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재벌 아들-대통령 딸 결혼
2015년 최태원, 혼외자 공개
1심 “SK 주식은 ‘특유재산’”
2심 “SK 주식도 분할 대상”

재벌 총수의 장남과 대통령 딸의 만남은 결국 ‘세기의 이혼’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미국 시카고대 유학 중 만나 1988년 9월 결혼했다.결혼식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노 관장의 은사인 이현재 당시 국무총리의 주례로 치러졌다. 당시는 노 관장의 아버지인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기다.
세간의 주목을 받은 두 사람 사이엔 세 자녀가 태어났지만 결혼 생활은 순탄치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부의 불화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지난 2015년 12월 최 회장의 ‘공개 이혼 촉구 서한’에서다.
앞서 그해 8월 최 회장은 펀드 출자금에 대한 선지급금 명목으로 그룹 계열사의 돈 465억원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 등으로 징역 4년형이 확정돼 수감생활을 하다 특별사면됐다.
석방된 지 넉 달 만인 12월 29일, 최 회장은 세계일보에 편지를 보내 노 관장에 대해 “십 년이 넘게 깊은 골을 사이에 두고 지내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결혼생활을 더는 지속할 수 없다는 점에 서로 공감하고 이혼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이어가던 중에 마음의 위로가 되는 한 사람을 만났다”고 외도 사실을 공개했다. 재계 서열 5위의 대기업 수장이 6세인 혼외 자식을 직접 키우고 싶다며, 불륜 사실을 공개하고 노 관장에게 공개적으로 이혼을 요구했다.

반면 노 관장은 이혼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자 최 회장은 2017년 7월 노 관장을 상대로 법원에 이혼조정을 신청했다. 조정이 성립되지 않자 최 회장은 이듬해 2월 이혼소송을 냈다. 우리 법원은 파탄의 원인을 제공한,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할 수 없다는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4년 가까이 이혼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던 노 관장은 2019년 12월 최 회장을 상대로 맞소송을 냈다. 노 관장은 위자료 3억원과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 절반 수준인 약 650만주(약 1조원)에 대한 재산분할을 요구했다.
2020년 4월7일 1차 변론기일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총 11차 변론기일의 소송 절차를 밟았다. SK그룹 주식을 특유재산으로 볼 것이냐가 재판의 핵심 쟁점이었다. 맞소송 3년 만인 2022년 12월 서울가정법원 가사2부(부장 김현정)는 노 관장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고,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원, 재산분할로 현금 66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최 회장의 SK그룹 주식은 ‘특유재산’이어서 분할 대상 재산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노 관장이 SK주식 형성과 유지, 가치 상승 등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특히 “사업용 재산을 가사노동에 의한 간접적 기여만을 이유로 재산분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노 관장은 즉시 항소했다. “전업주부의 내조와 가사노동만으로 주식 등을 분할할 수 없다고 판단한 법리는 수용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노 관장은 2심에서 재산 분할 형태를 주식에서 현금으로 바꾸고 금액도 1조원대에서 2조원대로 올렸다. 2심에선 1990년대에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가운데 343억원이 고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과 최 회장에게 전달됐다는 주장이 새롭게 등장했다. 노 관장 측은 이 비자금이 증권사 인수, SK 주식 매입 등에 사용됐다고 했다. 반면 최 회장 측은 SK그룹에 비자금이 유입된 적이 없다며 이는 1995년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때도 확인된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2심 재판부는 노 관장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등법원 가사2부(부장판사 김시철)는 5월 30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2심 선고 공판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 재산분할금 1조3808억17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노 관장이 SK그룹의 가치 증가나 경영활동의 기여가 있다고 봐야 한다”며 “최 회장의 재산은 모두 분할 대상”이라고 했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은 분할 대상이 아니라는 1심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또한 재판부는 최 회장 명의의 계좌거래 등을 보면 과거 SK주식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최 회장이 선대 회장 돈만으로 매입한 것이 명확히 입증되지는 않는다고 봤다. SK그룹이 성장하는 데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쓰였다고 보고, 노 전 대통령을 포함한 노 관장 측의 유·무형적 기여가 있다고 판단했다.

노 관장과 최 회장의 이혼소송은 이혼 시 여성의 재산권 문제와 가사노동의 가치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촉발시켰다. 여성신문은 한국가족법학회와 함께 4월 25일 ‘이혼 재산분할과 결혼의 ‘가치’- 상속 재산분할과의 차별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학술 심포지엄을 열고 이 논의에 힘을 보탰다.
한편, 2023년 3월엔 노 관장이 최 회장의 내연녀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을 상대로 30억원 규모 ‘상간녀 위자료 청구 소송’을 냈다. 2023년 4월엔 서린빌딩을 관리하는 SK이노베이션이 노 관장을 상대로 아트센터 나비 퇴거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진행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