔 법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공소시효 폐지”라고 설명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및 연장, 피해자 지원 관련 개정안이 총 15개 발의됐지만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 됐다.
22대 국회에도 친족 성폭력 관련 발의는 이어지고 있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9월 24일 기준 친족성폭력 관련 법안은 8개가 발의됐다. 이중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및 연장을 다룬 법안은 총 3개로,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했다.
[편집자주] 성폭력은 사건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성폭력 신고 이후의 지난한 과정은 성폭력의 다른 얼굴이다. 친족 성폭력의 경우 지지기반이어야 할 가정에서 가해가 발생하기에 피해자는 더 큰 고통과 배신감, 상실감을 느낀다. 가해자를 이해하고 싶고, 나만 참으면 괜찮을 것 같다는 마음이 올라온다. '집'을 잃는 일은 무섭기 때문이다. 게다가 친족 성폭력은 피해자가 어리고, 수년간 가해가 지속된다는 특징을 갖기에 더더욱 폭로가 어렵다.
하지만 주위의 도움으로 가정에서 벗어난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있다. 탈가정을 한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여성신문은 친족 성폭력 사건 이후의 삶에 주목한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시설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시설을 퇴소 후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따라간다.
① 자립수당 못 받는 친족성폭력 피해자, ‘홀로서기’ 지원해야
③ ‘가족문제’ 되는 오빠 친족 성폭력… “별 일 아냐” 부모 말에 피멍드는 피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