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6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이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 16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이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재판부가 과거 논란이 됐던 ‘정경유착’ 문제를 간접적으로 거론했다. 

서울고법 가사2부(부장 김시철·김옥곤·이동현)가 30일 내린 판결문에는 고 노태우 전 대통령과 고 최종현 전 SK회장이 자주 등장한다. 노 전 대통령은 노 관장의 아버지이고 최 전 회장은 최 회장의 아버지이다.

노 전 대통령과 최 전 회장의 관계는 장녀와 장남이 지난 1988년 9월 결혼을 하면서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은 고 전두환 당시 대통령과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로 집권당 민주정의당의 대표였다. 노 전 대통령, 전 전 대통령은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했을 뿐만아니라 당시 군부 실세였던 하나회 출신으로 노 전 대통령은 명실상부한 집권당 2인자였다.

이른바 체육관 선거로 불리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대통령을 뽑는 간접선거여서 전 전 대통령 이후 차기 대통령으로 가장 유력했다. 노 전 대통령은 6.29선언 이후 직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당선됐다.

제13대 노 전 대통령의 임기는 1988년 2월 25일~1993년 2월 24일로 이 기간에 선경그룹(현 SK그룹)은 사업 다각화를 이뤘다. 

판결문에는 SK텔레콤(당시 한국이동통신)과 SK증권(당시 태평양증권→선경증권), 노태우 비자금 등이 언급된다. 

재판부가 이혼의 직접적인 당사자도 아니고 이미 작고한 두 사람을 언급한 것은 재산 형성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선경그룹은 1991년에 태평양증권을 인수해 선경증권(현 SK증권)으로 이름을 바꿨다.

선경은 노 전 대통령 임기때인 1992년 당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던 이동통신사업을 따냈다. SKT는 홈페이지 연혁에서 "특혜 논란이 일자 사업권을 반납하고 이후 1994년 한국이동통신 공개경쟁 입찰에 참여해 지분을 낙찰받았다"고 기록했다.

1988년 제13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하는 노태우 전 대통령 ⓒ연합뉴스
1988년 제13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하는 노태우 전 대통령 ⓒ연합뉴스

재판부는 "태평양증권 인수 과정이나 SK이동통신사업 진출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최 전 회장에게 일종의 보호막과 방패막 역할을 한 것으로서 유형적 무형적 기여한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 비자금이 SK에 유입됐다고 봤다. 재판부는 "1991년쯤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최 전 회장에게 상당한 자금이 유입됐다"고 판단했다. 

노 관장 측이 항소심에서 제출한 50억 원짜리 약속어음 6장을 노 전 대통령과 최 전 회장의 거래 증거로 봤다.

최 회장 측이 "노 관장 측이 1990년대 발행된 약속어음을 계속 보관하고 있었는데도 1심에서 제출하지 않다가 항소심에서 새로운 주장을 하며 제출했으므로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최 전회장이 태평양증권을 개인자금으로 인수했다고 했으나 이를 노 전 대통령의 비지금으로 인수한 것으로 판단했다. 또한 "개인자금으로 인수했다 하더라도 계열사 자금 횡령이 될 수 있고 노태우 비자금으로 인수했더라고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태평양증권을 인수할 때는 노 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이었고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할 때는 퇴임 직후로 SK가 불이익을 받지 않고 이동통신사업권을 따낸 것이 성장의 밑바탕이 됐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SK 주식을 비롯한 최 회장의 재산은 모두 공동재산에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노 관장에 대한 재산분할 금액을 크게 올린 것은 SK주식을 분할하면서 파생되는 배당금 등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최 회장의 순자산 4조110억원 정도로 보고 1조3808억원과 위자료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혼인 때 양측 모두 재산이 없었으며 혼인 생활 30년 이상의 기간에 최 회장이 SK그룹 대표이사 회장 등의 경제활동을 통해 형성한 재산 상당 부분을 부부 공동체 재산"으로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계는 이번 판결과 관련해 분할 규모가 너무 크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1998년 최태원 회장 취임 이후 SK는 자산이 10배 이상 증가하며 재계 5위에서 2위로 도약했다. 그룹 시가총액은 57.5배(5월29일 기준), 매출은 약 6배 이상 비약적으로 성장했다"며 "이를 노 관장이 함께 기여했다고 보고 분할기준을 정한 것은 과도하며 최 회장 입장에서는 억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SK의 최대 계열사 중 하나인 SK하이닉스는 최 회장이 인수를 결정했다. 이번 판결 이후 그간 SK의 경영성과가 폄하되는 것에 대해 재계에서도 매우 안타까워 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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