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연 특허법원 고법판사
27일 한국젠더법학회 춘계학술대회서 발표
“‘징역 5년·벌금 5천만원’ 딥페이크 범죄, 처벌 강화해야
‘지인능욕’ 대신 ‘불법합성물’로“

최근 ‘서울대 동문 딥페이크’ 사건 등 딥페이크 성범죄가 잇따라 여성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딥페이크 피해자들은 불법촬영 피해와 다름없는 고통을 겪는데, 처벌은 더 가볍다. 딥페이크 음란물을 아무렇지 않게 소비하는 ‘2차 가해자’들을 처벌할 법은 없어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학박사인 이숙연(56) 특허법원 고법판사는 27일 오후 웨비나 형식으로 열린 한국젠더법학회 2024년 춘계학술대회에서 ‘젠더편향과 딥페이크 문제 및 그 해결 방안 모색’에 대해 발표했다.
딥페이크 음란물을 제작·반포한 자, 복제물을 반포·판매 등을 한 자는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에 따라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영리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반포·판매할 경우 7년 이하 징역으로 가중처벌할 수 있다.
단, 딥페이크 음란물을 구매하거나 내려받는 행위를 처벌할 근거조항은 없다. 이 판사는 “단순 소지 및 시청행위에 대한 처벌 필요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적어도 상습적인 행위자에 대해 과태료 부과, 해당 편집물 등의 삭제·폐기 등 처분을 할 근거조항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물의 경우,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에 따라 제작·유포뿐 아니라 구입·소지·시청한 자 모두 처벌 대상이다.
이 판사는 ‘딥페이크 범죄’ 법정형(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이 불법촬영이나 불법촬영물 유포 등 범죄의 형량(7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보다 낮은 점도 꼬집었다.
그는 딥페이크 범죄는 “불법촬영이 개입되지 않음에도 온라인 등에 유통됨으로써 불법촬영물 못지않은 피해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또 “딥페이크 음란물을 오프라인으로 유통하는 행위 역시 디지털 성범죄의 범주에 포함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 판사는 “피해를 사전 예방하기 위한 기술적 조치가 강구돼야 하고, 피해 발생 시 삭제 등 신속한 피해확산 방지 조치는 물론 피해 여성들에 대한 적절한 보호대책이 요구된다”고 했다. △온라인 서비스 공급자의 책임을 묻는 장치 △삭제 장치 △가해자에게 피해자 지원, 영상물 삭제 소요 비용을 모두 물게 해 경제적 이익을 뿌리까지 박탈하는 방안 등 입법적 보완도 제언했다.
‘지인능욕’ 대신 ‘불법합성물’처럼 범죄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명명도 강조했다. 이 판사는 “교육과 캠페인 등을 통해 이러한 행위가 명백한 범죄에 해당한다는 점을 각인시켜야 한다”며 “‘몰래카메라’라는 용어를 ‘불법촬영’으로 대체했듯이, ‘지인능욕’도 ‘불법합성물’로 명명해 디지털 성범죄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했다.

해외 입법례도 공유했다. 미국에선 여러 주가 딥페이크 음란물 제작·유통 행위를 형사처벌하고 있다. 텍사스주는 딥페이크 음란물을 동의 없이 제작·유포하는 경우 경범죄로 보고 4천달러 이하 벌금이나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버지니아주는 강요, 괴롭힘, 협박 등 의도로 딥페이크 음란물을 제작·유포할 경우 1급 경범죄로 보고 2500달러 이하 벌금 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캘리포니아주는 딥페이크 등 기술을 이용해 기만적인 영상 등을 제작·공개·유포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1500달러~15만 달러를 배상하도록 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2023년 ‘안전하고 보안이 확보되며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AI)에 관한 행정명령’을 발령했다. 딥페이크로 인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AI가 생성한 합성 콘텐츠를 식별하고 워터마크 등을 사용하도록 규정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유럽연합(EU)은 ‘디지털서비스법’에서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가 생성·조작된 이미지, 오디오, 비디오가 실존 인물·사물·장소 등과 매우 유사해 진짜처럼 보이는 항목을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중국은 강력한 ‘사전 규제’를 2023년 도입했다.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불법 콘텐츠나 가짜뉴스의 생성 및 유포 등을 금지하고, 공중의 혼동이나 오인을 유발할 수 있는 딥페이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워터마크를 삽입해 일반인이 딥페이크 영상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딥페이크 서비스 제공자는 무분별한 유포를 막기 위해 원본 콘텐츠를 추적할 수 있는 로그 기록을 보관해야 하고, 기술적 조치에 관한 삭제·변조 등은 금지된다.
